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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ovie

<러브레터>,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며 다가오는 사랑

by 내오랜꿈 201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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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를 꼽으라면 <러브레터>나 <글루미 선데이>, 또는 좀 더 가벼운 <광식이 동생 광태> 같은 류의 영화를 빼 놓을 수 없다. 같은 멜로라도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멜로보다는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에 국한되긴 하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99년인가? 개봉할 때 극장에서 보았고, 그 뒤로 비디오로도, 공중파에서도, 케이블 TV에서도 몇 번은 보았을 터인데 지금도 어쩌다 채널을 돌리다 만나는 <러브레터>는 여전히 나를 붙잡는 힘이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나 로맨티스트인 거 같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비오는 일요일, EBS의 '일요시네마'에서 다시 한 번 <러브레터>를 만났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경우는 거의 두 가지 경우다.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거나 나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매력이 있거나. 한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되면 볼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거나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 했던 걸 깨닫게 되는데 오늘 다시 보는 <러브레터>에서도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걸 하나 발견했다.

 

영화의 도입부,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하는 동일한 두 여인 와타나베 히로코로부터 후지이 이츠키의 시점으로 바뀌는 장면. 바다 한가운데서 고베항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이 눈 쌓인 오타루의 어느 한적한 집으로 바뀌는 장면에서 자막이 뜬다.

 

"오타루 - 고베로부터 멀리 북쪽에 있는 마을"

 

아마도 지난 번까지는 눈여겨 보지 않았거나 도입부의 익숙한 장면이라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오타루. 오타루 스노캔들 등의 눈 축제가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홋카이도의 이름난 관광지 가운데 하나다. 3월에도 눈이 쌓여 있는 눈의 도시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은 거의 대부분 눈과 함께한다. 오타루에 대한 조금의 배경 지식만 있다면 홋카이도에 있는 도시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오타루를 설명하는 자막은 '고베로부터 멀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 아니라 '홋카이도 서쪽에 있는 마을(또는 도시)'라고 설명하는 게 훨씬 더 손쉽게 다가올 거 같다. 모르는 사람한테는 그게 그거겠지만 오타루는 몰라도 홋카이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을 테니 고베와의 물리적 거리감이나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두 사람의 거리감을 나타내는 데도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걸 왜 방향감이나 거리감을 반감시키는 '멀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했을까? '옛날 옛적에 누가 살고 있었다'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뭐, 따져보아야 답이 없는 문제니 그만하자. <러브레터>는 언제 보아도 피아노 건반으로 울려 퍼지는 "A Winter Story"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 곡은 8살 짜리 어린이가 연주한 것이라고 하는데 첫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곡 전체에 순수함이 배어 나오게 하려고 그렇게 녹음했다고 한다. 우리가 영화 『러브레터』의 그 사랑에 대해 애뜻해 하며 가슴 아파 하는 건 십수 년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며 다가오는 아픈 사랑을 깨닫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느낌이 8살 아이의 두려움과 미숙함, 떨림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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