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겨울 날씨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어느 일요일. 특별한 일정없이 게으름을 피우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아내를 재촉해 길을 나섰다. 며칠 전 큰 맘 먹고 구입한 DSLR 카메라도 시험할 겸 나선 길이다. 작년까지 백만원대를 호가하는 가격이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인터넷 홈쇼핑 특판 가격으로 40만원(게다가 무이자 10개월 할부:도대체 이렇게 파는 물건이 정품인지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다)을 주고 구입한 것.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고 나선 길이 아니기에 가까운 고흥에 들러 유자나 구입하여 술이나 담을까 하여 들린 고흥 유자공원.
여행객의 준비 부족을 탓하는 듯, 유자공원 내의 유자나무는 시퍼런 이파리만 무성하고 노란색 열매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생각해보니 아무리 따뜻한 남도땅이라지만 한겨울에 열매를 맺는 과실이 어디 있을까? 유자공원 한켠에 마련된 특산물 판매장 문을 들어서자 실내에 유자향이 가득하다. 친절한 여직원이 건네는 차를 마시며 매장을 둘러보다가,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진 그 맛에 반해 유자차 한 병을 구입했다. 어디서 연유한 착각인 줄은 모르지만 이미 수확을 끝낸 유자는 고흥 특산물이라는 특명을 띄고 팔려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흥읍 풍양리에 있는 풍양양조장
TV에선가 고흥 어느 식당에서 유자막걸리에 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직접 담그는 집은 모르겠고 가까운 곳에 양조장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풍양 주조장'에서 막걸리 3통(천원/1통), 유자와 5종의 한약제를 첨가하여 3주간 숙성시켰다는 맑은 '향주'(2천원/1통) 1통을 구입했다. 5일이라는 짧은 유통기한을 생각하여 맛 볼 정도로만 가볍게 구입한 것이다.
옛날 어릴 적 고향 동네의 양조장은 그야말로 읍내에서 손가락 꼽히는 부잣집이었다. 하지만 이곳 풍양의 양조장은 옛날의 부잣집 양조장 흔적은 커녕 언제 문을 닫을까 걱정이 앞설 정도로 쇠락해가는 모습이어서 여행객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트렁크에 막걸리를 넣기 전에 마개를 따서 한모금 마셔 보니 단맛이 좀 강하다. 아마도 유자를 넣는 과정에서 단맛이 많이 가미된 듯 하다. 아내에게 한모금 마셔 보라고 하니 입안 가득 은은하게 유자향이 퍼지는 것 같다며 의외로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등산 갈 때 얼려서 가지고 가면 좋겠다나 어쨌다나...
고흥읍내 홍교 인근 하천둑을 따라 솟아오른 가로수(?)
어느 여름, 고흥읍내에서 홍교를 보고 나오다가 만난 가로수. 살다 보면 이 나무처럼 일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돌아갈 때가 있는 것이 세상사라는 걸 다시금 각인시켜주는 듯 하다. 작년 여름의 어느 휴일에도 그랬지만 고흥읍내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가 만만찮다. 고흥 군청 앞에서 맛집으로 꽤 알려진 '평화 한정식'을 찾았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퇴짜맞았다. 처음엔 주인이 교회 다니는 집일까 생각되었으나, 읍 자체가 비교적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조금 밀려나 있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싶은데, 이 역시 짐작일 따름이다.
배도 고프고 해서 고흥을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곧장 벌교를 향해 내달렸다. 우리에게 벌교는 늘상 여타 남도땅을 밟기 위해 거쳐가는 길목이기에 눈으로만 스치는 곳이었고, 어쩌다 오늘처럼 밥을 먹을 때만 한번씩 들리게 되는 '소박맞은' 동네인 것 같다. 역앞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역전식당'에서 꼬막을 안주 삼아 마신 유자 막걸리의 여운을 삭힐 겸 시장 주변을 배회했다. 사방팔방 둘러봐도 개발 바람이 미치지 못한 읍내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없이 초라하지만 정겨운 모습 그대로다.
한때는 '벌교에서 돈자랑,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생겼을 정도로 큰 상권을 이뤘던 재래시장. 해산물 투성이라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외곽에 번듯한 우회로가 뚫리면서 사실상 교통 요충지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때를 잘못 맞춰 들어오기라도 하면 사람과 차들이 한데 엉켜 난장판을 이루기도 하는 곳이다.
설을 일주일 앞 둔 대목같지 않게 한산했지만 가게 마다 꼬막 자루 만큼은 가득 쌓였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매생이, 피꼬막, 키조개, 낙지
시장 곳곳을 돌아보며 몇 장의 사진을 건졌다. 전라도 지방에서 예비 사위 성격 테스트용으로 대접한다는 매생이가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 남도에서조차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제법 많이 나는 모양이다. 자루를 통째로 쌓아 두고 연신 새조개를 까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피꼬막, 키조개도 보인다. 같이 보던 아내는 새조개를 보고 정말이지 무식한(?) 티를 낸다.
"저 '대합' 넣고 미역국 끓이면 엄청 진하고 맛있겠다."
할말이 없다. 하긴 아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도회지 아낙들이 저걸 보고 어찌 새조개인지 알 수 있으랴?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다 사진 찍는다고 하니 다소곳이 않은 아낙네
대놓고 사진을 찍기는 뭐해서 조심조심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 하니까 호객할 손님이 없는 무료함을 달래려는지 사진 좀 박아 달라는 젊은 시장 아주머니의 요청이다. 정면으로 그니의 자태를 두어 개 찍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밝은 그녀의 웃음이 무척 건강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억척스런 우리네 어머님들의 모습이면서도 찌든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해맑은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돈 마니 버시길...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사진들을 현상하여 지니고 다니다가 벌교를 지나는 길에 전달할 생각이다.
대충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갈려고 하니 아내가 화장실이 급하단다. 그래서 잠시 눈길이 머문 곳이 벌교 역사. 그 옛날 전남 남동부 지역 상권의 중심지였을 때는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을텐데, 이젠 하루 4편의 기차만 오가는 쇠락한 시골역이다.
때마침,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왔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합해봤자 몇 안 되는 손님으로 아무런 술렁임 없는 느슨한 풍경. 물끄러미 다음 정차역으로 떠난 기차의 뒤꽁무니를 지켜보았다. 멀어진 기차의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면 <태백산맥>에서 염상구가 주먹대결을 벌이던, 강 위 그 철다리에 이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참인데, 그만 나오라는 역무원의 제재를 받았다. 문을 걸어야 할 시간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열차시각표를 확인하니 방금 그 기차는 15:00시발 목포행이었나 보다. 벌교역앞을 빠져나와 소화다리를 건너 순천 방향으로 나오다 보면 왼쪽으로 현부자집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태백산맥>의 주무대라고는 하지만, 일부러 남아 있는 흔적들을 애써 찾아본 적은 없다. <태백산맥>이 말하는 주제는 그 시대 인민들의 삶과 그 삶을 바꿔가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유적들을 무슨 거창한 '답사'입네 하며 찾아다니는 것에 이유 모를 거부감이 강한 탓이다.
현부자집 앞 연못 오른편으로는 현대식 조립건물로 레스토랑 비슷한 것이 들어서 있다. 하긴 뭐 사람 발길 가는 곳에 잠시의 휴식 공간이 들어서는 것에 그렇게 큰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뭐 있나 싶어 그냥 고개 돌리고 말았다.
연못에서 바라본 현부자네집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현부자집 안내판, 현부자집 진입로, 현부자집 솟을대문 입구
written date : 20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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