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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김광석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by 내오랜꿈 201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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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많은 가수들이 있지만 난 아직 원곡을 넘어서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테크니컬 측면에서야 넘어섰는지 모르겠지만 그 '느낌'을 대체할 수가 없다. 특히나 이 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가 없다. 정말이지 임진모의 말마따나 "노래마다 우리 삶 도처에 산재하는 반성, 후회, 좌절, 갈증, 사색 그리고 용기를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무슨 감각장치라도 달아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래 동영상은 그가 죽기 6개월 전인 1995년 6월 29일 케이블 방송인 KMTV 공연 실황에서 발췌한 것이다. 통기타 하나와 하모니카 하나로 모든 걸 표현해낼 수 있는 가수, 김광석. 어디에선가 윤도현이 말한 '광석이 형처럼 혼자 공연하는 게 소원'이었다는 말은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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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김광석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왜 그렇게 그의 가사는 잊히지 않고 끝없이 마음속에서 그리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되새김질하게 되는 걸까. 노래마다 우리 삶 도처에 산재하는 반성, 후회, 좌절, 갈증, 사색 그리고 용기를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무슨 감각장치라도 달아놓았는지.


출처:<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16074)  

일시:2010. 06. 29

글:임진모


 

왜 그렇게 그의 가사는 잊히지 않고 끝없이 마음속에서 그리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되새김질하게 되는 걸까. 노래마다 우리 삶 도처에 산재하는 반성, 후회, 좌절, 갈증, 사색 그리고 용기를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무슨 감각장치라도 달아놓았는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입대를 앞둔 젊은이라면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의 노랫말 하나하나가 절실하게 다가오고 마침내 두 팔을 하늘로 벌리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를 악 받쳐 외쳤을 것이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 즈음에」는 또 어떠한가. 서른 목전이거나 갓 서른을 넘기고 자신이 더 이상 푸르디푸른 20대가 아닌 것에 허탈해진 사람들은 ‘또 하루 멀어져가고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음’에 욱해 그날 밤 소주 한잔을 기울였을 것이다(김광석 관련 술은 맥주, 양주, 와인이 아니고 막걸리도 아니고 왜 딱 소주인 걸까). 생전에 그도 “서른이 되어 푸석푸석해진 현실을 생각하며 노래했다”고 말했다.


김광석은 자신이 썼든 남의 곡이든 꾸며낸 상상과 허구가 아닌 자신의 절박하고 순수한 정감을 실어 실제 담(談)같이 풀어내곤 냈다. 모든 게 그래서 진실하고 절절한 ‘고백’처럼 들린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등병과 서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 감흥을 가슴속 깊이 저장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그들은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가슴속에 묻어놓은 감정 한 가닥을 꺼내어 슬픔과 즐거움을 입히는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는 슬럼프가 없다. 어떤 트렌드가 솟아나고 어떤 새로운 음악이 판을 쳐도 인간적 숨결이 흐르기에 대중은 그의 노래를 지속적으로 소환한다. 1992년 그의 세 번째 앨범에서 사랑받았던 곡 「나의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전국에 회오리를 일으키던 위험한 때에 나왔다. 초강풍에 밀려 웬만한 노래들은 먼지처럼 다 흩어져가고 있을 때도 「나의 노래」는 우직하게 라디오에서 살아남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랩과 힙합의 공세로 초래된 포크 음악의 절대 절명의 위기 한복판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는 쓰러지지 않고 승리의 깃대를 꽂았다. 2년 뒤인 1994년에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는 앨범 <김광석 네 번째>에서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이 연이어 애청되면서 그의 스탠스는 더욱 확고해졌다.


1993년에 내놓은 리메이크 앨범 <김광석 다시 부르기>의 속편인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 Ⅱ>를 발표했던 때 그는 거의 포크의 영웅이었다. 여기서 그의 역사적 위상이 주어진다. 포크의 죽음이 공공연히 거론되던 시점에서 포크음악의 질긴 생명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수여받은 ‘포크의 위대한 생존자’라는 타이틀이다. 그가 없었다면 1990년대에 포크는 사망선고를 당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한 포크의 울림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래는 김광석의 힘이자 삶이었지만 1996년 급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음악 인생은 서른둘로 끝을 냈다. 하지만 죽고 나서도 그의 음악중력은 요지부동이었고, 어쩌면 생전보다 더 대우가 승격된 레전드로 거듭났다. 특히 이병헌, 송강호, 이영애 주연의 2000년 대박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그의 「이등병의 편지」와 「부치지 않은 편지」가 주요 장면에 흘러나와 다시 애청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영화에서 북한군 송강호의 대사는 섬뜩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불러냈다.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 야, 광석이를 위해서 딱 한잔만 하자우.”


김광석의 보컬은 파워풀하며 동시에 애잔함이 흐른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와 대학생들의 신선한 노래모임이었던 ‘동물원’에서 그는 이미 주목받는 존재였다. '동물원'의 초기 대표곡인 「혜화동」과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목소리가 바로 김광석이다. 그는 1989년에 동물원의 동료인 김창기가 써준 곡 「기다려줘」로 솔로 데뷔했고, 1991년 2집에서 한동준 작사 작곡의 「사랑했지만」이 히트하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수는 히트곡 중심으로 기억되지만 상기했듯 김광석의 노래들은 삶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파편들과 섞이면서 듣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레퍼토리로 간직하기 때문에 비록 유명하지 않은 곡들일지라도 노래방에서 환영받는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꽃」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이 예가 될 것이다.


김광석은 요즘 노래와 가수들과도 가장 큰 대조를 이룬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번쩍 하는 차림이 일절 없이 오로지 통기타와 하모니카만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나, 자기 얘기일 수가 없는 아이돌 그룹의 허한 수다와는 정반대의 솔직한 고백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순수의 실종시대인 지금이야말로 김광석의 노래가 실감나게 들릴 수 있는 때인지도 모른다. 지난 3월부터 전국 순회로 김광석 추모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어디든 현장은 감동의 물결이라고 한다. 그가 죽은 지 14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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