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비 다운 비 한 번 없는, 메마른 날씨였던지라 봄파종을 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3월 말부터는 주기적으로 비가 내린다. 제주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즈음에 내리는 잦은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여름 장마처럼 사납지는 않은, 안개비처럼 자욱한 운무를 동반한 잔잔한 비가 대지를 적시면 애기 주먹손 모양을 한 고사리들이 쑥쑥 올라온다. 고사리가 올라오는 시기에 내리는 비라는 뜻에서 '고사리 장마'라 부르는 것. 제주도와 가까운 남도 해안가 지방도 이 봄장마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는 편이다. 덕분에 지금 남도의 산야는 고사리, 고비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 고비
▲ 고비 삶아서 말리기
▲ 고사리(왼쪽)와 고비(오른쪽)
일요일 오전, 두어 시간 집 주변 야산을 쏘다니며 꺽은 고비가 한 망태기다. 우리 집에서는 고사리보다 고비를 선호한다. 고사리는 온 산을 돌아다니며 채취해야 하지만 고비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올라온다. 몇 년, 집 주변 산을 뒤지고 다녔던 터라 이젠 고비가 자라는 곳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산을 오르내리며 고사리를 찾느라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것보다는 편하게 정해진 장소에서 고비를 뜯는 게 훨씬 편한 일임은 두말 하면 잔소리. 뿐만 아니라 고사리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고비는 오롯이 우리 몫이다. 이곳 사람들은 고사리는 먹지만 고비는 잘 먹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고비는 고사리보다 훨씬 통통하면서도 매끈한 편이고, 식감도 부드럽다. 단지 고사리보다 쓴맛이 조금 강한데, 삶은 다음 물에 충분히 우려낸다면 쓴맛은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
▲ 개옻순
▲ 참옻순
고비가 나올 때 쯤이면 옻순도 올라온다. 비탈진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미끄러지지 않으려 주변의 나뭇가지를 잡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옻나무 사이에서 고사리를 꺽고 있을 때도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옻 가지를 꺽어 진액을 만지지 않는 한 옻은 잘 오르지 않는 것 같다. 개옻은 이미 충분히 피었고, 참옻은 며칠 더 기다려야 따기 알맞게 피어날 것 같다. 다음 주말은 너무 늦을 것 같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선다. 적당할 때 다른 사람이 딴다면 그 사람의 복이려니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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