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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2007 여름, 평창에서의 천렵

by 내오랜꿈 200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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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부산-울산 간 新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군데군데 허리가 잘려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내 고향마을은 주변을 감싸고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그 개울이 풍요로운 여름에서 가을까지, 고향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반도'라고 불리는 작은 그물을 챙겨 들고 개울로 향하는 것이었다. 개울 양쪽으로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혼자서 두어 시간 노동한 소득물이라고는 버들치 류의 피라미나 미꾸라지 그리고 일급수에만 산다는 민물새우 같은 하찮은 것뿐이다. 팔은 온통 풀에 스친 자욱 투성이라 보는 사람들은 기겁을 하지만 나는 마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기라도 하는 듯 홀로 하는 천렵을 즐기곤 했다. 

그렇게 잡아 온 고기들은 언제나 한끼의 탕거리 밑재료가 되는데, 이런저런 재료를 더해 어머니께서 추어탕을 끓여 놓으시면 한 그릇 뚝딱 비워낼 만큼 민물매운탕이나 추어탕 맛은 일품이었다. 이제는 물길을 바꿔 놓은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고기 서식지가 사라져 그런 재미도 한때의 추억이었을 뿐이다. 

지난 여름, 몇몇 지인들과 평창의 휘닉스 파크에 머물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낸 놀이가 바로 평창 계곡에서의 '천렵'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반도라고 불리는 족대형의 그물을 사고, 물고기 꼬임용으로 값싼 된장까지 준비하여 금당계곡으로 향했다. 장마철이라 유량이 풍부한 계곡에는 야영과 물놀이 하는 사람들로 꽤 북적이기도 하고, 입구에서 마을 사람들이 쓰레기 수거 비용 명목으로 통과세를 받고 있기에 우리는 그냥 조용히 돌아나와 인근의 다른 곳을 답사하러 다녔다. 여러 곳을 헤집고 다니다가 발견한 곳은 지난해의 태풍 수해로 도로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한적하기 그지없는, 이름 모를 한적한 계곡이었다. 


보기엔 잔잔해 보여도 장마철이라 수시로 내린 비로 인해 물살이 세서 고기가 살 것 같지 않았지만 달리 갈만한 곳이 없어서 이곳에 자리를 깔았다. 요행으로 고기가 잡히면 점심거리로 매운탕 끓여 먹고, 헛걸음이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근처 매운탕을 하는 식당을 찾기로 하고 물놀이를 시작했다. 신나 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심심해진 마나님 셋은 제밥 잡히지 말기를 바란다는 악담을 건네고들 있다.




물고기를 잡는데 세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첫째는 바다낚시를 즐겨 하는 선배님이 가져오신 줄낚. 냇가를 가로질러 줄을 설치해 놓으면 지나가던 재수없는 고기가 바늘에 덜컥 걸려주기를 바라는 낚시법. 그리고 두 번째는 제일 눈에 익은 그림인데, 반도라 불리는 그물로 잡는 방법. 세 번째는 고기가 좋아하는 꼬임용 된장에 떡밥을 짓이겨 만든 다음 작은 어항에 붙여 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던져 놓는 통발식이다.



어항을 놓아둔 모습. 이렇게 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툭 던져 놓으니, 어랏, 정말 고기가 걸렸네! 




요만큼 분량으로 무슨 매운탕이 되냐는 아줌마들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남자들끼리 만들어낸 민물매운탕. 맛, 분위기, 사람들 모두가 환상적이다. 또 어디서 이런 멋들어진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분위기만으로 훌륭한 술안주인데 직접 잡은 고기로 만들 매운탕까지 있으니 소주가 절로 넘어간다. 반면에 들러리 신세인 아줌마들의 입맛에는 그닥 호의적이지 않은지 매운탕은 오롯이 남자들 차지가 되었다. 금방이라도 비구름이 몰려올 기세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소주잔만 주고 받으며 도대체 일어날 줄을 모르는 남자들. 여자들 셋이 이구동성으로 그만 가자고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에야 추억서린 여름휴가의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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