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나무는 난대성이고 늘푸른 작은키나무다. 우리 나라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과실나무는 봄에 꽃이 피고 여름, 가을에 수확되지만 비파나무는 특이하게도 늦가을부터 꽃몽오리를 맺기 시작해 꽃이 핀 채로 겨울을 난다. 해가 바뀌는 엄동설한에 꽃을 피워 겨울잠 잊은 꿀벌들을 불러 모으는 모습은 남도 바닷가 지방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렵게 꽃을 피운다한들 수분이 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기에 비파나무는 겨울에도 꿀벌들이 완전히 동면에 들어가지 않는, 최저기온이 영하 5℃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지역에서만 결실이 가능하다. 남부지방이라도 내륙성 기후에 가까운 지역에서 자라는 비파나무의 결실이 어려운 이유다.
▲ 2014년 5월에야 처음으로 구경한 비파 열매
▲ 2014년 6월, 처음 수확한 비파 열매. 모두 서른 개 정도였던 듯하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비파나무는 아마도 최소한 11~12년생은 된 듯하다. 이사온 뒤 처음 몇 년 동안은 비파 열매는커녕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내다 2013년 겨울에서야 처음으로 꽃 구경을 했고, 2014년 6월에 난생처음으로 열매를 맛보았다. 서른 개 정도 수확한 게 전부였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6월, 서른 개 남짓 수확하던 그 비파나무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매가 맺히고 있다. 3년 만에 30개가 3,000개가 된 듯하다. 온라인 상에서 보면 심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비파나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글들을 볼 수 있는데, 비파나무는 최소한 7~8년생은 되어야 꽃이 피기 시작하고 10년은 지나야 열매가 제대로 맺힌다.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한 나무다.
▲ 2017년 6월 수확한 비파 열매. 3년 사이에 수확량이 이렇게 변했다.
작년부터 그랬지만 비파는 수확하고 나서가 걱정이다. 보관이 안 되는 열매이기에. 저장시설이 없는 한 결국 술이나 발효효소액을 담글 수밖에 없다. 어떤 재료든 마찬가지겠지만 비파발효액을 거른 건지를 그냥 버리기는 너무 아까운지라 올해는 이 건지를 이용해 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발효액을 담글 때 씨앗을 모두 제거하는 일이 덤으로 따라왔다. 비파 열매 하나하나 칼로 자른 뒤 씨앗을 제거하는 일은 생각보다 중노동이다. 둘이서 너냇 시간 씨앗 제거 작업을 하면 15kg 정도 할 수 있는데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다. 해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이다.
▲ 발효 건지를 활용해 잼을 만들기로 했기에 발효효소액을 담글 때 일일이 씨앗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이 주일에 걸쳐 수확한 비파 35kg. 먹을 만큼 먹고, 상한 것 버린 다음 씨앗을 분리하고 보니 전부 25kg이 조금 넘는다. 설탕 필요량은 정량대로 한다면 씨를 제거한 상태니까 21.25kg(25*0.85)일 텐데, 20% 정도 줄여서 17~18Kg 정도의 비정제당을 사용했다. 비파 생과육의 수분이 85%가 넘을 테니까(매실보다는 수분이 풍부하다) 이론적으로 발효효소액을 거른 뒤 건지의 무게는 4kg 가까이 될 것이다. 수분함유량까지 계산하면 6~7kg은 족히 될 터인데 만들 수 있는 비파잼 양이 이 정도 된다는 뜻이다. 생각대로 된다면 올해는 발효효소액뿐 아니라 비파잼도 풍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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