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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흑인노예의 읊조림, 위대한 유산으로 - 로버트 존슨의 ‘크로스 로드 블루스’

by 내오랜꿈 2007.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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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프 마치오의 십자로(Crossroads)] 포스터

"줄리어드? 그게 학교야? 블루스의 학교는 델타뿐이야!" 
"미시시피에 한 번도 안 가봤다고? 그러고도 블루스맨이라고 자칭할 수 있나?" 
"자네가 아무리 까불어봤자 로버트 존슨 엉덩이의 여드름도 안돼. 그 차이가 뭔지 아나? 체험이야" 

영화에서 윌리 브라운이 내뱉는 대사 가운데 일부분이다.

음악 감독, 라이 쿠더(Ry Cooder). 사운드 트랙의 기타 연주, 라이 쿠더. 기타리스트 역의 조연을 맡은 인물, 스티브 바이(Steve Vai). 영화의 모티브는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 음악에 관한 한 이보다 더 화려한 라인업이 있을까? 바로 <크로스로즈(Crossroads)>(우리 말 비디오 출시 제목은 <랄프 마치오의 십자로>)다. 여기서 '크로스로즈'는 물론 로버트 존슨의 고전 <크로스로즈(CROSSROADS)>를 가르킨다. 한국 비디오 출시 제목에 랄프마치오가 붙은 것은 역시 당시 청춘스타였던 그의 상업성에 기댄 것이리라.

영화는 로버트 존슨이 어느 황량한 십자로에 서있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블루스 음악이 흐른다. 로버트 존슨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그의 노래와 그의 동료였던 윌리 브라운(Willie Brown)이 중요한 역할(영화에서의 배역은 존 세네카)을 맡고 있는 진짜 블루스 영화인 것. 따라서 <크로스로즈>는 2004년에 기획돠고 만들어진 마틴 스코시즈(외 7인) 감독의 블루스 시리즈보다 거의 20년이나 앞선 진정한 블루스 영화인 셈이다. 

영화 속 대사들은 1930년대 블루스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무슨 의미로 존재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또한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잉위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쌍벽을 이루는 기교파 헤비메틀 기타리스트라 할 수 있는 스티브 바이(Steve Vai)의 모습까지도 만날 수 있다(위의 동영상에서 붉은 기타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스티브 바이다). 

랄프 마치오는 줄리어드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고 있으며 학교 최고의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어디까지나 블루스 음악의 대가가 되는 것. 그런 그가 블루스 책들을 뒤지다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이 하나 있다는 정보를 얻고는 이걸 찾아내 연주하여 유명해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로버트 존슨의 음악 동료였던 윌리 브라운이 어느 요양원에 살아있다는 걸 알고 찾아가지만, 윌리는 클래식을 전공하고 미시시피엔 가본 적도 없는 중산층 가정의 이 백인 소년을 어처구니 없이 여긴다. 그러나 제법 실력을 보이는 소년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윌리는 "나를 이곳에서 탈출시켜 미시시피까지 데려다준다면 존슨의 미발표곡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한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블루스가 영화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상업영화로서도 충분히 아기자기한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종일관 윌리가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유명하게 만든 건 역시 클라이맥스 부분의 '기타 배틀' 장면. 초창기 블루스 뮤지션들이 맥주 한 병이나 위스키 한 병에 목숨 걸고 실력을 겨뤘을 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상대방을 응시하는 스티브 바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존슨을 떠나서라도 블루스 팬이라면 한번쯤은 꼭 봐야 할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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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노예의 읊조림, 위대한 유산으로 
[세상을 바꾼 노래] ⑥ 로버트 존슨의 ‘크로스 로드 블루스’(1936년) 

박은석/음악평론가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1 08 


» 로버트 존슨의 ‘크로스 로드 블루스’(1936년)
로버트 존슨(1911~1938)은 대중음악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라고 할 인물이다. ‘델타 블루스(혹은 컨트리 블루스)의 제왕’으로 불리는 명성과 달리 그 생애에 관해 알려진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도 오싹한 전설과 끔찍한 구설 사이에 놓인 것이 대부분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불가사의한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다. 따지고 보면 영혼매매 전설의 원조는 로버트 존슨이 아니다. 코엔 형제가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년)에서도 다루었다시피, 토미 존슨이라는 동시대 블루스 뮤지션의 자술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존슨이 그 주술적 신화의 음침한 거래당사자로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베일에 싸인 짧은 생애와 시대를 앞서간 음악 때문이다.

악마를 소재로 한 곡들을 즐겨 불렀다는 점도 로버트 존슨의 전설을 부추긴 요인이다. 비평가 그레일 마커스는 그것이, 블루스의 탄생 배경이기도 한, 미국현대사의 어두운 면과 맞닿아 있는 메타포라고 분석했다. 존슨의 노래들이 “여타 미국 예술가들은 표현한 전례가 거의 없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크로스 로드 블루스>는 바로 그 어두운 감정의 체화라는 측면에서 로버트 존슨을 상징하는 곡이다.

<크로스 로드 블루스>는 1936년 11월23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로버트 존슨 최초의 녹음 세션에서 탄생했다. 어스름 무렵의 교차로에서 악마와 조우한다는 이 곡의 내용은 부두교의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파우스트’적 모티프가 혼재한 것이다. 블루스가 흑백인종 간의 문화적 교차로에서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존슨이 들려준 격렬한 팔세토 보컬과 (문자 그대로) 신들린 기타연주는 대중음악사의 혁명적 전환점이기도 했다. 델타 블루스가 시카고 블루스로 이양하는 양상-어쿠스틱에서 일렉트릭으로, 남부 시골에서 북부 도시로 확장된 과정이 그 속에 생생한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비참한 흑인노예의 읊조림에서 위대한 음악가의 유물로 승화한, 블루스의 음악사적 의미가 교차한 지점이었다.

로버트 존슨은 평생 단 두 번의 녹음세션을 통해 불과 29곡을 남겼을 뿐이다. 게다가 그 곡들 전부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사후 30년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머디 워터스와 키스 리처즈(롤링 스톤즈), 에릭 클랩튼과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가 이구동성으로 그를 “가장 위대한 블루스 연주자”라 칭송했다. 실제로 머디 워터스는 로버트 존슨을 카피하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고, 에릭 클랩튼은 온전히 존슨의 곡들로만 채워진 헌정앨범 <미 앤 미스터 존슨>(2004)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히트했던 영화 <스트리츠 오브 파이어>의 감독 월터 힐은 젊은 기타 연주자가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을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의 <크로스로즈>(1986)를 연출한 바 있다. 악마에게 영혼을 걸고 연주대결을 펼치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예술을 가장한 사기와 음악을 변명한 상품이 판치는 물질적 세상에 대한 우화처럼 보인다. 로버트 존슨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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