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저 멀리 안 보이는 곳에 버리고 싶은 귀찮은 존재"
<하나비>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언젠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서늘하고, 통찰력 있는 수사를 말한 사람이 또 있을까? 우리는 가족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마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모른다"느니 "있을 때 잘 해" 같은 수사를 너무나 쉽게 인용하면서 그 의미를 희화화시키지만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족이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귀찮은 존재고 불편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은 귀찮고 불편한 존재인 '가족'의 의미를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사람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따뜻한 감성을 지닌 존재로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대표적으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노력하는 얼치기 사무라이의 고군분투를 그린 작품, <하나(More Than Flower)>를 보시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들 속에서 그려지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러하다.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밖에 안 된 어린 아들에게 "엄마는 좀 행복해지면 안 돼?"라는 말을 하며 네 아이를 낡은 아파트에 방치한 채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떠나는 <아무도 모른다>의 비정한 엄마조차 어떤 때는 가슴 따뜻한 엄마이고, 애교 많은 여성이다. 흔히 말하는, 자기합리화일지언정 시대가 그렇고 상황이 그래서 어떤 '부족한' 선택을 하게 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말이다. <아무도 모른다(2005)>로부터 시작해 <걸어도 걸어도(200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까지 그가 만든 가족영화에서 그려지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나 자신일 수도 있고 내 형제자매 중 그 누구일 수도 있는, 그런 인물들이다.
2.
내 주변에 존재하는 가족 구성원 그 누구일 수도 있는 인물들이 나누는 조용하고 잔잔한 대사들 속에서 얼키고설킨 가족간의 감정들이 품어내는 날선 섬뜩함이 극한에 이른 형태로 표출되는 작품이 바로 <걸어도 걸어도(Still Walking)>다. 오래전에 먹은 생선 가시 하나가 소화되지 않은 채 위속 어딘가를 맴돌며 수시로 되새김질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그 되새김질 하나하나가 잘 정리되어 어디 한군데 허투로 쓰인 데 없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대사들과 화면으로 꽉 짜여진 영화인 것. 조금의 요란함이나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단 한 사람의 감정의 과잉 없이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 어딘가에서 서로를향해 응어리진, 상처난 감정이나 고통의 무게를 따뜻함을 가장한 부드러운 말들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찬사받아 마땅하다.
이미 사라진 사람(장남)과 남아 있는 사람(아버지, 어머니, 차남, 딸)은 끊임없이 변주되어 각자의 삶 속으로 침투한다. 그렇게 변주되어 침투한 관계는 서로의 기억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긴장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를 향해, 특히나 가족을 향해서는 왜 사느냐고 질문하진 않는다. '왜 사니?"라는 질문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욕'으로 읽힐 만큼 삶은 당위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극적인 요소다. 너무나 급작스럽고 어이없게 다가온 장남이란 존재의 죽음 이후 각자가 떠안은 죽음의 무게에 따라 갈라지는 삶의 풍경들. 사실관계를 왜곡해서라도 기억하려는 사람과 이제는 제발 그만 잊고 싶은 사람 모두 서로 얼굴을 맞대야 하는 상황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이틀 간의 일상을 응시하는 카메라. 무표정할 것만 같은 카메라가 이들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날선 감정들의 검붉은 선을 선연히 그려낸다. 텍스트보다 더 텍스트다운 카메라. 단점은 보이는 자에게만 보인다는 사실.
3.
사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은 보통의 관객들이 즐겨 찾을 만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버라이어티한 볼거리의 향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어떤 면에서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일 수 있는 것. 그러나 타인에겐 "왜 사느냐?"고 물은 순 없어도 자기자신에겐 한 번이라도 묻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자그마한 위안거리가 될 수도 있다. 따뜻함을 가장한 채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가족이라는 관계망의 연약함과 허술함 속에서도 결코 포기되지 않는 내일을 향한 긍정적인 메시지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우울한 음화처럼 각인된 가족사진을 똑바로 응시하게 만드는 힘을 주기도 할 테니까.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은 견뎌야 하기에...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가 조금 무거운 분위기라면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유쾌한 편이다. 극적인 사건이나 억지스러운 요소가 없는, 영화 같지 않아서 더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꼭 무슨 사건을 만들고 자극적인 요소를 삽입해야만 영화라고 생각하는(예컨대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 가족>이 이 범주에 속한다. 굳이 영화 후반부에 피 튀기는 요소를 삽입해야만 했었는지...),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다. <하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굳이 가족영화 범주 속에 넣기는 힘들지만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잔잔한 웃음이 담긴 영화들이다.
"늘 이렇다니까, 꼭 한발씩 늦어"
겉으로 보기엔 잔잔하면서도 평화롭고 평범하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같지만 소름끼칠정도로 인간의 이기적임이 이토록 잔이함을 보여주면서도 그점이 바로 인간의 모습인것같다 영화 분위기 자체가 너무 잔잔하고 좋다 완벽한 영화다 .
父:다음은 설에 보겠군.子:이번 설은 안내려가도 되겠군...
버리고 버려도 다시 돌아오는게 가족이다
서투른 대사가 없다. 꽉 짜여진 연출력.
왜 이 감독을 천재라고 하는지 알게 됐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사 하나 행동 하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마음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들이 품고 살아가며 몇번이나 마주하는 것들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밥상머리앞에서는 그래도 따뜻한 분위기와 태도로 일관해야한다. 그렇게 감춰도, 드러나는 가족들의 사연, 따뜻함을 가장한, 서로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말들, 좁혀지질 않는다. 나는 그게 가장 무섭다.
평범한 일상소재로 드러나지 않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내요. 서서히~ 배꼽으로~가까워지는 영화 ㅋ
내가본 가족영화중엔 최고. 차가운듯 따뜻하다. 감독이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라는데 나도 부모님에 대해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생각할 수 있을것같다. 뭐든지 한 발자국 늦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교훈도 추가.
흠 잡을데가 없다. 시나리오,연출,캐스팅,연기,영상,음악 모두 완벽에 가깝다.
이형석
음화로 그려낸 가족의 풍경.
별점 - 총 10점 중8.5 스토리8비주얼8연출9연기9
봐도 봐도 또 새로운 게 보이는 오래된 가족사진이자 앞으로 언제 찍어도 또 그렇게 찍게 될 가족사진. 모든 말과 행위, 그리고 풍경이 가슴을 툭툭 치고 가며 작은 파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가족 영화다. 늘 새롭게 쓰지만 항상 수신인을 잘못 됐거나 매번 늦게 도착한 편지같은 관계, 그래서 아프고 서글프며 쓸쓸한 가족의 풍경을 담은 음화.
김세윤
정말, "있을 때 잘하자"고 다짐하게 하는 영화
별점 - 총 10점 중9.5 스토리9비주얼9연출10연기10
'원망'과 '상처'에 대한 질문이면서 '용서'와 '화해'에 대한 답변. "있을 때 잘해." 이 흔해빠진 충고를 이렇게 솔깃하게 설득하는 영화는 처음 봤다. 걸어도 걸어도 서로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하고, 말해도 말해도 자신의 진심만은 털어놓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가족들에게 권함.
김도훈
고레다 히로카즈의 또다른 역작
별점 - 총 10점 중7 스토리7비주얼6연출8연기7
고레다 히로카즈는 언제나 가족을 이야기한다. 해체되고, 상처받고, 흩어지고, 박살나고, 어긋난 가족 말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지난 상처를 극복하는 소박한 가족 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라는 올무에 대한 낮은 탄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은 누가 안볼때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다. 고레다 히로카즈에게 가족은 버려도 버려도 되돌아오는 존재다.
이동진
두 차례의 완전한 매혹
별점 - 총 10점 중9.75 스토리10비주얼9연출10연기10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접하고 완전히 매혹되었다. 개봉을 앞두고 최근 열린 시사회에 다시 가면서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 만족스런 영화였기에 다시 보는 동안 처음의 그 감동이 행여 다칠까봐. 그러나 기우였다. 두번째 관람 체험 역시 완벽했다. 아마도 앞으로 나는 이 무섭도록 깊고 아프도록 아름다운 가족영화를 수없이 되풀이해서 볼 것이다. 당신 또한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김현수
그래도 부모 곁을 떠나야 한다면
별점 - 총 10점 중9.5 스토리9비주얼9연출10연기10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와 여러 의미에서 대구를 이루는 영화다. 그가 지금보다 더 독하게 가족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그리고 지금껏 보아온 영화를 토대로 새로운 자기 세계를 구축한 고레에다 감독만의 세계는 보고 또 봐도 정겹고 서늘하다. 그래도 부모 곁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면 꺼내 보며 마음을 다잡게 될, 결국엔 떠날 것을 알면서 보게 될 영화다.
김현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정수이자 정점
별점 - 총 10점 중8.75 스토리8비주얼9연출9연기9
삶과 그 일부로서의 죽음, 가족이라는 작은 세계, 그 안의 폭력성,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허술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히 심어놓은 내일의 희망. 데뷔 이래 감독이 정밀히 응시해 온 테마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 도리어 단출하고 소박하다. 최근 우리에게 도착한 [태풍이 지나가고]의 원전 같은 영화.
송경원
살아도 살아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너, 나, 가족
별점 - 총 10점 중8 스토리8비주얼8연출8연기8
삶은 당위의 영역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왜 사는지 질문하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삶을 환기 시키는 이벤트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세밀히 갈라지는 삶의 풍경. 떠난 자와 남은 자, 기억하는 자와 잊고 싶은 자 모두 가족이란 이름 아래 얼굴을 맞대야 하는 상황. 소소해 보이는 일상 아래 흐르는 검붉은 감정들까지 놓치지 않고 응시한다. 아파도 외면할 수 없는 통찰. 흔들리지 않는 카메라. 고레에다의 어떤 정점.
걷고, 걷고, 아무리 걸어도 다다르기 힘든 곳, 가족
씨네21 | 김봉석
마음을 흔드는 가족의 이야기
씨네21 | 김종철
오즈의 발자국을 따라 즐겁고 나른하게
씨네21 | 박평식
무엇이 죽은 자를 달리 기억하게 만드는 걸까?
씨네21 | 이용철
모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씨네21 | 달시파켓
이틀로 세월을 보여준 영화
다른 것보다 싱글맘 역의 나츠카와 유이가 서늘한 표정으로, 동시에 명랑한 어조로 '네~!'라고 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허투로 쓰인 장면도 대사도 없는 가족영화. 내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때 우리가족은 어떨까.
잔잔하지만 무거운 영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음악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한 시골마을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버지가 보고싶은 영화. 옆에 계실 때 잘해드리자!
<태풍이 지나가고>를 본후에 <걸어도 걸어도>를 봤는데 <태풍이 지나가고>보다 더 가족에 대한,부모님에 대한,살아가는거에 대해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제목이 왜 "걸어도 걸어도"인지는 잡힐듯이 잡히지않는 느낌으로 생각또한 계속 걸어가고 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를 바라봐 주는 고레에다 감독의 카메라.
왜 자리가 비면 그때서야 알까.
고레에다히로카즈니까
이게 우리내 사는 이야기.어찌보면 평범해보이지만 결국 평범한 삶이라는건하나도 없는 우리내 인생.돌아가신 할머니, 돌아가신 아버지, 나의 소중한가족들이 생각나는 그런영화
가족간의 삶과 갈등을 다룬 "걸어도 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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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원한이 얽힌 인물들의 행동을 잔잔하게 그리는 반면,
<레이첼 결혼하다>는 강렬하게 어수선하게 그린다...
줄거리
현대 일본사회에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사랑과 원한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한 가정의 이야기. 15년 전 끔찍한 사고로 죽은 맏아들의 기일날 온 가족이 모이면서 그간 숨겨져 있던 비밀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걸어도 걸어도(Still Walking)>
아주, 일상적이고 여러번 다루어져 왔을 법한 이야기다.
포스터는 마치 가족간에 얽힌 미스테리한 사건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바다에서 어린 아이를 구하고 죽은 형, 그 형의 기일에 모인 가족.
형은 죽었지만 가족에겐 죽은 형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있다.
아버지 하라다 요시오(原田芳雄,Yoshio Harada)는 의사였던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아버지.
어머니 키키 키린(樹木希林, Krin Kiki)은 전형적인, 자식걱정에 수다스럽고 가정적인 어머니.
차남 아베 히로시(阿部寛,Hiroshi Abe)는 부모님이 탐탁해 하지 않는 아이 있는 사절한 부인과 함께 집을 찾는다.
여동생 You 역시 자신의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집을 찾는다. 개구쟁이 남매와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사람좋은 사위.
어머니와 딸의 대화.
살림 서투른 딸을 걱정하는 엄마와 일상의 이야기.
무 조림 하는 방법을 알려줘도 인스턴트만 먹어서 할 필요없다면서도 그래도 엄마에게 살갑게 말 붙이는 딸.
어머니는 여전하다. 엄마란, 버릴 만큼이라도 내 새끼 먹을 걸 만들고 만든다.
못이 박힐 만큼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고 또하고 그렇게 추억에 젖어서 산다.
딸에게 어머니란, 닮기 싫으면서도 은연중 닮게 되는 사람이다.
미운게 있는데도 미워하기엔 안쓰럽고 타박하면서도 또한 미안해하고
엄마의 하소연과 잔소리가 듣기 싫어 짜증냈다가도 금방 또 후회하고 그렇게 아옹다옹.
아내와 남편의 대화.
'애 딸린 과부'라며 은연 중에 부담 주는 시부모님. 실직으로 마음이 답답한 남편. 하루 종일 눈치보며 종종거린 아내.
데려온 자식인 자신의 아들을 위한 잠옷은 사 두지 않았음에
친손주들을 부를 때와 달리 꼬박꼬박 '군'자로 자신의 아들을 존칭해 부름에
자신이 귀엽다며 기모노를 꺼내 주면서도 애는 안 낳는게 낫지 않냐며 속을 긁는 시어머니에
마음이 상해 방으로 들어온 며느리. 그래도 시어머니가 흥얼거리는 노래에 대해
"여자는 그런, 자신이 혼자 있을 때 듣는 자신만의 비밀스런 노래가 있다"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새로운 아버지 료짱-도 천천히 천천히 네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 다독인다.
가족이란 게, 이제는 피를 나눈 사람들의 집합이 가족이라기 보다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함께 이해하고 다독이는 <식구>, 밥 같이 먹는 사람들이 가족 아닐까.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
더이상 형의 기일에, 구해준 그 아이를 부르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데.
어머니의 낮고 깊은 분노는 여기서 드러난다. 내 자식, 내 새끼들에 대한 애착.
내 아들을 죽인 그 아이가 1년에 한번쯤, 여기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 정도 쯤이야.
어머니가 그런 생각으로 그 사람을 매년 불렀을 줄 몰랐는데.
가족간이라는 게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아는 사이라는 건 아닌데.
가족이라서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마음은 더 상하고,
오히려 아픈 부분을 잘 알아서 한 마디를 해도 더 신경을 긁는다. 그래서 더 서운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
죽은 형의 산소를 찾아 올라가면서 어머니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죽은 형이라며 노랑 나비를 쫓고 죽은 형의 비석에 물을 뿌리며 말을 건다.
형의 그림자는 떠나지를 않는다. 죽었어도 죽지 않는 형.
있었던 사람을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밉든 부끄럽든 원망스럽든, 서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더이상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 아버지는 자신의 뒤를 잇지 않는다고 못마땅해 한 아들에게-
저 녀석-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는 손주와 함께 축구장에 가자고 말한다.
자신의 아들은 절대 의사 시키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신도 어릴 적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본심과 다르게, 늘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서로에게 걸어가는게 필요하다.
실제 축구장에 가진 않아도- 조금은 마음을 열고 함께- 가자고 말이라도 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 조금 가까워졌다고 묵은 갈등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설날엔 오지 말자고 떠나는 아들 내외와 다음번엔 설 쯤 오겠구만 하는 부모님 내외.
결국 아버지와 축구장에 가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차에 태워 형의 산소에 모시지도 못한다.
인간관계는 어렵다. 그 중에서도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 가족관계 아닐까.
가족은 개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나무 기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그 파고드는 나무 뿌리에 얽매여 숨막힐만큼 힘들기도 하다.
잘해보려고 해도 이렇게 한발짝씩 늦는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을까.
아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가족을 차에 태우고 어머니가 했듯 형의 묘를 찾는다.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에 관해, 담담하면서, 생각해볼수록 심란하게 잘 그려낸다. "5-6년 전에 나는 내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라고 이 영화를 시작한 계기를 언급했다. "만일 내가 계속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아버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어머니 때문이다." 라면서.
그는 31회(2004) 겐트 영화제 그랜드 프릭스 상을 받았다. <아무도 모른다>로.
무책임하게 버린 아이들이 처절하게 살아남기위해 애쓰는,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이야기로.
내용의 짜임새나 충격의 정도는 <아무도 모른다>가 더 잘 표현됐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는 누구나 가족과 겪을 만한 갈등, 그 소소함을 더 잘 표현했다.
소소함이 와닿게 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아주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정말 현실에서 그렇게 말할 것 처럼.
대단한 사건들과 복선을 만드는 것보다 사소함으로 주인공들을 진짜 가족 구성원인양 치밀하게 표현해 냈다.
<아무도 모른다>에 무책임한 엄마가 <걸어도 걸어도>의 딸 역할로 나온다.
나이 먹었어도 아이 스러운 말투와 무책임한 행동거지가 아주 제대로였던 You.
'긴 세월 고마웠다. 도쿄생활은 아주 재미있었다. '고 오다기리죠의 <도쿄타워>에서
전형적인 희생적 어머니로 나왔던 키키 키린의 연기도 무척이나 좋았다. 정말이지 능청스럽고 안쓰러운 엄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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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날카롭게 생채기를 남긴다... ★★★★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형에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 집에 들어와 살고 싶어 하는 장녀 지나미(유) 등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지만, 화목해 보이는 웃음 뒤로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가족 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영화 중의 하나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였다. 엄마 또는 어른이 부재한 아이들의 표정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담아낸 영화가 있었던가.(최근 <나무없는 산>과 <여행자> 등 한국 영화의 잇따른 성과를 제외하고) 아이들의 표정을 담았던 그의 카메라는 이제 오래 전 장남을 잃은 상실감,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가족들의 표정과 그들 사이를 흐르는 날카로운 상흔을 담아낸다.
<걸어도 걸어도>는 딱히 특별한 이야기나 사건 없이도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예 중의 하나다. 매년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모이는 가족들은 퉁명스러운 아버지(하라다 요시오)의 뒤에서 핀잔을 늘어놓고, 다 큰 자식들은 여전히 엄마(키키 키린)에게 칭얼대며 떼를 쓴다. 사실 영화의 시놉시스를 미리 읽지 않고 이 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대체 이 가족이 왜, 무슨 이유로 한자리에 모이게 됐는지를, 그리고 가족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지는 영화의 초반부에 알기 힘들게 되어 있다.
즉, 가족들의 대화는 관객의 이해의 지평을 서서히 넓혀가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대화는 많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주 조그만 단서들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바로 가족의 본질에 대해 관객 스스로 반추하게 한다.
가족은 누구보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존재다. 이미 버려졌을 것으로 알고 있던 오래된 물건들이 자신도 모르게 보관되어 있고, 욕실의 부서진 타일 조각에도 마음이 쓰인다. 옥수수가 튀겨지는 소리에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회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가족인 것이다. 반면, 가족은 서로에게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긴다. 부모는 장남에 대한 기대와 차남에 대한 실망을 의연 중에 드러내고, 차남 료타는 형에 대한 미안함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허둥댄다. 인자한 어머니는 사위에 대한 불신으로 들어와 살겠다는 딸의 요청을 거부하고, 며느리와 손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한다. 아내는 오래 전 남편의 바람피는 현장을 확인했으면서도 지금까지 가슴 속에 묻어둔 채로 좋은 부부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서로의 생채기를 부여안은 채 두루뭉실 봉합된다. 그 속에서 상처는 썩을지언정 단절되지 않는다. 가족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은 이렇게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족 구성원들의 가슴 속에 겉으론 보이지 않는 깊은 인장을 남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자면 너무나도 인자한 듯한 어머니가 장남이 죽은 대신 살아난 아이가 돌아간 뒤 차남과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료타가 “이제 그만 불러도 되지 않아? 우리 만나는 게 힘들어 보인다”고 하자, 어머니는 뜨개질하던 그 모습 그대로, 차갑고 무심한 표정으로 “그래서 부르는 거야.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하는 거야. 그 애를 겨우 1년에 한 번 괴롭힌다고. 내가 벌을 받지는 않을 거야”라며 답한다. 어머니의 대답은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의 아픔과 함께 등골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느낌을 동시에 준다.
가족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운,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긴다는 면에서 보면 <걸어도 걸어도>는 미국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를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레이첼 결혼하다>가 끝내 화합과 희망으로 마무리되었다면, <걸어도 걸어도>는 아무리 가족이라 하여도 쉬운 화합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은 늘 아주 조금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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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날
어제 비오는 날에 <걸어도 걸어도>를 봤다.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영화는 비오는 날에 퍽이나 잘 어울린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여름소리 가득한 평온한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의 시선 앞에서 펼처지는 빛나는 일상은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그의 출세작 <아무도 모른다>에서 보여주었던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매력은 이상하게도 소년의 집 안에서 시작된다. 한 방에서 이루어지는 컷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란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그 초연한 빛에 들꽃 같은 아이들은 세상의 어둠이란 모두 씻어버려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밝은 얼굴을 한다. 감독은 사회적으로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들도 모두 그 여름햇살에 같이 녹여버려, 현실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마치 담임선생님이 대학입시 상담을 하며 웃으며 차 한 잔 주시는 것처럼 현실의 냉혹함도 두 손 모아 호호 불며 녹여버린다. 그가 데뷔 후 처음 주목을 받았던 <원더풀 라이프>의 경우 사람이 죽어 어디로 갈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하지만,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의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인간사의 한 귀퉁이를 써내려가는 듯 담담한 필치로 햇살 드리우는 방에서 미소 지며 이야기한다. ‘고레에다’의 영화란 ‘어떤 이야기를 하건 난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름햇살의 싱그러움 그 자체다.
아무도 모른다
료타(아베 히로시)는 10여 년 전 바다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죽은 형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아내(나츠가와 유이)와 함께 부모님 댁으로 간다. 료타의 누나인 지나미(유) 역시 남편과 함께 도착한다. 그곳에 머물던 1박2일 동안 료타는 의사로 은퇴한 아버지(하라다 요시오)와 평생 주부로 살아온 어머니(기키 기린)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뜻하지 않게 들여다보게 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이기에 할 수 없었던 서로의 입장에 대한 영화다. 열등감과 시기, 질투, 미움이 공존하는 가족들은 가족이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속마음을 모두 꺼내놓지 못한다. 작은 집 안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대화들에는 조심스럼이 가득하다. 이 말만큼은 할 수 없다고, 이 말로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불편해질 수 없다고, 차마 입에 꺼내놓지 못하고 슬며시 넘어가는 안타까움은 가족들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눈의 깊이에 새겨져있다. 그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슬리퍼 질질 끊고 아이들이 나간 집 앞 골목, 산소, 바다일 뿐이다. 여름에게 부탁하는 삶의 무게란 흐르고 흘러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고민들은 다잡을 수 없는 체념으로 버스에 올라타며 다시 볼 날을 그릴 수 없게 한다. 당신을 다시 만나는 게 두려워요 라는 눈빛으로 기약 없는 만남을 전한다. 버스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흘리는 료타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깨달음은 늦다’
넌 어떤 가정을 꿈꾸니? 네가 바라는 가족이란 어떤 의미니?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묻는다. 서로의 친근함만큼 사랑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고 당신의 가족을 떠올리겠지. 안타까움이 묻어있고, 행복함이 가득한 기억을 머리에 떠올리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겠지. 나도 생각했다. 내방 창문 옆에서 앉아 계시는 우리 어머니,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분주한 형의 모습, 아버지의 젖은 셔츠까지 하지만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흠뻑 젖은 내 티셔츠엔 고민의 흔적이 가득하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 극 중 어머니가 부르던 노랫말처럼 가족은 희미한 기억으로 잊혀 질 것이다.
도대체 이 놈의 비는 그치질 않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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