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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청국장 띄우기(2016), 몇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by 내오랜꿈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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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를 구린내가 피어오르는 집안에서 뒹굴며 보냈다. 연휴 동안 메주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운 것. 장을 담근다든가 띄우는 게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일 같지만 발효 식품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김치 담그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게 장 담그는 일이다. 바구니에 유기농 볏짚을 깔고 광목천을 두른 다음 6시간 정도 삶아 두세 시간 뜸 들인 뒤 사람 체온 정도로 식은 메주콩을 넣으면 청국장 띄우기는 시작된다. 그다음은 사람이 아니라 미생물이 알아서 한다.



▲ 바구니에 유기농 볏짚을 깔고 광목천을 두른 다음 잘 삶은 메주콩을 사람 체온 정도로 식힌 뒤에 넣는다.

▲ 청국장을 띄우는 동안 인위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바구니에 이불 하나만 덮어 준다.


청국장 띄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콩이다. 좋은 콩을 얼마나 잘 삶느냐가 청국장 띄우기의 핵심인 것. 청국장은 한마디로 콩의 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을 생성시키는 과정이 전부다. 다른 장류, 예컨대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의 경우는 여러 곰팡이나 세균, 효모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발효가 진행되지만 청국장은 오로지 Bacillus subtilis(고초균)라는 세균만이 발효 과정에 참여한다. 따라서 청국장 띄우기의 핵심은 잘 삶은 콩을 가지고 고초균이 가장 잘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고초균이 가장 잘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은 적당한 온도(38~43℃)에 활성이 강한 고초균이 함유된 볏짚만 있으면 된다. 공기 중에도 어느 정도 고초균이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오래 방치된 볏짚에 단백질 분해 효소인 프로테아제(protease) 활성이 강한 고초균이 많다고 한다. 고초균에서 '고초'라는 말 자체가 '마른 풀'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국장 띄우기는 콩의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이므로 프로테아제(protease) 활성이 강해야 청국장 맛이 좋아진다. 그리고 고초균은 호기성 발효를 한다. 공기를 잘 통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 이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청국장을 띄우는 데 있어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SNS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청국장을 띄우면서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 예컨대 실내온도나 용기와 관련된 것들을 필수요소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 대로 만든 바구니를 써야 한다느니 스텐레스나 플라스틱 바구니는 좋지 않다느니 전기장판이나 보일러 등의 가온시설을 이용하여 온도를 높여 주어야 한다느니 하는 것들이 마치 청국장 띄우기의 중요 조건인 양 복사 되어 떠돌아 다니는 것. 더불어 띄우는 동안 절대 열어 보면 안 된다느니 잡균이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 같은 것으로 덮어 주는 것이 좋다느니 하는 레퍼토리도 곧잘 등장한다.


그 중에서 대로 만든 바구니가 좋다거나 스텐레스나 플라스틱 바구니는 좋지 않다거나 하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소리다. 용기는 청국장 발효에 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로 만든 바구니는 잘못 보관했을 경우 곰팡이라든가 다른 잡균들이 스텐레스나 플라스틱 바구니보다 많이 묻어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수저를 비교했을 때 스텐레스 수저보다 대나무로 만든 수저에서 엄청 더 많은 세균이 검출된다는 건 상식이다. 만약 청국장을 띄울 때 대나무 바구니를 쓸려면 건조한 상태에서 잘 보관한 걸 햇볕에 한두 시간 소독한 다음 쓰는 게 안전하다(사실 이렇게 해도 세균류는 죽지만 한 번 핀 곰팡이는 잘 죽지 않는다). 곰팡이나 잡균은 청국장의 맛을 변질시키는 주범이다. 제발 앵무새마냥 근거 없는 말들 좀 옮기지 말았으면 한다.



▲ 청국장 띄우기 시작

▲ 청국장 띄우기 시작한 지 36시간 경과한 모습

▲ 청국장 띄우기 시작한 지 48시간 경과한 모습. 이때 내부 온도는 60℃를 우습게 넘어선다.

▲ 청국장 띄우기 시작한 지 72시간 경과한 모습. 96시간 띄운 모습과는 큰 차이 없으나 48시간 띄운 모습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청국장 띄우기 시작한 지 96시간 경과한 모습. 내부 온도는 35℃ 전후에서 안정화된다. 청국장 띄우기 완료.


청국장 띄우기에 관여하는 고초균(Bacillus subtilis)은 된장이나 간장의 발효에 관여하는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들이 어느 정도 약산성 조건에서 최적의 발효를 하는 것과는 달리 pH6.7~7.5 정도가 최적이다. 따라서 소금 같은 염분이 들어가면 고초균은 증식하지 못 한다. 이것이 메주나 청국장 발효에서 부패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소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가 흔히들 메주를 띄우면서 곰팡이가 잘 피었니 어떠니 하며 잘 뜬 메주의 표준을 좋은 곰팡이의 유무로 판단하지만 사실 메주의 핵심은 곰팡이가 아니라 고초균(Bacillus subtilis) 같은 세균이 얼마나 많이 증식했는가이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메주 띄우기에 관여하는 미생물은 곰팡이류가 1% 정도이고 Bacillus subtilis 같은 세균류가 99%라 할 수 있다. 메주 표면은 곰팡이로 덮여 있지만 속은 Bacillus속(屬) 세균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고초균(Bacillus subtilis)은 또한 다른 세균들과는 달리 비교적 고온에서도 활력을 잃지 않는, 내열성이 강한 호기성 세균이다. 최적 생육 온도는 38~43℃라고 하는데, 청국장을 띄우는 과정에서 고초균이 가장 활발하게 증식하는 동안에는 내부온도가 60~70℃ 정도까지 올라간다(자세한 과정은 청국장 띄우기 참조). 38~43℃ 사이에서 최적의 활력을 보이는 고초균이 60~70℃에서 활력이 떨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 따라서 청국장 띄우기에서는 온도를 어떻게 높이는가보다는 어떻게 낮추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메주콩을 삶은 뒤 40℃ 정도로 식힌 다음 청국장을 띄우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라면 굳이 전기장판이나 보일러를 가동해서 온도를 높일 이유가 있을까?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뜨거운 콩을 그대로 바구니에 넣어 청국장을 띄우기도 한다는데 고초균(Bacillus subtilis)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건 너무 어이없는 방식이다. 나의 경우 청국장을 띄울 때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온도를 높이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청국장을 띄우는 바구니를 이불로 두어 겹 싸 주는 게 전부다. 우리 집 겨울철 실내 온도는 20℃. 이 온도에서도 청국장은 잘만 띄워진다. 청국장을 띄우는 바구니는 이불로 둘러싸여 있고 안에서는 고초균이 증식하느라 열을 발산하고 있는데 전기장판을 돌리고 보일러 온도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청국장 띄우기에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무작정 온도를 높이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백 번 양보해서 처음 청국장을 띄우기 시작할 때 한두 시간 정도는 온도를 높여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바구니 안의 콩 내부 온도를 40℃ 전후로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어떻게 하면 온도를 낮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더 나은 청국장을 띄우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청국장 띄우기와 관련한 또 하나의 '도그마'는 띄우는 동안 절대 열어 보면 안 된다는 속설이다. 주로 청국장이나 된장을 오래도록 만들어 왔을 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이웃집 할머니가 그러더라'는 '유비통신'을 등에 업고 유포된다. 자꾸 강조하지만 고초균은 호기성 발효를 한다. 증식하기 위해서는 공기를 필요로 하는 세균인데 왜 열어 보면 안 된다는 말인가? 나는 청국장을 띄우면서 하루에 두세 번 이불을 걷고 바구니를 열어 공기를 순환시켜 준다. 이건 고초균이 증식하느라 높아지는 내부온도를 낮추어 주는 효과도 있음을 물론이다.


정리하자면 나의 경우는 잘 삶아진 메주콩을 40℃ 정도로 식힌 다음 유기농 볏짚을 넣은 뒤에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루에 두세 번 열어 보며 공기를 순환시키고 내부온도를 낮추어 주는 게 전부다. 발효는 미생물이 하는 것이지 사람이나 그릇이 하는 게 아니다. 미생물이 활동하는 조건을 이해하고 미생물이 증식하도록 기다려주는 게 사람의 할 일이다.


청국장은 띄우기 시작한 지 24시간이 경과할 때 고초균이 가장 많이 증식하고 48시간이 경과할 때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의 활성이 최고조에 달한다. 곧, 48시간이 지날 때부터 콩 단백질이 본격적으로 분해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청국장 띄우기는 콩의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과정이 48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본격화된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암모니아 냄새도 심해진다. 단백질 분해가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의미다. 이 과정은 또한 청국장을 띄우면서 스며든 각종 잡균들을 살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암모니아 가스는 살균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국장을 띄우기 시작한 지 60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열어 보지 않는 게 좋다. 고초균의 증식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에 내부온도가 급격히 높아질 이유도 없고 살균작용을 하는 암모니아 가스를 밖으로 내보낼 이유도 없으니까.



▲ 청국장 띄우기 완료 뒤 약간의 소금과 고춧가루를 넣고 으깨는 작업. 끈적끈적한 점질성 때문에 꽤나 힘든 작업이다.

▲ 소금과 고춧가루를 넣어 청국장을 으깬 뒤 필요 분량으로 나누어 냉동 보관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띄워진 청국장은 된장보다 단백질 함량이나 열량이 높다. 발효기간도 장류 중에서는 가장 짧은 3~4일 정도다. 따라서 탄수화물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문화권에서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간혹 냄새 안 나는 청국장 운운하며 24시간 또는 48시간 발효시킨 청국장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청국장을 만들어 먹는 중요한 이유인 콩 단백질의 소화흡수율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삶은 콩과 제대로 발효시킨 청국장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불과하다(자세한 것은 청국장 발효의 몇 가지 문제 참조). 특히나 24시간 발효시킨 청국장은 단백질의 소화흡수라는 측면에서는 그냥 삶은 콩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기에 청국장은 최소한 72시간 이상은 띄워야 한다. 그래야 활성화된 프로테아제에 의해 단백질 분해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보통 84시간 내지 96시간 발효시킨다. 그 과정 동안의 모습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그대로다.


이렇게 띄운 청국장은 후숙 과정이 필요하다. 상온 상태에 그대로 두면 과발효되거나 부패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소금과 고춧가루, 마늘 등을 넣고 적당하게 찧어 한두 번 먹을 분량만큼 나누어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한다. 며칠의 노력 만으로 1년 내내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먹거리가 완성되는 셈이다.


묵은 된장 손질하고 청국장 띄웠으니 이제 고추장 담글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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