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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섬진강의 봄 - 광양매화마을과 화개장터

by 내오랜꿈 200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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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첫날, 늦은 아침을 먹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건만 차는 이미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있다. 아마도 섬진강을 보고싶다는 잠재의식이 적용한 것 같다. 남해고속도로 옥곡 나들목을 빠져 나와 2번 국도에 들어서자 군데군데 피어있는 매화꽃 정경이 섬진강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예년보다 열흘 가량 이르다는 꽃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긴 했지만, 봄이면 일부러 즐기러 가는 꽃놀이보다 산이나 들에서 쑥이며 달래며 봄나물을 캐는 걸 익숙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꽃나들이가 그다지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실제의 이름보다 '매화마을'로 더 잘 알려진 '섬진마을'이 가까워질수록 차들의 움직임이 더뎌진다. 그래서 이름 모를 나루터 위 정자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시켰다. 앞쪽 공용주차장으로 걸어가보니 그리 긴 꼬리는 아니지만 연신 호각을 불어제끼는 순경들의 바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들이 때 어지간하면 시끌벅적한 곳을 피하는 터라 순간적으로 '후회'의 감정이 잠깐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어떤 '때'가 아니면 보지 못할 풍경을 눈 앞에 두고 이 정도 댓가를 치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쪽으로 타협을 보며, 그 행렬 속에 묻혔다. 아마도 입장권을 끊어야 하는 곳이었다면 여지없이 발길을 돌리고 말았으리라.


그리 심한 경사는 아님에도 '청매실 농원'을 오르니 가벼운 옷차림에도 연신 땀을 훔쳐야 할 정도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에 차 안에서 감지한 외부온도가 20도에 육박했었다. 3월초에 20도는 분명 이상기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강바람을 타고 예년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매화가 만개하려면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다음 주말이면 때를 맞춰 한바탕 축제가 열릴 것이고, 매화향 또한 지금보다 더 깊어지리라. 



먼저 만개한 매화나무와 함께 눈도장 찍기 열심인 여행객들


아이보리 빛깔로 은은하게 톡 터진 백매화 / 농염한 때깔로 미소를 머금은 홍매화


9달 산모의 배 만큼이나 풍만한 자태의 장독. 몇 개나 될까?

'청매실 농원'에서 마을 쪽으로 바라본 섬진강 풍경


농원 안 한편에서는 진돗개 비슷한 개가 여행객들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다. 이놈과 열심히 놀아주고 있는데 아내가 윗쪽으로 올라가잔다. 조금 윗쪽으로 올라가면 섬진강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 눈 아래 펼쳐진 섬진강만 바라봐도 배부른데 아내는 영화 <천년학> 촬영을 위해 지어졌다는 세트장도 어떤가 궁금하단다. 안 가겠다고 하니 혼자 올라간다.



매실을 첨가한 이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은 조금 달콤하다. 섬진마을 주민들일까? 매실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 외에 봄나물들로 길다랗게 난전을 펼쳤다.

  

 


날씨가 덥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지라 농원 안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에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올라갈 때와 다르게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다. 한적하기 그지없다. 그 한적함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이 문패다. 아마도 이 '섬진마을'은 단체로 문패를 제작하면서 부부 이름을 같이 쓰기로 했나 보다. 나란히 걸린 이름들이 모두 예쁘기만 하다.


화개장터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섬진강을 끼고 861번 도로를 달리던 중 산 중턱의 매화마을보다 더 화사하게 만개한 도로변 매화에 마음을 빼앗겨 차를 세웠다.



이런 곳의 정류장이라면 버스가 시각을 지체한다손 치더라도 용서가 될 듯.


자연의 섭리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닌 듯, 마침 오늘이 하동포구 80리길의 종점인 화개의 오일장(1일,6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옛날 구례, 하동, 쌍계사로 갈리는 세 갈래 길목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산, 물, 섬사람들이 어울리며 생필품을 교환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연중 상설 장터로 변신하여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품들이 태반이다.



영호남 화합의 다리라는 구분이 다소 억지스런 남도대교.

남도대교 위에서 바라본 하구 방향의 물길. 하동포구 80리 길의 시작쯤 되겠다.


다리 건너편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오길 잘했다. 화개장터의 한 국밥집에서 생막걸리와 도토리묵 무침를 놓고, 아내와 여러 가지 이야기 하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식당을 나와 장터를 구경하다가 매실즙을 한 통 샀다. 매화마을 보다 이천 원 값싸게...



묵묵히 정을 쫓는 대장장이

개인기 퍼레이드를 벌이며, 손님 발목잡기에 여념없는 엿장수 쪽은 야단스럽다.


녀자(?) 광대의 흥겨운 연주에 술 한 잔 거나하게 걸친 한 아저씨가 나서더니, 일행들을 서서히 끌어들인다. 나중엔 좌판에서 나물 팔던 할머니까지 어깨춤을 덩실거리신다. 흥이 많은 우리의 어머니, 어버지들이다.




장터를 나와서 다시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줄배는 언제 없어졌다냐? 구례 방향으로 달리니 건너편에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생채기가 선연한 피아골이 코앞이다. 그렇게 3월 첫날의 나들이가 마무리된다.



written date : 200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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