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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특작과학원 자료/서류

감자(1) - 기원과 전래, 생산현황

by 내오랜꿈 2015.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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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자의 기원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중부 고원지대에서 많은 종류의 야생종 감자가 분포하는 것으로 볼 때 이 지역이 감자의 원산지로 알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13천 년 전부터 칠레 해안을 따라 자라는 야생감자가 안데스산맥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믿는 과학자들도 있다.


감자 관련 유물로는 남아메리카 페루 북부해안 지역의잉카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된 감자 덩이줄기 형태의 초기조형물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이 유물을 기초로 4세기 무렵에 이미 이 지역에서 감자가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6세기경 이 지역을 침략한 스페인 사람들에 따르면,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원주민들은 감자를 길러 먹고 있었으며, 감자를 Imoza, Iomuy, Papa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스페인 작가 페드로 데 시에자 데 레온(Pedro de Ciezade Leon)1533년 발간한 <페루 역사>에 따르면 당시 잉카제국은 기근에 대비해서 말린 감자(추뇨,Chuno)를 공물로 거두어 들였으며, 만일 말린 감자가 없었다면 기근으로 죽은 사람들이 셀 수도 없었을 것 이라고 하였다. 또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러한 지식을 악용해서 은광이 발견되었을 때 말린 감자인 추뇨를 생산했다. 그 후 노예와 다를 바 없는 광부들에게 말린 감자를 되판 돈으로 금의환향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2. 감자의 전래

 

감자는 1570년경 스페인 사람들을 통해서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이는 유럽인들이 감자를 처음 본 뒤로부터 무려 30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3년 후 감자는 세비야 병원 환자들에게 급식됨으로써 유럽에서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은 감자를 일종의 악마로 보았으며 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까지 퍼져 만지기조차 꺼려했기 때문에 인구 증가와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하여 굶주려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감자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감자를 들여 온지 약 200년 뒤인 170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특히 아일랜드 사람들은 빈약하나마 감자가 실직, 빈곤, 인구과잉, 토지부족의 대비책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므로 1780년경부터 감자를 대규모로 재배하게 되었다.


감자는 그 후 유럽에서 여러 나라들로 퍼져나가 우리나라에는 순조 24(1824) 산삼을 캐러 함경도에 들어왔던 청나라 사람이 가져왔다고 기록되었다(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文長箋散稿), 1850). 이에 따르면 북저(北藷)는 토감저(土甘藷)라 하며, 순조24~25년에 관북(關北)인 북계(北界)에서 처음 전해진 것으로 청나라 채삼자(採蔘者)가 우리 국경에 몰래 침입하여 산골짜기에 감자를 심어 놓고 먹었는데, 그 사람들이 떠난 후에 이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잎은 순무같고 뿌리는 토란과 같다.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옮겨 심어보니 매우 잘 번식한다.


청나라 상인에 물어보니 북방감저(北方甘藷)라는 것으로 좋은 식량이 된다 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년(1832)에 영국 배가 충청도 홍주목 고대도에 표착하였을 때도 선원들이 감자를 그곳에 전하였다 라는 기록도 있다.


한편 조성묵(趙性)1832(순조 32)에 지은 원저방(圓著方)’ 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감자가 처음 들어오기는 북개시(北開市)의 영고탑(寧古塔)이니 이것을 북감저(北甘藷)라 부르고 본래 중국의 서남쪽이 원산지인데, 여기에서 서쪽으로 또 북쪽으로 전파되었으며, 마침내 동쪽으로까지 전해진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는 감자의 전래시기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를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래종 감자가 북방으로부터 전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경창(徐慶昌)1813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된 감저경장설(甘藷耕藏說)에 의하면 신종민(申種敏)1830년에 북관6진에서 감자 몇 개를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어 감자의 북방전래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창한(金昌漢)1862년에 지원저보(圓藷譜) 에 의하면 북방으로부터 감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7~8년 지난 순조 32(1832)에 영국의 상선 로드 함허스트(Lord Amherst) 호가 전북 해안에 약 1개월간 머물고 있었는데, 이 배에 타고 있었던 네덜란드 선교사 귀즐라프(Charles Gutzlaff)가 김창한의 아버지에게 씨감자를 주면서 그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기에 감자를 재배하게 되었다 고 하였다. 김창한은 아버지가 감자 재배법을 습득하여 전파한 내력과 재배법을 편집하여 30년 후인 1862원저보 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편 1912조선농회보’ 7월호에는 감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에서 감자재배가 근년에 시작된 것이 아님은 일반으로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 역사가 확실하지 않다. 함경북도의 조 참여관(趙 參與官)이 말하기를, 1873년 조선팔도가 일대 천재를 입어 여름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서 파종이 늦어진데다 음력 811일에는 팔도에 첫서리가 내려서 농작물이 전멸하였다. 다음 해에 감자가 비로소 들어왔는데, 이것이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것인지 선교사가 직접 수입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서울에는 1879년에 선교사가 들여왔고, 1883년경에는 선교사의 손을 거쳐 감자가 재배되기에 이르렀다 고 한다.



3. 세계의 감자생산


감자는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재배되며 연간 24,000~33,000만 톤 정도 생산되고 있어서 생산량으로는 옥수수, , 밀 다음으로 4, 재배면적으로는 8위를 차지하는 주요작물이다. 주요생산국은 중국, 인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독일 등인데, 전체 생산량 대비 중국 23.1%, 인도 11.3%, 러시아 6.5%, 우크라이나 5.8%, 미국 5.6%, 독일 3.1% 등이며 우리나라는 0.19%로 매우 적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전 세계평균 1인당 연간 소비량은 나라별로 다르지만 약 70정도 된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의 감자재배 면적은 약간 감소했는데 지역적으로 서유럽은 다소 감소하였고, 중앙 통제 경제(CPE)의 아시아 지역 국가는 큰 변동이 없으며, 라틴아메리카를 제외한 개발도상국가는 현저히 증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총생산량은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증가폭이 컸다.


상업적인 생산면에서 아시아 국가는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으며, 이들 생산량의 증가는 수량과 재배면적의 증가로 이루어지지만(아시아지역), 오직 수량증대에만 의존하는 지역(유럽, 북미, 라틴아메리카)과 재배면적 증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지역(아프리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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