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예특작과학원 자료/서류

고구마(2) - 기원 및 전파, 품종의 변천

by 내오랜꿈 2014. 9. 25.
728x90
반응형


. 지리적 기원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로서 정확히 말하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에 있는 유카탄반도 지역과 남미 베네수엘라에 위치한 오리노코강 하구지역 사이가 원산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적어도 2000년 이상 인간에 의해 고구마가 이용되었고 현재 재배되고 있는 재배종이 이 지역에서 야생되고 있다.

 

. 전파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는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이미 오래전부터 식량으로 재배해 왔었다. 어떻게 해서 남태평양 여러 섬에 고구마가 중앙아메리카에서부터 전파되었는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다. 가장 근거가 있는 논리는 페루 항해인들이 뗏목을 타고 남태평양 여러 섬으로 전파시킨 것이라고 믿고 있다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고구마도 다른 여러 작물과 함께 유럽에 전파되었으며 유럽으로부터 다시 아프리카 및 아시아로 전해지게 되었다즉 스페인 탐험가들이 필리핀의 마닐라와 몰러카즈 제도에 고구마를 전파시켰고,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말레이 군도에 전달되었으며 필리핀 루손섬으로부터 중국의 푸젠땅에 전달되었다1605년경에는 푸젠으로부터 류우쿠우와 대만에 전달되었고, 류우쿠우로부터 일본 본토로 전달되었으며, 일본 본토에서 쓰시마에 고구마가 전해진 것은 1723년으로 알려져 있다.

 

. 우리나라에의 도입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시대 영조 39(1763) 10로 그 당시 일본에 통신정사(通信正使)로 갔던 조 엄(趙 曮)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이것이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중요할 것으로 여겨 씨고구마를 구하여 부산진으로 보내온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조 엄은 귀국길에 다시 씨고구마를 구해서 동래지방 및 제주도에서 심도록 하였다.


고구마 국내전파에도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이광려(李匡呂), 강계현(姜啓賢) 등은 서울지방에 고구마를 보급하려고 애썼으나 씨고구마의 보관방법을 몰라서 실패하였고 동래부사로 있던 강필리(姜必履)는 동래부사 재임 중 고구마의 채종 및 전파에 많은 힘을 썼으며 강씨감저보라는 책까지 남겼으나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50년 후인 순조 13년에는 김장순(金長淳), 선종한(宣宗漢) 두 사람이 고구마 보급에 많은 노력을 하였고 9년간 재배경험을 기초로 감저신보라는 책을 썼으며 다시 순조 34년 서유구(徐有榘)는 전라관찰사로 있을 때 종저보를 지어 호남지방에 고구마 심기를 권장하였다.


고구마의 어원은 쓰시마섬의 코코이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고구마는 남방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남저(南著)라고 하며 감자는 북방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북서라고 불린다.


라. 품종의 변천


1763년 고구마가 도입된 이후 100여 년 동안에 걸친 여러 연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안전재배기술이 정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3년에 원기품, 1943년에는 충승 100호가 도입되었으며, 1944년에 수원에서 수원 147호가 육성되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품종들이 도입 또는 육성되었으나 대부분 단명하였다. 하지만 충승 100호와 수원 147호는 수량도 많고 맛도 비교적 좋아 일부지역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재배되었다. 1967년 작물시험장에서 신미품종이 육성된 이후 계속해서 다수성 품종이 개발되었다. 1977년 쌀 자급이 이루어지고 경제가 성장되면서 ‘80년대 초부터는 고수량 품종과 고품질 품종을 아울러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1990년에 식미 등이 수원 147호보다 더 우수한 율미가 육성되었다. 그 후로 신율미, 증미, 연미, 진홍미, 신천미 등 식미가 우수한 품종과 신자미, 신황미 등 가공용 유색품종이 육성 보급되었다(4-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