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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일상

초피를 따다 말벌에 쏘이다

by 내오랜꿈 201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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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지방에서는 '제피',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젠피'로 불리는 초피. 추어탕 같은 민물고기 요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향신료인데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이 쓰인다. 그래서 지금도 지리산 자락의 질 좋은 초피는 일본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데 경상도 지역 일부에서는 '고초'라 불리기도 한다. '고초'는 나름대로 역사성을 간직한 이름이다. '고초'는 옛말 '고쵸'에서 유래된 것인데 문헌상에서는 항상 한자 '초(椒)'와 병기하여 '고초(椒)'라 표기된다. 이 '초椒'라는 한자어는 나무 목木과 숙叔을 합한 형성문자인데, 갑골문에 등장하는 '숙(叔)'은 '가지에 붙어 있는 콩'을 의미한다고 한다. 곧 '초椒'라는 한자어는 초피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를 가르키는 것이다.



▲ 초피나무에 맺히는 열매들(2015/04/14)


따라서 <구급간이방>이나 <향약집성방>, <식료찬요> 같은 우리의 옛문헌에 등장하는 '고쵸'는 초피나무, 산초나무 등의 열매를 통틀어서 지칭하는 것이지 우리가 지금 재배하는 고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옛문헌에 '고초'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걸 근거로 우리나라에서 고추 재배의 역사가 임진왜란 이후가 아니라 고려시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솔직히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사고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고추가 외국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우리나라 토종이라는 걸 억지로 만들어내서 무얼 하자는 걸까? 토종도 좋고, 애국도 좋은데 좀 적당히들 했으면 한다. 토종이라서, 오래되어서 무조건 좋다는 발상은 애국이 아니라 국수주의에 가깝다. 국수주의는 나찌즘 같은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고...



▲ 붉게 익어가는 초피 열매들.


초피나무는 어린 순이나 어린 열매를 장아찌 등으로 만들어 식용으로 쓰고 다 익은 열매의 껍질을 향신료로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추어탕 등에 넣어 먹는 초피가루는 다 익은 초피 열매의 껍질을 말린 것이다. 따뜻한 봄 기온 탓에 일찍 꽃이 피었던 텃밭의 초피나무가 벌써 붉은 열매를 맺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날 저녁, 더 두었다가는 열매가 벌어질 거 같아 억센 가시를 피해 하나하나 따기 시작한 지 오 분이나 지났을까? 왼손에서 아찔한 통증이 느껴진다. 초피나무 가시에 찔렸나 생각하는 순간 노랗고 시커먼 말벌들이 손에 붙어 있는 게 눈에 띈다.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는데 말벌들이 떼로 달려든다. 순간적으로 큰일났다 싶었는데 다행히도 목이며 머리에 달라붙는 말벌들을 떼어내며 최소한의 피해로 위험을 벗어난다. 왼손에 다섯 방, 왼쪽 종아리에 한 방을 쏘이는 정도로. 독이 한창 올라올 시기라 그런지 엄청난 통증이 몰려온다.



▲ 초피나무 가지 사이의 말벌집. 

▲ 떼어낸 말벌집 속의 애벌레들. 찾아보니 집 모양이 말벌과인 쌍살벌 종류인 것 같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일단 말벌집부터 없애자 싶어 초피나무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중간 가지 정도에 큼직한 집이 눈에 띈다. 보는 것만으로 섬찟한 느낌이 들 정도다. 분무식 모기약을 말벌집 주변에 집중적으로 뿌리니 몇 마리는 도망가고 대부분 나무 밑으로 떨어진다. 집을 떼어내고 보니 벌써 날개가 생기기 시작한 수많은 애벌레들이 꼼지락거리고 있다. 창고 처마밑이라든가 다리밑 등 좋은 서식지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초피나무 가지에 집을 만들었을까? 비를 피하지도 못 하고 사방이 트여 있어서 분명 좋은 입지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를 일이다.



▲ 말벌에 쏘인 직후 왼손 모습. 분홍점이 쏘인 자국이다(5군데). 

▲ 말벌에 쏘인 지 30분 뒤.

▲ 말벌에 쏘인 지 두 시간 뒤.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말벌에 쏘인 지 삼십 분이나 지났을까? 왼손이 퉁퉁 부어오른다. 얼음 찜질을 한 상태로 두어 시간 지나니 다소 통증은 가라앉지만 붓기는 더한 것 같다. 이 년 전에도 밭일을 하다 말벌집을 건드려 왼손이 며칠 동안 마비될 정도로 쏘인 적이 있는데(벌에 쏘이다) 그때에 비하면 약소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때 쏘였던 덕분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걸까? 만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 다소 부은 상태지만 주먹이 쥐어질 정도면 확실히 이 년 전보다는 회복이 빠른 것 같다. 또한 쏘인 데가 엄청 가려워 참기가 힘들 정도인데 가렵다는 건 아마도 제대로 치유되고 있다는 징표가 아닌가 싶다. 말벌에 쏘이고도 하루 이틀 고생하고 낫는다면 '봉침' 맞았다 생각하면 남는 장사가 아닐까? 남들은 돈 주고도 맞는다고 하는데 말이다.^^


하여튼 별 경험을 다 한다. 초피나무에 말벌집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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