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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화순 쌍봉사 - 세태에 물들지 않은 세월의 흔적

by 내오랜꿈 200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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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장거리를 달려온 피로함에다 반가운 마음에 걸친 술 한잔이 길어지는 바람에 원래 계획에 있던 여수의 향일암 일출은 일요일 아침에 시간 되면 가자는, '무책임한' 합의를 한 덕분에 몇 시간 눈 붙이고 콩나물 해장국으로 든든한 아침까지 챙겨먹은 후 화순땅으로 출발했다. 띄엄띄엄 자리해 있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며 파란 들녁이 계속 이어질 것 같던 길 끝에 불현듯 닿은 쌍봉사 주차장!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웬만한 곳은 차로 갈 수 있는 사찰 주변의 그 흔한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 하나없이 한산한 곳에 자리하여 마치 어느 마을 고택에라도 들어온 줄 착각할 만큼 산속으로 드는 맛이 거의 없어서 초행길의 나는 '정말 쌍봉사야?' 재차 남편에게 확인 절차를 가졌다. 똑같은 생활의 반복인 자폐적인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로움으로 일행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능수버들 늘어진 연못 주변을 서성거리다 해탈문으로 들어섰다.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에 몇 개 밖에 없다는 3층 목탑양식의 건물이 이색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국보였던 이 대웅전은 안타깝게도 1984년에 화재로 불타버리고, 기록에 따라 복원한 것이라 한다. 소실 되기 전의 목조건물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목탑의 전성기였던 수십세기 전 옛맛을 유추해봄직 하다. 비불자들은 구경꾼으로 마당을 서성거리는데, 불자인 남편 친구는 아이들과 함께 곧장 부처님께 직행하는 신실한 모습을 보였다.^^




제법 깊은 산골에 자리한 절집이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압이 제대로 안 되어 대웅전 건물이 거의 타들어갈 무렵 근처 마을에 사는 한 농부가 불속에서 구해낸 부처님(가운데)을 보니, 저 무거운 걸 어떻게 업고 나왔을지 신기하다. 신도들이 성금을 모아 금으로 옷을 입혀 안치한 지금의 모습을 보고 또 봐도 佛者는 아니지만 佛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좌우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의 미소는 그 어떤 것도 녹여낼 만큼 넉넉하고 매력적이었다.




대웅전 뒤 왼편으로 철감선사의 부도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자생 차나무들과 대숲에서 죽순이 쑥쑥 자라고 있어 짙어진 신록과 함께 싱그러움을 더해주지만, 바람 한자락이 아쉬울 만큼 무더위에 지친 약자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아이답게 팔팔한 둘째 녀석은 엄마의 손을 이끌며 걸음을 재촉하는 기특함을 보이고, 몇번의 동행으로 지구력이 다소 떨어짐을 확인한 첫째 녀석은 제일 힘겨워하며 늦장을 부린다. 공짜로 국보를 만나러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음인가. 윗쪽엔 포크레인이 한참 길을 정비중이라 신발은 이내 먼지를 뒤집어 썼다.




<철감선사 부도비>는 비신은 없어졌고 귀부와 이수만 남았다. 거북의 입에는 여의주를 물었으며 오른쪽 앞발은 막 세상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이려는 중이고, 나머지 발은 땅을 굳게 디뎌 역동성이 느껴지는 재밌는 형상이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기법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우수작이라 하는데, 구름 속에서 두 용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현란하게 보인다.




사진의 오른쪽에서 보이듯 지붕돌 추녀가 조금 상해 있긴 하지만, 석조문화재의 백미로 꼽히는 <철감선사 부도>는 화려하고 참 잘 생겼다. 연한 석재인 대리석으로 만든 로댕의 작품보다 오히려 조각하기 어려운 이 화강암으로 만든 우리 부도를 보니,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앞을 다투는 지리산 연곡사 부도나 여주 고달사지 부도와 함께 자유자재로 돌을 다루었던 이름모를 석공의 섬세함을 절로 예찬하고 싶어진다. 기단 윗 부분에 상반신은 인간의 모양,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를 확대하여 찍었었는데, 사진 정리를 하다가 실수로 삭제되었다. 한참 부도 앞에서 머물고 있으니 일꾼인지 공양주인지 주변의 풀을 베고 있던 할머니께서 봉지의 과일을 깍아 먹으라고 재촉 하셨지만, 아침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았고 새참으로 준비하신 먹거리에 손대기가 죄송하여 마음만 흠뻑 받고서 산비탈을 내려왔다.




엉경퀴가 아닐까 싶은데, 부도를 보고 내려오면서 눈에 들어온 들꽃이다. 대웅전 앞마당의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놓여있어 잠시 땀을 식히는 사이, 운전사인 남편이 시동을 걸어 차안을 시원하게 했음에도 일행들이 오지 않으니 담 너머로 살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쉽지만 운주사 가는 길에 잠시 들린 절집에서 의외의 많은 것들을 본 흡족함을 안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written by 느티

200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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