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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김광석 - 부치지 않은 편지

by 내오랜꿈 2009.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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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나는 김광석 생전에 그를 서너 번은 본 거 같다. 이건 순전히 95년 경에 만나던, 어떤 여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자, 완전히 김광석 '매니아'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전교조> 일한다는 핑계로 나하고의 약속은 툭하면 펑크 내거나 한두 시간 기다리게 만드는 건 '기본'이었는데, 김광석 공연 보러 가기로 한 날은 한 번도 시간 약속 어긴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나보다 김광석이 훨씬 더 중요했었던 거 같다. 뭐, 그랬으니 난 지금 다른 여자와 살고 있겠지만...-.-

주로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걸 관객으로 앉아서 지켜봤지만, 한 번은 웃기지도 않게 내 뒤에 줄을 서 있는 어떤 여자에게 말을 거는 그를 코 앞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이거 무슨 줄이에요?"

아마 무슨 줄인지 알았으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만, 순간 주변에 줄서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던 거 같다.

그 줄은 바로 그의 공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일찍 들어가 앞자리에 앉으려는 열성팬들의 줄....

그게 아마 그가 죽기 3개월 전 쯤이었던 거 같다.


4집. 「서른 즈음에」가 들어있는 그 앨범이 발표된 게 94년이었다.

그 해,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

내 '거친' 20대를 마감하며, 숱한 고민과 번민을 하던 시기. 맑스, 레닌, 알뛰세를 잠시 접어두고 스피노자, 니체, 프로이트, 푸코, 들뢰즈를 섭렵하던 시기. 영화와 음악에 몰입하여 일주일에 수십 편의 영화를 섭렵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주변 상황과 맞물려 이전부터 즐겨 듣던 『다시 부르기 1집』과 4집, 그리고 얼마 뒤에 나온 『다시 부르기 2집』을 한동안 끼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한없이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었었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김광석의 노랫말 하나하나는 내 젊은 날에 대한 '은유'로 다가와 사람을 멍하게 만들곤 했던 것이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너무 아픈 사랑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왜 이러지?"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음반을 틀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애써 다른 음반을 찾곤 했었다. 아마도 내가 안치환 4집 『내가 만일』을 좋아하게 된 것도 김광석의 영향이 컸던 거 같다. 잔잔하게 움츠려들게 만드는 김광석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안치환 4집이 약간 늦게 나왔을 것이다-안치환의 그 ROCK적인 힘찬 보컬을 의식적으로라도 더 즐겨 들을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하여튼 나에게 김광석은 멀리하려 해도 자꾸만 다가오는 그런 존재였던 거 같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와서야 그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자신있게 벗어난 거 같아 다행스럽다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

*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

그대, 무엇을 꿈꾸었기에 어느 하늘을 그리워했기에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노래 남겨 두고 홀로 먼길을 떠나는가.
다시 날이 밝고 모든 것들이 깨어나는데 
그대는 지금 어느 구석진 자리에 쓸쓸히 서서 무얼 바라보고 있는가. 
고운 희망의 별이었는데 아, 형편없이 망가진 인간의 세상에서 
그대의 노래는 깜깜어둠 속에 길을 내는 그런 희망의 별이었는데
그댄 말없이 길을 나서고 
우린 여기 추운 땅에 남아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도대체, 무얼 노래해야 하는 거냐!

알 것 같아....
그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언지,
그대 온 몸으로 노래하던 그 까닭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청춘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들려, 들릴 거야.
그대의 기타 소리,
대숲의 바람처럼 몸을 돌아나오던 그 하모니카 소리.
우리, 
고단한 삶에 지쳐 비틀거릴 때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소용돌이칠 그대의 노래.

우리들 팍팍한 마음속에 뜨겁게 울려날 그대의 목소리.
....

그대는 그렇게 우리들 탁한 삶의 한편에 
해맑은 아침으로 따뜻한 햇볕으로 남아 있을 테지.
다시 겨울이 오고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백창우 글 - 김광석 추모앨범 『가객』에서 - 


wrwtten date:2002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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