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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일상

만추 정경

by 내오랜꿈 201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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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계절이 서로 눈치 보며 기싸움을 벌이는 시기. 집 안팎을 수놓는 색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농사든 뭐든 바쁜 계절을 보내는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면 이쯤에서 주변을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을의 끝자락을 부여잡은 석류 잎사귀. 몸통에서부터 가지 끝까지 노랗게, 노랗게만 물들고 있다. 한날한시에 떨어지기로 약속이라도 한 걸까? 샛노란 잎들이 미처 물들지 못한 동료들을 기다리며 만추의 비바람을 견디고 있다. 어쩌면 막무가내로 흐르는 시간들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과실나무 단풍이다.




이 계절에 화사하기로만 따진다면야 담장을 둘러싸고 피어난 메리골드나 금계국 같은 국화 종류들을 따라갈 만한 게 어디 있으랴. 한 달 넘게 황금빛 붉은 색들을 선보이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건만 메리골드 같은 가을 꽃들은 예외다.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 같은 빛깔들. 이 빛깔들이 부러웠을까? 무리 지어 핀 메리골드 사이로 패랭이꽃 한 송이가 피었다. 그 옆에서 다른 한 송이도 필 준비를 마친 상태고. 지난 여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패랭이꽃. 이미 두세 달 전에 그 생명을 다하고 내년 여름을 준비하며 새순을 피운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벌써 꽃을 피우다니... 11월에 핀 진달래도 그렇거니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아는 상식의 한 귀퉁이들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제철 잊은 패랭이꽃의 생경함 못지 않게 제철에 피어난 비파나무 꽃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과실수는 봄에 꽃을 피워 여름과 가을에 걸쳐 결실을 맺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비파나무는 가을에 꽃을 피운 상태로 월동을 한 뒤 여름에 결실을 맺는다. 이런 생리적 특성을 지닌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만 생육 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어도 해마다 겨울 문턱에 핀 비파나무 꽃을 볼 때마다 여전히 낯설다.




그 낯설음 뒤로 수확을 기다리는 참다래가 눈에 들어온다.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랑 한 포기 있는지라 늘 홀대 받는다. 잎 피고 꽃 필 때는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딸 때가 되어서야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그러다 그 맛을 보고서는 매번 감탄한다. 어쩌다 마트에서 한 번씩 사 먹는 참다래는 참다래가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 그 감탄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만간 뽑혀나가지 않을까 싶다.




늦가을 풍경은 겉으로는 풍만한 듯해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 또한 묻어 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뒤따를 계절을 함께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쓸쓸함을 느낄 짬도 없이 바쁘기만 한 친구들도 있긴 하다. 카메라 렌즈가 코앞에 다가가도 자기 할 일에만 열중하는 꿀벌들. 저무는 계절이 아쉽기는 저나 나나 마찬가지일 터.


만추의 하루. 바다 저편으로 저무는 해는 언제 보아도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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