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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Book

<아웃사이더> - 환상을 보는 인간은 반드시 아웃사이더다

by 내오랜꿈 2007.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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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보는 인간(visionary)은 반드시 아웃사이더다. 그것은 같은 공동체에 사는 다른 인간의 수에 비해 환상을 보는 인간이 소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쥐잡는 일꾼이나 굴뚝 소제부도 아웃사이더여야 한다. '비저너리'는 보다 다른 이유에서, 즉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이내 일반이 이해할 수 없는 높은 곳으로 뛰어올라 버린다는 이유에서 '아웃사이더'다."(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제2판, 범우사, 1988, p.240)

 
 
 
ⓒ2003 차재업
영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20세기의 가장 문제적 작가를 꼽으라면, 아마도 대다수는 제임스 조이스를 입에 올릴 것이다. <율리시즈>나 <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독해로 한 학기를 낭비(?)한 사람들일 테니까(보르헤스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비영어권 문학에 대해 영미문학계는 아주 완곡하다). 

이어 20세기의 가장 문제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상당수는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언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 대학에 들어와 문학을 전공한답시고 깐죽거리다 맨 처음 접하게 되는 충격이 이 <아웃사이더>를 읽으면서 느끼는 경외감 내지는 절망감(?)일 것이기에 그 충격은 오래 가기 마련인 것이다.

아마도 '아웃사이더'에 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되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 이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80년대적 꿈과 이상이 담긴 메타담론으로서의 사회변혁론이 쓰러져간 자리를 다양한 문화담론들이 메워가는 과정에서 소수자, 사회적 약자로서의 아웃사이더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어쨌거나 번역되어 나온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책을 새삼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의 연상작용이랄까, 얼마전 비디오로 나온<오아시스>를 다시 한 번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소외와 소수자에 관한 생각으로 옮아가게 되고 끝내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절의 추억으로까지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대학이란 데를 들어가 독서토론회에 가입하고서 '절친한' 술친구를 하나 사귀게 되었다. 말이 친구지 서열상으론 엄연히 1년 선배였다. 고등학교 동기 하나가 그녀와 같은 과(영문과)였고 그 친구와의 술자리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석하게 된 것이 내가 그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동아리 모임보다 먼저 만났다는 이유로 난 그녀를 별로 선배대접 해주지 않았고, 이런 나를 그녀도 크게 괘념치 않았던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녀가 고백한 것이지만, 좀 건방지게 생각하긴 했는데 대학 1학년생이 자신이 하늘같이 생각하는 이문열을 열라 씹어대는 그 '패기'에 자신의 친구로 등록해줬다는 말을 하긴 했었다.

그후 이런저런 건수로 함께 하는 술자리가 많았었는데, 여자치고는 꽤 잘 마시는 술이었다. 기억에 막걸리 두 주전자 정도는 비우는 실력이었던 거 같다. 자연히 이야기 주제가 시대상황과 문학에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즈음에 그녀로부터 꼭 읽어보라며 선물받았던 책이 바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였다. 자신이 소설가가, 평론가가 되겠다는 꿈을 접게 만들었던 책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과연 어떤 책이길래 한 젊은이의 꿈까지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건 경외감에서 오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24살 밖에 안 된 지은이가 쓴 평론(?)은 그만큼 '나는 이런 글을 결코 쓸 수 없을 거야.'라는 자괴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수 있었을테니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특별한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25살의 젊은이가 쓴 이 '아웃사이더적' 비평서는 문학, 철학, 신학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탁월한 분석력을 뽐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수한 예술가와 철학가들을 불러들이고 쫓아내기를 반복하며 그들에게서 '아웃사이더'라는 동일성과 차이를 찾아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콜린 윌슨은 이 과정에서 문학, 철학, 역사, 신학을 아우르는 고전 작품 속에서 발굴해낸 주인공들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대우하며 상호간의 관계를 질문하고 그 답을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 16살 이후 생활전선에 뛰어든 와중에 기록한 노트들 속에서 끊임없이 대치되는 두 가지 질문들-예컨대 '존재와 무', '현실과 비현실' 등-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아웃사이더의 문제란 본질적으로 '실천의 문제', '사고의 문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시 어느 정도는 사회적 금기(≒도덕)와 개인적 가치관의 불일치 그리고 평범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의 지루함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의 원인이나 문제점에 대한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보통의 소시민들과 아웃사이더의 차이가 명확하게 대비되는데 아웃사이더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집요하게 또는 너무 깊게 그리고 너무 많이 보려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를 오늘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풀어보자면, 자신의 이해와 상관없으면 '무임승차' 하기를 서슴치 않는, 사회적 실천에 뛰어들어 문제해결에 동참하고 그 열매를 나누어 가지려 하기보다는 뒷짐진 채 파리한 얼굴로 방관만 하는 사람이 아닌, 오늘의 불합리한 사회체제를 합리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 발전된 사회를 꿈꾸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콜린 윌슨이 사용하는 '아웃사이더'란 말의 용법은 지금 우리가 흔히 문화적 정치적 소외자들을 일컫는 용어로 쓰는 '아웃사이더'란 용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단순히 약자, 소수자란 의미보다는 그 파장이 깊고 넓은 것이다. 글의 모두에 인용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에 대한 정의에 나타난 것처럼. 어떻게 보면 니체의 '위버멘쉬(초인)'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할 정도로...(실제로 <아웃사이더>에서 니체는 여러 번 불려 나와 콜린 윌슨의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한다.)

어쨌든 나 역시 그 당시에 이 책을 읽고 받았던 충격은 꽤 컸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성문종합영어> 공부하듯이 여백에 촘촘하게 코멘트를 달아가면서 몇 번인가 읽었던, 대학시절 최초의 책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그때 그 책은 어떤 후배 녀석이 가져가서는 내 손에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1988년에 나온 2판이다. 이후 문학보다는 철학이나 미학으로 관심이 옮아가면서 논리적 글쓰기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문제가 있는 책이라는 나름대로의 평가를 할 만큼 이 책의 충격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재작년인가? 어떤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개글을 쓴 사람(기자?)의 표현 역시 내가 아는, 평론가가 되기를 포기했다는 그 친구의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한국일보로 기억하는데, '나를 움직인 책'인지 '내 인생의 책 한 권'인지, 하는 코너에 어떤 기자가 쓴 글의 제목이 이랬다. 

"나는 감옥에 가고 싶다. 오로지 이 책을 읽는 일만을 하기 위해서."

지금이야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아마도 20살의 나였다면, 충분히 이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다음은 전자신문 2001년 4월 14일자에 실렸던 <아웃사이더>에 관한 글입니다.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는 데도 다양한 시각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단지 주어진 대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알의 모래나 단풍 든 잎사귀 하나에서도 '세계'를 보고 느끼는 이가 있다. 찰흙 같은 암흑 속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좌절감에 신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희붐하니 밝아올 새벽의 징후를 알아채고 앞질러 희망을 노래하는 이가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거리엔 미취업자와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가정엔 한숨만이 쌓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발빠르게 움직이며 희망을 낚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위기가 곧 기회'임을 아는 자들도 그들에게 다가온 위기를 위기 그 자체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위기라는 포장 속에 감춰진 '기회'라는 선물을 꿰뚫어본 자들이다. 하루 하루의 삶에 급급해 일상의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갇혀 버린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선물들을 몰라보고 불평하고 한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표피적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의해 좌우되거나 왈가왈부하지 않는,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 너머를 볼 수 있는 '비전의 아웃사이더'들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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