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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하동십리벚꽃길과 선암사

by 내오랜꿈 200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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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동백꽃을 보고 온 지 3주 만에 찾은 남도 땅은 동백과 매화로 이어지는 꽃잔치를 지나 하얀 조팝나무, 연분홍 진달래, 샛노란 개나리 그리고 벚나무에 이르기까지 제각각 꽃다툼이 한창이었다.


주말 하루를 함께 보낸 가족들과 같이 길을 나서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에 들러 배웅하고 내려선 하동 나들목은 바야흐로 벚꽃 시즌을 맞아 비가 오거나 말거나, 황사가 몰아치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는 상춘객들로 나들목 초입부터 완전 주차장 수준이었다. 집 나오면 고생길이 뻔한 이 상춘 행렬 속에 묻힐 생각은 털끝 만큼도 없었지만, 일요일 새벽에 부산에서 갑작스레 식구들을 이끌고 온 친구의 방문 탓에 길안내를 겸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벚꽃 축제 기간이지만 비를 뿌리고 있어서 설마 그렇게 많이 붐빌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이미 하동에 들어선 친구의 별로 막히지 않는다는 전화에 별 생각 없이 내려선 탓이다. 친구와 통화를 끝낸 한 시간여 사이에 돌변한 도로 사정을 욕하며 되돌아나와 차를 다시 고속도로에 올려 진월 나들목으로 나왔다. 벚꽃으로 절정인 하동 구례 간 19번 국도를 포기하고, 한적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대편 861번 도로를 택했는데, 예상은 적중했다. 매화철에는 더 붐볐을 섬진강을 사이에 둔 이 도로가 벚꽃철에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것이다.



 

그런데 뻥 뚫린 그 통쾌함도 잠깐, 매화마을을 지나고 그렇게나 쌩쌩 잘 달리던 861번 도로도 십리벚꽃길의 초입인 남도다리를 불과 1.5KM 정도 앞두고 정체가 시작되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벚꽃길을 지나쳐야 함은 아쉽지만 지옥통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법. 친구 가족과의 해후는 압록 유원지에서 참게매운탕으로 점심을 함께 하는 것으로 대신하기 했는데, 화개장터로의 진입이 용이하지 못하니 인정사정 없이 밀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차를 머리에 이고 뛸 수도 없는 노릇이 이만저만 갑갑한 게 아니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기고 올라가 보니 남도다리 입구는 구례방면에서 내려온 차량과 남도다리를 건너온 차량이 마구 뒤엉켜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었다.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뒤돌아 볼 것이 없이 길 한 가운데 서서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아내가 운전하는 차가 오길래 교통정리는 마무리. 끔찍하게도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길을 1시간이나 소요한 셈이다. 


남도다리를 지나 구례 방면 861번 도로 양 옆으로 뒤늦게 조성한 듯한 어린 벚나무들이 화개골 마냥 벚꽃을 머리에 이고 즐길 수준은 못 되지만 그런대로 눈맛을 즐겁게 했다. 황색선을 사이에 두고 오르내리는 도로는 여전히 대비되는 모습. 기어오는 차들을 보며 달려가는 상황은 언제나 신나게 마련이다. 벚꽃잔치를 위한 사람들의 저 인내심에 무한한 위로를 보내며 압록 쪽으로 바쁘게 차를 몰았다.


거의 2년 만에 본 친구의 가족은 4인에서 5인 불어나 있었고, 내 기억 속의 두 딸래미도 훌쩍 커 버렸다. 역시나 시간의 속도는 남의 집 아이들 자라는 모습 만큼 빠른 것도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자주 찾는 식당에서 참게매운탕과 은어튀김으로 늦은 점심을 달게 먹은 뒤, 잠시 보성강을 눈에 담았다. 보성강은 섬진강의 유명세에는 한 수 밀리지만 미처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원초적인 맛이 여름이면 더 빛을 발하는 곳이다.



 

눈맛이 양 옆으로 벚나무를 조성한 섬진강길 만은 못하지만 보성강 천변에도 만개한 벚꽃을 감상할 포인트는 얼마간 이어진다. 귀가길로는 순천쪽 18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태안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840번 도로를 택했다. 산길을 넘다 보면 복숭아로 유명한 순천의 월등마을로 이어지는 이 길을 나는 참 좋아한다.


앞서서 길 안내를 하다가, 화려한 벚꽃에 취한 인간들로부터 홀대받는 개나리 무지를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웠다.




황사가 점점 더 심해지니 돌아보는 주변 풍광이 마치 흐릿한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렌즈에 담은 풍경은 눈에 담은 모습의 반의 반도 표현되지 못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뜻하지 않게 지난 번 매화에 이어 또 한 차례 꽃구경 한 번 실컷 했다. 기실 4월이면 곳곳에 흔하고 흔한 것이 벚꽃 축제일텐데 오늘 무작위로 길을 달리다 보니, 가로수로서 벚나무를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선암사'에서 몇 장 더....




200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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