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파종한 지 80일이 되어 간다. 이번 주부터 몇 개씩 수확해서 삶아 먹고 있다. 우리 집 텃밭에 여러 가지 작물이 있지만 아마도 가장 천대(?)받는 작물이 옥수수가 아닌가 한다. 심은 뒤 한 번도 퇴비라든가 물을 준 적도 없을 뿐더러 고추나 토마토 등에 바닷물을 줄 때도 옥수수는 예외였다. 덕분에 수확할 때 보니 진딧물이 있는 포기가 꽤 눈에 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우리 집에서 옥수수는 용도가 제한적이다. 수확하는대로 삶아 먹거나 다 먹지 못할 경우엔 생 알갱이를 따서 얼리거나 조금씩 말리는 정도다. 생으로 얼린 것은 잡곡밥에 넣거나 갈아서 죽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말린 것은 처마 밑에 보관하다 대부분 쥐나 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씨앗으로밖에 쓰질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올해는 말린 것을 가루로 내어 식빵 같은 다른 음식을 만들어 볼까 생각중인데 생각처럼 될지 모르겠다.
▲ 옥수수의 수확후 저장온도가 단맛의 함량에 미치는 영향("원예작물학", 농민신문사, p.215)
갓 딴 옥수수를 바로 삶아서 옥수수 본연의 맛을 느끼는 건 텃밭에서 직접 가꾸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옥수수는 수확하고 나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당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은 옥수수를 수확한 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옥수수의 당분이 손실되는 정도를 저장온도 조건에 따라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옥수수는 여름에 수확한 뒤 하루만 지나면 당분의 60%가 빠져나간다. 이틀이면 70%가 빠져나가는 셈이니 대부분의 경우 옥수수를 구입해서 먹는 소비자는 옥수수가 갖고 있는 당분의 70%가 손실된 상태에서 먹게 된다는 말이다. 저온에서 보관하는 경우에도 0℃이하가 아니라면 3,4일만 지나면 역시 당분의 60~70%가 빠져나간다.
여름 여행 중에 옥수수 산지의 도로변에서 파는 옥수수를 사 먹으면 아주 달고 맛있는데 옥수수를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삶으면 그 맛이 안 난다는 말들을 하면서 삶을 때 사카린 같은 첨가제를 넣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의 글들을 간혹 접하게 된다. 물론 산지에서 삶아서 팔 때 사카린이나 뉴슈가 같은 첨가제를 넣을 수도 있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옥수수의 당분이 그만큼 빠져나간 뒤에 먹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괜한 의구심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텃밭에서 딴 옥수수를 겉잎 대충 손질하고 바로 삶는다. 소금은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넣지만 설탕류는 하나도 넣지 않는다. 삶는 시간도 센 불에서 20분 정도 삶은 뒤 중불에서 5~10분 정도 뜸 들이면 끝이다. 그런 뒤 따뜻할 때 먹으면 수분도 촉촉하고 당분의 손실도 없을 때니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가끔 SNS 등에 보면 옥수수를 40~50분, 심지어 1시간까지도 삶는다고 하는데 갓 따서 삶아 먹는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옥수수가 너무 많이 여물었거나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지 않았다면야 1시간이나 삶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결론적으로 옥수수를 오래도록 맛있게 먹을려면 수확한 뒤 바로 냉동시키거나 삶아서 냉동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직접 키우지 않는 한 둘 다 불가능하다. 수확된 옥수수가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때는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지나야 되는 법이니 저온유통 시스템으로 운반된 게 아니라면(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는 옥수수를 '콜드-체인 시스템'으로 운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때는 이미 옥수수의 당분은 70% 정도 빠져나간 뒤라는 말이다. 그렇게 구입한 옥수수를 삶아서 냉동 보관하면 단맛이 유지되니 어떠니 하는 글들은 사실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수분 유지에는 어느 정도 도움된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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