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18(토) : 볼 게 많아 걱정인 교토 (1)
☞ 동선 : 교토고쇼 - 킨카쿠지 - 료안지 - 고류지 - 덴류지 - 도롯코 열차(편도) - 교토 시내 관광(한큐 가와라마치역 부근)
794년부터 1868년까지 천 여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의 구조를 모방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찰과 유적이 많다. 오늘 하루는 갈 곳도 많고, 동선이 길기 때문에 '교토 관광 1일 승차권(1200엔)'으로 대부분의 교통비를 해결한다. 일본은 이런 류의 관광상품이 잘 발달되어 있어 부럽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여행자에게는 이런 사소한 데서 느끼는 감동이 꽤나 크기 때문이다.
호텔을 나와 토자이센(東西線)-니죠죠마에 역까지 걷는 10분 동안, 몹시 무더운 하루를 예감하듯 벌써부터 등줄기에 땀이 느껴졌다. 교토고쇼를 돌려면, 여권을 챙겨들고 궁내청 사무실에 아침 08:45분까지 도착하여 신청을 마쳐야 하므로 마음이 급하다.
1. 교토고쇼(京都御所) : 옛 천황의 거처
궁내청 사무실 입구에 친절하게 휴관 안내가 되어 있지만 '8월 셋째주 토요일만 된다'고 모가이드 북을 참조하여 일정을 짰다고 하는데 첫코스부터 낭패를 만났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마침 자전거를 타고 온, 직원인 듯한 남자가 보이기에 물어보니 역시 휴관이란다.
- 대기실 >> 정전인 시신덴(천황의 즉위식 거행) >> 슌코텐(보물창고, 실제 보물은 모두 에도성에 있음) >> 세이료덴(천황의 생활공간 겸 정치공간) >> 교토교엔(왕실 정원)을 투어하고 시간이 남으면 윤동주님이 다녔던 도이샤 대학의 '윤동주시비'를 보려고 했는데....
높은 습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일이 꼬이자 더 덥다. 아침 일찍, 서둘렀던 보람이 없어지자 모두들 가이드북 저자에게 단체 항의 메일을 보내자고 투덜거리며, 102번 버스를 타고 금각사로 향했다.
2. 킨카쿠지(金閣寺) ; 09:00~17:00, 400엔
일행중 유일하게 일본말이 좀 된다는 이유로 총무를 맡아서, 늘 저렇게 종종 걸음으로 한발 앞서 가서 입장권을 끊어야 했다. 여기서 총무의 역할은 별 게 아니고, 내역 정리할 필요없이 일행들이 사달라는 것 계산하고 모자라면 회비 더 걷으면 되는, 아주 바람직한 보직이다.^^ 이번 여행의 동기부여 죄로(?) 일정 짜고, 교통패스 구매와 호텔 예약하느라 애쓴 'H'에 비하면 이까짓 것 정말 별 것 아니다. 우리의 추석격인 오봉절과 겹쳐 호텔 잡는데 엄청 고생한 것으로 안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일본의 두 번째 막부인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지금의 도시샤 대학 건너편에 '하나노고쇼(花の御所)'라는 저택을 짓고, 실권을 상실한 천황가를 내쫓고 스스로 천황위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요시미쓰가 쇼군 직은 아들에게 주고, 혹시나 있을 반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은 은퇴 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면서 주거지로 삼은 것이 바로 킨카쿠지(金閣寺)다.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인데, 전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잘못 널리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소설 <금각사, 金閣寺>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99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내에 들어서면, 연못 위에 눈부신 금덩이(?) 하나가 초록을 배경으로 빛을 발한다. 저 금각은 사리를 보관하는 것으로 1950년에 한 사미승의 방화로 불타고, 지금의 모습은 1955년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다시 입혀 재건한 것이라 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화려함에 다소 기가 질리기도 하는 킨카쿠지를 배경삼아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 무리가 제각각 사진을 박고 있었다. 일본 와서 처음으로 모국어 소리가 귓결에 들리는 순간이기도...
아기자기한 정원이 끝나는 곳의 언덕배기에는 귀인석이 있고, 그 옆으로 금각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띠집이 '셋카테이(夕佳亭)'라는, 싸리로 촘촘히 지붕을 얹은 찻집이다.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茶를 마시며 권력에 대한 욕망을 초조하게(?) 다스리고 있었을 요시미쓰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토요일을 맞아 붐비는 관광객으로 인해 다소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을 움켜쥐기 직전, 최후 절차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천황보다 먼저 죽어버렸으니, 쯧쯧...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았던가. 천하의 상징물인 금각에서 안민택(安民宅)이라 명명한 정원 연못을 비롯하여 이 셋카테이까지, 한 인간의 인생무상 순로를 되짚어 간다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左>부적 같은 입장권. <右>사찰과 신사(神社)의 도시답게 그리 새롭지는 않은 풍경.
▲ <左>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쭉 늘어선 우리의 절집과는 다른 분위기 <右>외국인 관광객의 뒷태가 길쭉해서 찰칵.
역시, 살인적인 더위에 무방비 상태로 다니다 보니, 물 값과 아이스크림 값이 솔찮이 든다. 답사 기안자가 금각사에서 료안지까지 걸으면 10분 정도 걸리지만 그래도 버스를 타자고 강력히 주장하는걸, 일행 다수가 '그까이 꺼 뭘 타냐'며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걷기로 했다가 큰 코 다쳤다. 아무리 가도 목적지에 닿지 않아 잘못왔는가 싶어 지나는 행인에게 몇 번을 묻다가, 결국은 한코스를 남겨둔 도모토인쇼 미술관 맞은편에서 59번 버스에 오르고 말았다. 금각사 초입에서 교통정리 하는 안내원에게 확인까지 했는데, 도대체 10분이란 시간이 어떻게 계산되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다음에 한여름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킨카쿠지 앞에서 버스를 타라고 권하는 바이다. 안그래도 시꺼먼 살결이 컴플렉스건만, 양산도 없이 선크림 하나에 의지한 팔이 벌겋게 익어버렸다. 그나마 하나의 위안이 있었다면 교토 전통 가옥과 마을 풍경을 곁눈질할 수 있었다는 것.
▲ <左>'헤어샤롱'이란 간판이 재밌고, 촌스럽다. <右>길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귀찮았던지, 료안지 가는 도중에 누군가 약도를 정성스럽게 손으로 그려놨다. 친절한 것이겠지?
3. 료안지(龍安寺) ; 08:00~17:00, 500엔
두번째 찾은 료안지(龍安寺) 또한 본당으로 가는 길 왼편에 교요지(鏡容池)라는 연못을 끼고 걷는다. '덥다'라는 말을 백 번 말해도 부족할 지경의 이놈의 날씨. 걸음은 늘어지고, 고만고만한 정원 풍경에 식상해 할 즈음에 턱받이를 한 다섯 동자신을 만났다. 처음 보는 것이라 일행들에게 물어보니 의견이 나뉘면서 딱히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본에는 죽은 아이의 원혼을 달래는 빨간 턱받이를 한 석상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도 그런 류가 아닐까 하는 의견으로 모아지긴 했지만...
료안지는 귀족인 도쿠다이지 집안의 별장을 양도받아 세운 선종 사찰이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료안지의 백미인 <돌 정원> 모형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이 <돌 정원>은 무로마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가마쿠라 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진 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 송나라의 화가 종병(宗柄)이 주창한 이래 일반화된 산수화의 '상징'이라는 화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곧, 하얀 모래는 바다를, 돌은 섬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정원 양식인 꽃과 나무 연못 대신, 흰 모래 위에 상징성을 가진 15개의 수석을 배치한 '가레산스이 식' 정원이라 하는데 감상의 대상이자 참선의 도구이기도 하다.
마루에서 제각각의 표정으로 앉아 상념에 잠긴 명상객들은 각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작 돌 몇 개 던져진 이 정원이 나는 좀 당황스러워서 그 깊이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15개의 돌을 찾아 세어보는 것도 이 곳을 찾은 또 하나의 재미일 수 있겠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15개의 돌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1개는 찾기 힘들다는데, 모든 걸 한번에 소유하려 들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라는 깨달음의 장치가 아닐런지. 좀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 왔다면 나도 명상객으로서의 기본은 할 것 같은데, 방해요소로 사람이 많았다는 것과 시간에 쫓겼다는 정도로 변명을 해 둔다.^^
▲ 하루에 한 번, 하얀 모래를 고르며 마음의 파장을 다스리는 참선인의 자세를 그려본다.
▲ 본당 측면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눈에 익은 산수화.
▲ 마실 수 있는 약수가 아니라, 쯔꾸바이(つくばい)로 신사나 차실 입구에 손을 씻기 위한 것.
뒷뜰에는 도쿠가와 미쓰쿠니가 기부했다는 엽전 모양의 돌확이 있다. 대나무를 통해 '口'字 모양으로 패인 곳에 물이 떨어지고, 바닥에는 관람객들이 각자의 기원을 담아 던진 동전이 쌓여 있다. 사방에 글자가 있어 가운데의 '口'와 어울려 '吾唯,知足'이 된다. 즉,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게 만족하라는 가르침이니, 두고두고 되새길 일이다.
▲ <左>조명과 어우러져 전통찻집 분위기 나는 화장실 복도. <右>양/우산을 두는 곳. 양산이라면 우리는 보통 밝은색인데, 얘네들은 검은 땟깔이 많다. 유행 색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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