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제주여행이 우연찮게도 모두 겨울 언저리여서 귤나무에 노랗게 열린 감귤 따먹는 호사를 누렸던 기억 만큼은 쉬 잊혀지지 않습니다. 도회지에서 사 먹는 귤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으니까요. 지난 겨울 초입, 산책길인 바닷가 마을을 지날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이 어느 집 담장 너머로 노랗게 줄줄이 열매를 맺은 감귤나무였습니다. 제주 여행에서 맛본 그 가공되지 않은 '생귤'의 맛이 이미 기억을 넘어 본능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새콤달콤한 노지 귤맛을 머리로 그리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올봄에는 꼭 귤나무를 심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곤 했더랬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은 그 모진 추위 만큼의 물리적 시간을 뛰어 넘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습니다.
고흥에 이사온 첫 봄. 흙먼지만 폴폴 날리는 마당에 잔디와 몇 가지 묘목을 심으면서 오일장에서 2년생 귤나무 4 그루를 구입했습니다. 예전에 거금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적이 있는데, 아열대 기후의 제주에서만 나는 줄 알았던 감귤나무를 민박집에서 보고 꽤나 인상에 남아 있었던 터라 시골에 오자마자 욕심을 냈던 거죠. 거금도와 제주도는 직선거리로 따지면 그리 먼 곳도 아닌데, 저에게 감귤나무는 바다 건너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귤나무는 원래 그런가요? 심고서 결실을 보려면 몇 년 기다리겠거니 했는데, 신기하게도 바로 이듬해 귤 몇 개가 열려 자그마한 기쁨을 안겨주었죠. 특히나 그 중에 3개는 노랗게 익기까지 해서 직접 키운 귤나무에서 귤을 따먹을 수 있는 기회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말입니다. 저걸 그대로 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울산집 화단에 몽땅 옮겨 심었습니다. 추위에 대비하여 꽁꽁 싸매주었음에도 제대로 자라기에는 맞지 않은 환경이었던지, 겨울 추위에 고사하고 만 귤나무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기만 합니다.
땅이 녹자마자 묘목 심을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널찍하게 구덩이 다섯 개를 파고 수개월에 걸쳐 직접 만든 거름을 넣어 묻어 두었으니, 이제 묘목만 사오면 됩니다. 그런데 호기심 천국인 강아지들이 거름 냄새를 맡고 걸핏하면 앞발과 주둥이를 이용하여 귤나무 심을 자리를 파헤치기 다반사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마당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재작질의 주범은 대개 이 녀석.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싶어서 이번에는 목덜미를 잡고 나무 막대기로 땅을 내리치며 단단히 훈육에 들어갔는데 별 효과가 없습니다. 잠시 안에 들어갔다 나오니 다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서는 애교를 부리고 있으니 헛웃음만 나옵니다. 같이 놀 때는 귀엽고, 말썽 피울 때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들. 휴~ 녀석들과 매일매일이 전쟁입니다.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넣은 지 20일 가량 지났기에 때가 된 듯하여 며칠 전에, 묘목을 사러 오일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귤나무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준비를 못했다고 하면서 확실한 구매 의사를 밝히면 다음 장에 가져온다고 합니다. 2년생 묘목 가격이 한 주에 흙이 안 붙은 건 만 원, 흙 붙은 건 만오천 원이라네요. 3년 전에 6천 원을 주고 4 그루를 샀었는데, 그 사이 가격이 배로 뛰었습니다. 일단 구매 의사를 보류하고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한 사이트에서 흙을 붙여 4 그루에 32,000 원, 그기다 모과나무 한 그루를 덤으로 준다기에 바로 신청했습니다.
이틀만에 도착한 묘목들. 상태는 양호한 것도 있고 다소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가꾸기 나름이겠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우리는 분명 조생밀감 2 그루, 천혜향 1 그루, 청견오렌지 1그루를 신청했는데 천혜향 1 그루가 더 왔습니다. 덤인지 착오인지 모르지만 일단 심기로 했습니다. 덤으로 온 모과나무까지 있으니 구덩이를 하나 더 파야 했습니다.
심고 나서 얘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합니다. 늘 푸른 상록수이기에 꽃과 잎이 진 황량한 겨울에도 푸른 잎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뿌리가 잘 활착되어 얼른얼른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적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주인 무서운 줄 모르고 통통거리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강아지 세 마리. 이놈들이 마당에 줄줄이 심은 연산홍을 죄다 물어뜯어서 이꼴로 만들어 놓았으니, 새식구인 귤나무라고 그냥 둘 리가 있을까요? 그야말로 든든한 안전장치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강아지들에게 시달리지 않게 대나무를 쪼개어 촘촘히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설마 이것까지 건들진 않겠죠. 저의 애정어린 좋은 기운을 받아, 요런 앙증맞은 결실을 늦어도 내후년쯤이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기대 만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