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할리퀸
자유, 그 숨결은 내 안에 살아 있어 수많은 시련들 속에 내가 흔들려도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한동안 가슴 태우던 그 불길을 달래려 했지.
젊음, 그 푸르름 그대로 난 행복했어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묻으려 했지.
하지만 난 두려웠고 조금씩 난 변해 갔어. 난 알고 있어.
내 잊혀진 꿈들이 이 어둠 속에 흩어져 가는 걸.
하지만 눈물 떨어진 자리에 한동안 평온이 찾아오지.
어두운 방 가득 창백한 침묵이 흘러 나의 머리 속엔 낡은 시계바늘 소리뿐.
차가운 벽 깨진 창틀엔 먼지만 쌓이고 내 마음의 틈엔 깊은 외로움 더해 가네.
어떻게 날 다시 찾을 수 있지 이 어둠 속에 아무도 날 깨우고 일으켜 안아 줄 수 없어.
깊은 상처 속엔 나의 마지막 희망이 흘러 지키려 했던 나의 자존심마저 사라졌어.
이젠 저 별들도 지네 내 어둔 운명처럼 갈등의 파도 속에 내 혼은 부서졌어.
비는 내리고 하늘엔 구름만 쌓여 너의 외로운 밤은 자꾸 어두워만 져도
내일은 또 내일의 햇살이 너의 마음 깊은 곳에 찾아 들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비춰 줄 텐데
이제 희망을 깨우고 함께 새벽의 빛으로 걸어가면,
너도 소중한 네 삶의 의밀 찾겠지.
너의 어두운 눈가에 하얀 눈물이 흘러 내려오고
너의 여린 가슴 안엔 아직 꿈이 있음을 너도 알잖아
일어나 어둠을 헤치고 너의 소중한 꿈을 찾아 떠나가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다시 새로운 날을 비춰 줄거야.
한때 락음악에 관한 이러저러한 책들을 읽으며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한국 락밴드들의 음악을 찾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블랙홀"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들이 아직까지, 그러니까 17년 동안 8개의 정규 앨범과 1개의 베스트 앨범까지 내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락의 '진정성'에 조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블랙홀의 역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에서 "서태지"가 갖는 이상의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짜릿함이다. 85년부터 지금까지 수미일관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한국 락음악의 현실에선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흔한 방송매체 제대로 한 번 타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블랙홀"에 버금가는 음악성과 아이덴터티를 가진 락밴드라고, 아니 그 이상이라고 나 혼자서 무한한 애정을 주었던 밴드가 위에서 인용한 "할리퀸"이었다.
이들의 1집 음반 『비상』은 지금 들어도 당시(97년)의 한국 락의 성과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고 평가해 주기에 충분한 음반이다. 비록 이들이 그 후 영화 음악과 방송 출연 등으로 자신들의 에너지를 낭비하다 멤버 교체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은 거의 예전의 색깔을 많이 희석시켜버린, 그저 그렇고 그런 밴드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1집 『비상』의 첫 곡이 이 「비상」이다. 8분 여에 걸친 대곡이기에 거의 방송을 타지 못 했던 곡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평가하기엔 한국 락음악의 역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아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미안하지만 나는 랩을 하지 않아
나는 남들처럼 그렇게 춤을 추지도 못해
안타깝지만 너와 함께 부를 노래는 내게 그렇게 많이 있는 것도 아니야
가볍기만 한 나의 주머니는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고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도 내게는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난 초라함을 느낀 적 없어
어수룩한 나를 네가 생각하기에 난 힘들지 않아
난 외롭지 않아 때론 모두가 이미 정해진 길로 가라하지만
아직 펴지지 않은 하얀 날개가 내겐 있기 때문에
난, 나의 자리를 지켜야 겠어
현란한 치장과 화려한 겉치례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걸 난 알아
이렇다 할 재주도 난 없고 그럴듯한 품격따윈 그리 중요치 않아
위에서 할리퀸의 「비상」을 한국 락음악 역사에서 몇 손가락 꼽히는 음악으로 생각한다 했지만 이들의 앨범 『비상』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다. 사실 그때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헤비메탈 락밴드를 지켜나가면서 누구인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하지 않았으랴! 이미 『강산에』, 『삐삐밴드』를 비롯한 한국의 '모던락'을 표방하는 락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서는 시점이기도 했던 때에...
그런 그들이기에 8분 여에 이르는 「비상」이란 대곡에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뻔히 방송되지 않을 음악(어느 한가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8분이나 되는 곡을 틀어주겠는가?)을 메인곡으로 올린다는 그 자체가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선다는 걸 포기한다는 의사표시에 다름 아닌 것이니까.
게다가 앞서 「미운오리새끼」의 가사 자체가 당시의 주류 대중음악(≒댄스뮤직)을 근본부터 '까부수는' 내용임에랴. 위의 가사에서 보다시피 이들은 당시 댄스 뮤지션이나 그의 변형된 뮤지션들(서태지의 아류를 포함한!)을 싸잡아 욕하는 내용들을 태연히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걸어갈꺼야」란 곡에서 보듯이 자신들이 나아갈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듯한 다짐, 혹은 각오를 노래하는 것에 이르면 더더욱 이들의 색깔에 심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도 '갈등'하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같이 올리는 세 번째 트랙 「널 잊지 못할 거야」를 들어 보면 그야말로 '소프트한' 팝뮤직이다. 이른바 '소프트 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론 당시 막 이름을 날리던 '김경호류'의 락커가 내세웠던 화려한 무대와 천편일률적인 '사랑 타령' 들에 비하면 이조차도 '혁명적'이긴 하지만...
결국 12곡이나 수록된 이들 1집 앨범은 일관된 컨셉이 조화된 명반이라기보다는 이후 교체를 거듭하는 멤버들의 성향을 대변하는지 모르겠지만 포커스가 조금씩 흔들림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 부조화는, 또는 이들이 느끼지 못했던 무의식적 '차이'는 이들의 뛰어난 재능 속에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초초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1집 앨범의 모든 곡에서 드러나는 '성급한' 클라이맥스로의 전환이라는, 강박증 비슷한 요소를 느끼는 건 바로 그 '초조함'이 묻어나기 때문 아닐까?
결론적으로 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억압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고를 가로막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또는 락뮤지션들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성공에 대한' 최소한의 분수넘치는 열망이 아니라 이들 밴드의 '단순 재생산'조차 위협하는, 한국 락음악계 전반에 팽배해 있었던 '시스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한국 락밴드의 매니지먼트가 '댄싱그룹'의 배팅(요새 졸라 씹히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음반 기획사들이 주로 하던 그 행태)을 쫓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류/비주류, 언더그라운드/오버그라운드를 막론하고 이들이 유일하게 '성공'으로 진입할 수 있는 낙타 구멍은 라디오 스타가 되는 길과 명백한 어떤 '유혹'을 가진 십대 취향으로 '길보드'에 오르내리는 길 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홍대앞 까페에서 반짝하다 사라질 운명이거나 '드럭'에 의지하며 가난한 하룻밤 공연밴드라는 운명공동체를 기약없이 지탱해 나가는 길밖에...
그러기에 이들이 1집 이후 TV 드라마 음악으로 그들의 재능을 소비하다 결국 그렇고 그런 락밴드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서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러나, 난 가슴 아프다. 이들의 그 뛰어났던 재능이. 난 아직도 이들의 「미운오리새끼」나 「걸어갈꺼야」란 곡을 들으면 7,8년 전 한국 락음악의 그 새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2004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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