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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ovie

'의식의 과잉'에 넘쳐나는 한국영화들 - <하류인생>을 보고 나서

by 내오랜꿈 2009.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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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콘크리트 3층 건물의 2층인 원룸은 벌써부터 불쾌한 여름공기를 내품고 있었다. 그 후덥지근함에 원룸앞 공원을 산책하다 영화나 보자 싶어 <하류인생>을 보았다. 뭐, 새삼스럽게 논할 만한 건 없었지만 왜 굳이 현대사의 시간들을 억지로 삽입할려고 했을까, 란 의문이 들었다. 1972년 10월. 우리는 이 시간이 주는 의미를 '유신'이라는 한 단어로 기억하지만 <하류인생>에서 왜 구체적인 년도가 들어가고 그런 시간을 언급해야 할까, 라는 의문.


얼마 전 <아홉살 인생>을 보면서도 몹시 불편했다. 그 질펀한 사투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9살 어린 아이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우리 자신, 어른들의 것이지 아홉살 아이들의 것은 아니었다. 애를 안 키워봐서 요즘 아이들의 수준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적 배경을 이루는 70년대 아이들은 결코 그러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효자동 이발사>. 여기선 거의 '과잉의 미학(?)'이라는 신조어도 나올법 하다. 어차피 영화가 한국 현대사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만들어진 풍자코미디라 하지만 왜 하필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많은 한국의 현대사들이 영화 속으로 불려나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실미도>를 비롯해서 <태극기 휘날리며>, <말죽거리 잔혹사>까지... 가히 최근의 한국영화들은 길게는 50년, 짧게는 20년 전의 한국 현대사 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국가라는 괴물이나 민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다루면서 결국 그 혐오하는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두 영화가 내게 주는 불편함은 앞의 경우와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1천만이 넘게 봐도 싫은 건 어쩔 수 없기에... 


그나마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럭저럭 보아줄만 한데, 이 역시 의식의 과잉이 묻어 있다. 뭐랄까, '남자-되기'의 그 지독한 통과의례라고 명명하면 좋을... 그래도 여느 영화들처럼 폼나는 성공으로 이어진 성장영화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든 견디어냈다는 정도의 메시지로 다가왔다는 게 어쩌면 <태극기~>나 <실미도>보다 '덜 정치적인' 영화지만, 현실적으로 더 '정치적인' 발언으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역시 그 폭압적인 현대사를 그럭저럭 견디어 온 수준 아니던가... 


굳이 한국현대사를 재조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면, 그것이 과거 어느 시점에 '우린 이랬다'는 식의 볼거리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의 역사로만 남든 리얼 역사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내든 그건 온전히 감독의 몫으로 친다 할지라도 왜들 하나 같이 현재와의 연결지점을 회피하고 과거 그 자체로만 매듭을 지으려고 작당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속담은 앞에서 언급한 이들 한국영화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보여주는 과잉의식을 비판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비좁은 세트 안에 갇힌 영화가 주는 과잉 작가의식. 아홉살짜리 꼬마를 통해서 30대 중반의 어른의 의식을 강제이입시키는 잔혹함. 도무지 연관성이 있어보이지 않는 연대표기의 비교 나열..... 


어느 영화평론가의 말대로 리얼타임에서는 말 못하고 숨죽여 지냈던 비겁함이 영화라는 세트 안에서는 "너무 할말이 많아지는 역사적 허기"로 나타나기 때문일까. 


그래서 난 이들 영화보다 <범죄의 재구성>이나 홍상수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written date:2004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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