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져 워터스' 내한공연과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80년대 내내 복사판을 본 사람들에 의해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Another Brick in the Wall,Ⅱ」의 그 등골이 서늘한 장면은 10년 만에 우리들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었다(영화의 제작은 1982년이었지만, 국내 수입은 금지되었다가 1991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1999년에야 정식 개봉되었다).
"우리들에겐 교육도, 사상통제도 필요 없어."
"Hey, Teacher, 우릴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이 장중하게 울리는 음악에 맞춰 화면은 선생의 지시에 따라 벽 사이의 컨베이어 벨트 비슷한 선을 학생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나온다. 그 선을 따라 오는 동안 아이들은 점차 똑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가며,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 이르러서는 하나씩 떨어져 통 속에 처박힌다. 그리고 그 다음 화면에는 기계의 구멍에서 (아이들이 재료가 된)소시지가 뽑혀 나온다. 이 소름끼치는, 그러나 너무나 명료하고 상징적인 반사회적/교육적(보는 이에 따라서는 너무나 통쾌한)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의 국내 개봉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었다.
『The Wall』은 어떻게 보면 알란 파커의 영화라기보다는 로져 워터스의 영화이다.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에 만든 이 앨범은 거의 전곡을 로져 워터스가 작사/작곡 했으며, 수록곡 27곡은 독립된 각각의 곡이라기보다는 전체가 하나의 일관성을 갖춘, 각각의 곡이 앨범 전체의 하나의 요소들로 기능하게끔 구성(당연히 이게 '앨범'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이지만)되어 있다. 이 앨범을 영화화 할 때 시나리오 역시 로져 워터스가 만들었으며, 앨범 수록곡의 가사가 영화의 대사를 대신하게끔 구성되어 있다(영화화 하면서 앨범 수록곡에서 2곡이 빠지고 전쟁의 기억과 연관된 2곡이 추가되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독립된 영화라기보다는 앨범 『The Wall』의 '뮤직비디오 버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원래의 앨범 자체가 로져 워터스의 음악적 성향과 그의 철학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영화화하면서 앨범에서 다룬 각각의 테마들이 좀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가정과 사랑, 전쟁과 기억, 교육과 통제, 공연과 파시즘적 질서 등에 대한 각 테마를 '벽'이라는, 우리의 삶과 사고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근대적 이성/근대적 삶을 벽이라는, 철학적 문제로 형상화해내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핑크'(밥 겔도프)는 자신의 눈썹을 밀기도 하고 자해하기도 하고, 그러다 집안의 온갖 것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과 마주친다.
"벽 밖에 누구 없소?"
그러나 들려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와 악마적인 웃음 뿐이다. 허무는 벽, 그러나 끝없이 나타나는 벽, 절망하는 핑크...
그 벽에 저항하던 핑크는 마침내 기소되었다. 재판장 구더기 각하는 그에게 심판을 내린다.
"이 자의 죄상은 너무도 명백하니, .... 최고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이런 죄인(에게).......선고하노니, 벽을 부숴라"(Tear Down the Wall!)
최고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선고하는 형벌이 "벽을 부숴라"라니... 벽을 부수려던 피고에게 벽을 부수란 선고가 최고의 형벌이라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이것은 '벽'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이중의 냉소 또는 조롱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토록 부수고자 하지만 과연 네가 저 견고한 벽을 부술 수 있겠느냐는 조롱, 또는 설사 저 벽을 부순다 해도 그 뒤에 또 다른 벽과 부딪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조롱. 다시 말해서 네가 벽을 부수면서 새로이 만들어낸 가치나 삶이 또다시 너를 가로막는 벽이 될 것이라는 싸늘한 냉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지푸스의 노동처럼, 핑크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의 형벌일 수 있을 게다. 곧 벽을 부수려는 자에게 최대의 형벌이 벽을 부수라는 것이라면, 갇힌 벽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주어져 있는 형벌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벽 앞에서 무력감에 절망하며, 그 절망을 내면화하고 허무주의로 빠져들게 하리란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부숴도 부숴도 무한히 반복되는 벽, 내면으로까지 침투하여 금욕과 허무, 절망을 심어놓는 그 억압, 그 억압이 지배하는 세계.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억압에 눌리지 않고, 그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돌파하려는 끝없는 의지가 아닐까? 이것이, 벽을 넘어 새로운 가치나 삶을 창조해도 그것 또한 곧 그를 가로막는 벽이 될 지언정, 자신이 벽에 갇힌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의 벽에 머물러 지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벽을 깨기 위해, 또는 벽을 깰 때마다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와 삶의 방식은 곧 또다시 깨부숴야 할 벽에 불과할지라도 우리의 사고와 삶이 나아갈 수 있는 경계를 확장할 것이기에 그러한 노력과 시도 자체가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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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2일, 로져 워터스(Roger Waters)가 잠실운동장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같이 연주의 완전성을 최고의 무기로 삼는 아트락이나 프로그래시브 락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공연무대 하나 만들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들이고 전세비행기로 악기와 소모품을 실어나르는 이 '공룡밴드'를 보고 있노라면 '락은 태생적으로 혁명적인가?', 라는 '락의 진정성' 논쟁이 새삼 생각날 수밖에 없다.
written date:200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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