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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변산반도 - 내소사, 격포항, 새만금

by 내오랜꿈 2009.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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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명절은 고향가는 길이 아니라 서울에서 제사지내는 날로 바뀌어버렸다. 아버님 제사를 형님이 모시게 되면서 명절을 맞는 정겨움은 아련한 추억이 된 것이다. 이번 설연휴 역시 남들은 '고향 앞으로' 힘겨운 여행길을 나설 시간에 우린 여수에서 호남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변산반도에서부터 서해안을 훓으며 수원으로 올라갈 계획으로 길을 나섰다. 3년전 쯤인가, 일제 수탈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쇠락한 항구의 흔적만 남아 있는 줄포와 동학혁명의 성지였던 고부를 답사한 적이 있었는데, 정읍, 줄포, 곰소라는 이정표들이 반복될 수록 비교적 때묻지 않았던 곳이라는 추억이 남아서인 듯 까닭 모를 반가움이 앞선다. 기실 다른 곳보다 멀지 않은 곰소 염전에 들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내소사 주차장에 이르렀는데, 의외로 차가 많다. 

 

10여년 전 봄에 다녀온 내 기억 속의 '부안'은 내소사, 격포항과 더불어 다시 찾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었는데, 요즈음의 부안은 일단락 된 새만금 종합개발 사업과 핵폐기장 부지 선정 문제로 각종 매체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감자답게 주차장에서 부터 '핵폐기장 결사 반대' '새만금을 살려내라'는 등 관련 플랭카드가 걸려 있어서 내가 정말 그 부안에 왔구나,란 생각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자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모 이동통신사 CF의 배경이 되었던 그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산책길로 꼽히는 곳이지만 몇 일 전에 내린 눈이 쌓인데다, 제법 사람들이 딛고 다닌 듯 반질반질하게 얼어 있어 여차 하면 엉덩방아를 찧을 그런 상태다. 군데군데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이 눈밭의 멍멍이 마냥 신나라 하고, 울창한 전나무 숲은 하늘을 찌를 듯이  쏟구쳐 있다.





디카를 꺼내 수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뚝 선 당산목을 버팀목으로 삼아 내소사 전경을 한방 찍고, 조금 걸어 들어와 단청을 칠하지 않은 자연 무늬로 을시년스러운 겨울과 어울려 보이는 대웅보전을 막 누르고 나니, 이런~ 밧데리 맛이 간다. 무엇보다 꽃창살을 여러 컷 찍고 싶었는데, 여분의 밧데리를 가지러 다시 주차장 까지 갔다 오기엔 무리라 아쉬움이 크지만 하는 수 없이 절간을 휘~ 둘러본 후 걸어나와야 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로 꽤 붐볐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만원짜리 기원 기와장을 열심히 권하는 보살님이 괜스레 추워보인다. 

 

다시 일주문을 나서며 생각하니 주차비, 입장료 등 지불 비용에 비해 내가 취한 것이 너무 빈약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중에 간 격포항에서도 그랬지만 그것은 단순히 다시 찾아와 보니 변했다,란 말로도 설명이 안 되고, 무엇에 대한 아쉬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무엇을 보고자 내가 이곳에 왔을까,란 생각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소 시간이 지난 사진을 디카에서 꺼내며 흔적을 남기는 글을 애써 적고 있는 지금도 그 기분은 계속 이어진다.




쫓기듯 후다닥 달려온 격포항이다. 부안 곳곳에 걸린 플랭카드와 별다르지 않은 문구의 글자들이 페인트로 갈겨진 선착장에 저절로 눈이 간다. 오랜 세월 동안 켜켜로 쌓인 채석강은 물이 차 멀찌기서 바라본 후, 등대로 향하는 길에 쭉 늘어선 포장마차들은 예전에 없던 풍경이지만, 걸음을 붙드는 그 분들의 생업이라 생각하면 거절의 손사래가 웬지 미안스러워진다. 마침 식때라 적당해 보이는 횟집 문을 밀고 들어섰다. 계속 배탈로 화장실을 드나들며 고생중이던 나는 백합죽을, 아내는 회덮밥을 시키고 메뉴판을 들다보며 무료함을 달랬는데 우리가 시킨 끼니 한 그릇부터 활어회 가격에 눈이 휘둥거려진다. 원래부터 이곳이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는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서울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보니 오히려 서울보다 더 비싼 곳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산지에서의 신선한 생선회를 싼 가격에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딱 좋을 것 같다. 한 가족이 들어왔다가 메뉴판을 보고 다시 일어서는 사이 먹거리가 나왔는데 내가 먹는 죽이야 그렇다쳐도 한숟갈 덜어먹어 본 회덮밥의 부실한 내용물에서 다시 본전 생각을 했다. 참으로 맛없는 점심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길이나 바닷가를 따라가다 보면 '전망 좋은 곳'이란 표지판들을 자주 만나는데 , 무심히 지나치며 닿은 곳이 최근 법원에서 전면 공사 중단을 권고 받은 그 말 많은 새만금 방조제다. 우선 부안과 군산을 잇는 거대한 스케일에 맞게 바다를 둘로 쩍 갈라 한참을 달려야 할 만큼 쭉쭉 뻗은 방조제의 방대함에 입이 벌어졌고, 단순히 이것이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투입된 우리의 혈세라 생각하니 만만히 보이지 않았다. 시범으로 심었다는 가로수는 꼬챙이처럼 빈약하여 이내 시범으로 고사할 것 같이 애처롭기 그지 없다. 

 

반나절. 변산에서 별다른 소통거리를 찾지 못한 나는 짧은 시간 방조제를 걸으며, 새만금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익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연을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개발 이데올로기'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 없다. 공사를 계속 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나 클 수밖에 없고 이제 와서 그만두기에도 그동안 쏟아부은 비용이 너무나 엄청난 새만금 개발. 이제 어쩔 것인가!



wrwtten date : 200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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