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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몸에 좋은 소금은 없다!

by 내오랜꿈 2017.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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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나 젓갈을 담글 때 소금의 역할은 무엇일까? 보통 젓갈은 생선의 종류에 따라, 담그는 시기의 온도에 따라 소금 농도를 원재료 무게의 10~30% 정도로 조절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젓갈은 아마도 멸치와 새우일 텐데 새우젓갈의 소금 농도는 30% 정도고 멸치젓갈의 소금 농도는 20~25% 전후다. 시대상을 반영해서인지 이것도 예전보다는 소금 농도가 조금 줄어든 수치다. 젓갈 숙성 과정에서 소금의 역할은 한마디로 말하면 부패 방지다. 적정량보다 덜 넣으면 발효가 아니라 부패할 위험이 있고 많이 넣으면 숙성이 더디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젓갈을 개봉했을 때 부패가 진행되었다면 소금이 모자랐을 확률이 제일 크고(부패는 소금 농도 뿐만이 아니라 공기나 수분의 유입 등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다) 생선살이 삭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소금 농도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젓갈에 들어가는 소금은 어떤 소금이냐보다는 적정 농도가 제일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가능한 한 불순물이 덜 포함되어 있는 소금이 좋다. 특히나 간수가 덜 빠진 소금은 장이나 젓갈 맛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간수의 주성분은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마그네슘인데 마그네슘(Mg)은 음식 맛을 쓰게 만든다. 시중에 파는 멸치 젓갈에서 쓴맛이 난다면 그건 필시 간수 덜 빠진 소금을 사용했기 때문이라 보면 된다. 간수가 충분히 빠지지 않은 천일염 쓸 바에야 젓갈에는 천일염을 정제한 재제염이나 바닷물을 정제한 정제염을 쓰는 게 훨씬 좋다. 요즘 같은 영양과잉 시대에 몇 가지 미네랄 성분 더 먹자고 개펄 불순물까지 포함된 천일염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젓갈은 원재료 특유의 영양 성분과 풍미가 우러난 감칠맛을 맛보기 위한 것이지 소금에 포함된 극소량의 미네랄 성분 먹자고 만드는 음식이 아니다. 천일염이 재제염이나 정제염보다 무조건 좋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 보관한 지 2년 반 지난 천일염. 3년 이상 보관하면 처음 무게의 25% 정도까지 줄어든다. 이 과정을 통해 소금의 불순물인 마그네슘, 칼륨 등이 빠져나간다. 소금예찬론자들 중에는 이렇게 빠져나가는 미네랄(=불순물)이 소금의 영양분이라면서 간수를 빼지 말고 그대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더러 있다. 뭐 자기 좋다는 걸 말릴 순 없지만 마그네슘을 계속 먹다간 소금을 안 먹어 나트륨 부족으로 병원 실려가는 것보다 마그네슘 과잉에 따른 부작용으로 병원 실려가는 게 더 빠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드시기 바란다.


소금의 주성분은 염화나트륨이고 염화나트륨은 짠맛을 낸다. 소금이 짠맛 이외의 맛을 내는 이유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 때문인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마그네슘 형태로 존재하는 마그네슘(mg)이다. 바닷물은 96.5%가 물이고 3.5%가 염분이다. 이 3.5%의 염분 성분을 분석하면 염화나트륨(77.9%), 염화마그네슘(9.6%), 황산마그네슘(6.1%), 황산칼슘(4%), 염화칼륨(2.1%)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이상의 각 성분별 퍼센티지 수치는 모두 국립농업과학원, <바닷물의 농업적 활용 매뉴얼>에서 인용). 곧 소금 속에 마그네슘 성분이 의외로 많은 15.7%나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갓 만든 천일염은 쓴맛이 아주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천일염은 2~3년 묵혀 마그네슘이나 칼륨 같은 불순물(소금 입장에서 보자면 나트륨 이외의 미네랄 성분은 불순물일 뿐이다)을 충분히 뺀 것이라야 쓴맛이 줄어든다. 이 과정을 일러 흔히들 간수가 빠진다고 표현한다.


간수가 빠지는 이유는 소금이 가지고 있는 조해성 덕분이다. 소금을 상온 상태로 보관하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마그네슘이나 칼륨 같은 미네랄 성분이 수분에 녹아서 함께 빠져나간다. 내 경험으로는 3년 정도 보관하면 애초 소금 중량의 약 25% 정도까지 줄어든다. 줄어드는 중량의 대부분은 수분일 텐데 이 과정에서 마그네슘과 칼륨이 같이 빠져나가면서 나트륨의 순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나트륨의 순도가 높아진 소금을 먹으면 단맛이 나니 어떠니 하는데 사실은 단맛이 나는 게 아니라 마그네슘과 칼륨이 빠져나가면서 쓴맛이 줄어드는 까닭에 혀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토마토나 딸기 같은 과일에 미량의 소금을 치면 혀가 단맛을 더 많이 느끼는 것처럼 짠맛은 다른 맛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원재료에 소금 하나만 가지고 만든다고 할 만큼 원래 짠맛은 모든 맛의 중심이기도 하다.



▲ 천일염을 정제한 재제염(꽃소금)


소금을 표현하는 말 중에 가장 과대평가된 건 아마도 '천연 미네랄의 보고'라는 수식어일 것이다. 자료에 따라서는 소금에 함유된 미네랄 종류가 70여 종이니 90여 종이니 하는데 지구상에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원소가 전부 92가지이니 수백 가지 운운하지 않는다면(실제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은 글도 있다) 전혀 허튼 소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난 아직 소금에 정확히 몇 종류의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는지 과학적 분석이 바탕이 된 자료를 본 적도 없고, 소금에 함유된 그 수십 가지의 미네랄 가운데 어떤 성분이 우리 몸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기에 몸에 좋다는지를 분석한 자료는 더더욱 본 적도 없다. 그저 소금이 미네랄의 보고라거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격상된 주장들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음식이나 물질이 우리 몸에 좋다는 걸 증명하려면 그 음식이나 물질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몸에 좋다는 주장은, '무조건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종교론자들의 주장만큼 허왕된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92 가지의 원소 가운데 인간의 몸에서 검출 가능한 원소는 대략 60여 가지라고 한다. 이 중에서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원소임이 입증된 건 가장 최근인 2014년에야 생리작용 기제가 밝혀진 브롬(Br)을 포함해서 겨우 27가지다. 이 27가지 중에는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탄소, 산소, 수소는 물론 비소(As)나 크롬(Cr) 같은, 일반적으로는 독극물로 알고 있는 원소도 포함되어 있다. 비소나 크롬은 극소량만 섭취해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독극물이지만 인체내에 극미량으로 존재하면서 생리작용에 관여하고 있음이 2000년대 들어와 유전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비로소 밝혀진 것이다.


미네랄은 크게 보면 인체내 생리작용이 규명된 미네랄과 규명되지 않은 미네랄로 나눌 수 있는데, 생리작용이 규명된 미네랄이라 하더라도 비소나 크롬처럼 극소량만 섭취해도 생명이 위독한 미네랄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아직 생리작용이 규명되지 않은 미네랄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섭취할 경우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인체 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인위적으로 섭취할 경우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미네랄을 두고 무조건 우리 몸에 좋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게 작금의 소금 예찬론자들인 것이다. 소금의 위험성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포장하는 요즈음의 건강지상주의적 작태도 분명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겠지만 소금을 마치 몸에 좋은 천연 미네랄의 보고인 양 절대시하는 태도 역시 비과학적이고 맹목적이란 점에서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 물과 소금만으로 담그는 동치미


몇몇 어리석은 사람들의 주장 중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소금을 섭취하지 못할 경우 탈수 현상은 물론 이상 행동을 보인다는 점과 산양이나 염소들이 추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에 매달려 소금을 핥아 먹는 행위를 들어 소금이 생존의 필수 요소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나 동물이 목숨을 걸 정도의 위험과 맞바꿀 만큼 절실히 요구하는 것은 소금의 나트륨 성분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각종 미네랄 때문이 아니다. 다른 미네랄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순도 100%의 나트륨만 공급한다면 절벽에 매달려 목숨 걸고 소금을 핥아 먹을 어리석은 산양이나 염소는 없다. 이보다 더 나아간 주장도 있는데 소금에는 온갖 몸에 좋은 미생물(?)이 들어 있으므로 간수를 빼지 않은 소금이 몸에 더 좋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다. 우리가 음식물을 보관할 때 염장을 하는 이유는 미생물이 번식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함인데, 소금에 미생물이 많이 들어있다니? 나 원 참...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말자. 원숭이보다 못한 사람 만든 것도 죄송스러운데 자칫하다간 염소보다 못한 사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요즘 같은 영양과잉 시대에 소금은 그저 음식의 간을 맞추는 양념일 뿐이다. 나쁜 소금(불순물이 많이 함유된, 맛이 쓴 소금)은 있을지언정 몸에 좋은 소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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