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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태풍 '고니'가 지나간 텃밭 풍경

by 내오랜꿈 201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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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가 온다는 소식에 꽤나 긴장했었는데 의외로 싱겁게 지나가버렸다. 지난 번 '찬홈'에 비하면 피해랄 것도 없는 미미한 흔적을 남긴 채. 가을의 초입에 오는 태풍치고는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연약한 태풍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가장 걱정했던 고추는 바람에 약간 기울어진 것 빼고는 가지가 부러진 걸 찾기가 힘들 정도다. 오히려 지난 주말부터 태풍 대비하느라 새로이 지주를 보강하고 줄로 묶는 과정에서 내가 부러뜨려 먹은 가지와 고추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ㅠㅠ 반면에 고추 이랑 사이에서 자라던 양배추와 브로콜리 등이 바람에 흔들려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고추만 걱정했지 양배추가 쓰러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훨씬 더 연약한 상태였음은 자명한데 말이다. 작물을 키운다면서 작물이 아니라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탓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나한테는 고추가 훨씬 더 중요했으리라. 심은 지 20여 일 된 연약한 배추 종류는 눈에도 안 들어올 정도로.




안 그래도 생명을 다해 가던 오이는 곁가지의 무게에 짓눌려 지난 주부터 기울어가고 있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드러누웠다. 그런데 한나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새로이 살길을 찾아 창고 벽면을 타고 지붕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이 감탄스럽다. 6월말에 파종한 가을용 오이가 이제 막 열리고 있어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벽면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망설여진다.




너무 많이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지가 축축 늘어지던 파프리카. 가지마다 지주에 묶고 포기 전체를 다시 한 번 둘러묶었던 덕분인지 별다른 피해가 없다. '찬홈' 때는 성한 이파리가 하나 없을 정도였던 가지 역시 같은 방법으로 동여매었더니만 마찬가지로 무사한 것 같다. 가지 상태를 보니 확실히 '고니'는 '찬홈'보다 바람의 강도가 약했던 모양이다.




이번 태풍으로 텃밭에서 유일하게 걱정되는 게 강낭콩이다. 파종한 지 45일 된 두벌 강낭콩인데 한창 꽃이 피고 꼬투리가 맺혀 굵어가고 있는 중인데 '고니' 덕분에 옆으로 반쯤 드러누운 상태다. 땅이 굳는대로 일으켜 세우는 시늉이라도 한 번 해 주어야 할 거 같다.




텃밭 작물 관리하느라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담장 밑의 참다래 나무. 굵은 가지를 떠받치다 무너진 지주를 일으켜세우다 보니 어느새 열매가 거의 다 자라 있다. 참다래는 이제부터는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제 몸의 유기산을 소모시키고 당분을 축적시키는 성숙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고도 수확한 뒤 후숙 과정을 거쳐 과육이 연해져야 먹을 수 있는 참다래는 참 독특한 과일이다. 


어쨌거나, 예쁜 이름과는 달리 현실의 고니는 꽤나 시끄러운 동물인데 태풍 '고니'는 이만하면 조용히 지나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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