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우리 아파트 양쪽 입구와 경비실 계단에 있는 봄꽃들입니다. 입주민 중 한 분이 철마다 키운 꽃모종들을 가져다 주십니다. 아마도 관련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은데 아직 동호수도 모르고 있습니다. 경비분한테 갖다 주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고 합니다. 웬만하면 관리실에 가지고 오셔서 생색을 좀 내셔도 될 텐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시는 듯, 말없이 마음을 베풀어 주십니다.
2.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공동주택의 공용공간에 물건을 적치하는 건 엄연히 소방법 위반입니다. 그 적치된 물건이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현장상황에 따른 판단대상일 뿐 적치하는 행위가 위법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법률지침 해석이 잘 안 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아래 소방청의 관련조항 지침의 핵심은 현장상황에 따라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있으나 이것이 법 위반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상황에 따라 과태료 부과 ‘면책사유’는 될 수 있을지언정 법 위반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습니다.
-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①항의 규정에 따라 피난시설(복도, 계단 포함)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는 피난 및 소방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제한되며 예외규정이 없습니다.
- 비상구 폐쇄 등 불법행위 신고포상제 관련 세부기준지침(2010.9.28)에 따라 ①복도(통로)에 자전거를 질서있게 일렬로 세워둔 경우 ②상시보관이 아닌 일시보관 물품으로서, 즉시 이동이 가능한 단순 일상생활용품 등이 피난에 장애가 없이 보관되는 경우 ③복도 끝이 막힌 구조로 그 끝 쪽에 피난 및 소방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물건을 보관하는 경우 등에는 비상구 폐쇄 행위등 불법행위 신고대상에 따른 과태료 부과는 제외되고 있으나, 과태료 부과 제외 지침이 적치물 허용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번 소방시설 적치물 관련 글에서 인용했던 소방청 소방정책국 소방분석제도과의 지침 내용입니다.
이러한데 공용공간에 적치물을 쌓는 행위를 두고 법이 괜찮다고 한다구요? 참 나 어이가 없습니다. 아파트 공용공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방치하는 행위는 엄연히 위법행위입니다.
우리 아파트의 경우 지난 겨울에 소방차 전용구역 위반 신고로 4건의 과태료 처분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장애인 주차장 주차위반으로 1건의 신고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때 제가 같은 아파트 주민을 5십만 원짜리 과태료 부과대상으로 신고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느냐고 하니까 준법정신 강조하면서 저한테 뭐라 하셨던 분들이 누군지 선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준법의식이 이렇게 투철하신 분들이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소방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왜 이리 관대한가요? 이른바 그 유명한 ‘내로남불’인가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이 같은 아파트 주민을 ‘신문고’에 신고하여 과태료 처분이 되도록 하는 행위에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위반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행위를 했고 비난받아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그 신고처가 ‘신문고’가 아니라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일 수는 없을까요? 실제로 이런 위반행위에 대해 관리실이나 경비실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 의견이고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생각 또한 인정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남이 저지른 소방차전용구역 위반이나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에 대해서는 법 위반이니까 신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공동주택 공용공간에 물건을 적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남이 저지른 법 위반에 대해서 단호하다면 그 단호한 잣대는 자기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3.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경제학에 ‘그레셤의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의미죠.
16~17세기 영국에서는 주로 은으로 만든 은화가 시중에 유통되었는데 이 은화 중에서 순도가 높은 은으로 만든 은화와 순도가 낮은 은으로 만든 은화가 같이 유통된다면 사람들은 순도가 놓은 은화는 자기가 보관하고 순도가 낮은 은화만 유통시키려 할 것입니다. 순도가 높든 낮든 액면가치는 같기 때문이죠. 결국 순도가 높은 은화는 장롱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시중에는 저질 은화만 유통되게 됩니다.
경제현상을 설명하던 그레셤의 법칙은 오늘날 다른 분야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선택 오류나 정보 부족으로 동종의 정책이나 상품 중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압도하는 사회 병리 현상의 역설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됩니다.
예를 들어, 정책입안자가 정책을 선택할 때 단기적 성과만 염두에 두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을 택하기보다는 단기적이고 정형화된 정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기획에서의 그레셤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또 마케팅에서도 그레셤의 법칙이 나타나는데, 기업이 질이 나쁜 상품 악화를 과대 포장 광고해서 소비자가 질이 좋은 상품 양화를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활발한 요즘 시대에는 불법으로 내려받은 파일이 진품 파일을 몰아내는 일이나 학교에서 불량학생이 모범생을 금세 나쁜 방향으로 물들이는 것 역시 그레셤의 법칙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그레셤의 법칙은 존재합니다. 목소리 크고 자기이익만 챙기려 드는 사람들이 활개치게 되면 그 공간의 많은 사람들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며 그 공간을 멀리하게 됩니다.
우리 아파트 입주민 카페 게시판을 보면 입주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과연 이곳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걸핏하면 죽일 듯이 달려들어 자기 주장을 관철시켜려 했던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이 경우 남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야 여길 떠나면 그만인 사람이니 뭐가 아쉬울까요? 하지만 이 승원팰리체라는 공동주택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분들이라면 ‘그레셤의 법칙’이 이 게시판 공간, 아니 이 공동주택 단지를 오염시키도록 내버려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 손해는 자기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생 커뮤니티 단체가 하루 빨리 활성화되어 아파트 내 행사와 의견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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