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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설거지를 하면서...

by 내오랜꿈 201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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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거지를 할 때 가급적 주방세제를 쓰지 않는다. 그냥 물로 씻어 낸다. 대개는 세제를 써야 할 정도로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니 흐르는 물에 수세미를 몇 번 문지르는 게 전부다. 불가피하게 세제를 써야 할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럴 경우 여러 개가 아니면 미뤄 둔다. 내가 하든 옆지기가 하든 다음 끼니 때 생길지도 모를 기름진 그릇이 있으면 같이 하라는 의미에서. 물론 무얼 아끼자고 하는 짓거리는 아니다. 환경을 생각해서다. 주방세제를 조금이라도 덜 쓰는 게 환경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파는 주방세제라는 게 아무리 천연세제니 유기농 세제니 어쩌고 하지만 결국 어떤 형태로든 계면활성제를 비롯한 화학약품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서 가끔씩 사고의 딜레마에 빠진다.


세제를 쓰지 않고 설거지를 하면 세제를 사용할 때보다 물을 조금 더 많이 쓰게 된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식용유나 참기름, 들기름 같은 그릇에 묻어 있는 약간의 기름기를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씻어내려면 흐르는 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정량적으로 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경험치로 추론할 때 그렇다. 이럴 경우 가끔씩 생각케 된다. 과연 어느 방법이 더 친환경적일까 하는 것.




예컨대 환경을 생각해서 세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그 결과로 물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수돗물을 쓰는 도시의 가정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집에서 물은 전기로 퍼 올린다.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기란 건 결국 무엇인가를 사용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고 만드는 방법은 대개 반환경적이다. 뭐 이런저런 수치나 자료 들이밀면서 답을 찾으면 어느 방법으로 하는 설거지가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있겠으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다.


과연 우리의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이고도 객관적인, 유일한 기준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자명한 과학적 진리가 아닌 이상 상대적 가치나 기준에 의해 반박 당할 여지는 언제나 있는 것 아닐까? 예컨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전기 생산의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쪽이나 핵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의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쪽이나 전기의 생산 그 자체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가장 확실하고 명백한, 친환경적인 방법은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여기서 단세포적으로 더 나아가지는 말자. 전기 없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하냐는 식의).


이 절대적이고도 유일하게 옳은 결론을 두고서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가치나 기준을 내세워 우리는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더 나은 방향을 걸고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벌이는 투쟁 대부분이 아마도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것일 게다. 그래도 싸우지 않을 수 없고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슬프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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