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입장에서 보자면 4월 중순은 냉해를 걱정할 때다. 중부내륙지방은 5월초까지 서리 내릴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더 말할 것도 없고 남부지방도 간혹 최저기온이 5℃ 언저리까지 내려갈 경우가 있기 때문. 그래서 냉해 피해가 큰 박과나 가지과 작물은 최대한 늦게 심는 게 안전하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 근처라 상대적으로 냉해 피해 우려는 아주 적은 곳이다. 같은 위도상에 위치해도 해안지방은 내륙지방에 비해 이른 봄이나 늦가을의 경우 최저기온이 평균 5℃ 정도는 높기 때문이다.
며칠 전 고추, 토마토, 가지 등 가지과 모종을 옮겨심기 하면서 혹시나 냉해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살짝 했지만 태풍 같은 비바람에 풍수해를 입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4월 중순에 태풍에 버금가는 비바람이 불어닥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랬는데 막상 눈 앞에 현실로 닥치고 보니 길 가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 강풍에 드러누운 작약
▲ 강풍에 줄기가 부러지거나 생장점이 다친 고추 모종
▲ 잎이 바람에 시달린 토마토 모종
▲ 잎이 물에 데친 듯한 수침상 피해를 입은 열무.
어제 오후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비바람은 오늘 새벽까지 순간 최대풍속 20m/sec에 가까운, 태풍에 버금가는 위력을 자랑했다. 옮겨 심은 지 며칠 안 된 고추와 토마토 모종이 얼마나 비바람에 시달렸던지 생장점이 상한 게 이십여 포기 가까이 된다. 나머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잎이 데친 것 같은 수침상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날씨가 습하거나 온도가 높지 않아 상처 부위로 침투한 세균 등에 의한 이차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생장점을 다친 포기와 상태가 심각한 몇 포기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심어야 한다. 나머지는 성장이 조금 더디기는 하겠지만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일주일 정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 잎이나 줄기에 조금씩 풍해를 입은 고추 모종들. 2차 피해만 없다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농사는 정답이 없다. 이제 4월의 내 농사일지에는 냉해가 아니라 풍수해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는 문구가 추가되어야 할 거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앞으로도 분명 냉해보다는 풍수해 피해가 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4월은 여름보다 긴 봄 장마에 시달렸고 11월에는 늦가을 장마가 찾아왔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는 단순히 기온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심하고 예측이 어려워진다는 것에 있다. 손바닥만한 땅에 농사지으면서도 점점 더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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