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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8. <구조주의> - 관계를 떠난 주체는 없잖아!

by 내오랜꿈 2009.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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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구조주의> - 관계를 떠난 주체는 없잖아!

언어학에 기대어 역사로 귀결되는 사유방법 극복… 서구적 사유의 확대라는 비판받아



(사진/레비 스트로스는 친족관계의 구조를 찾아내 미개와 야만의 이분법을 깨뜨렸다. 남미 원주민의 삶 속에도 인류의 보편적 정서가 깃들어 있다)


20세기 후반기에 사상사 흐름의 주도권을 잡은 나라는 단연 프랑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영향력은 지금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사상가들 가운데 누가 가장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할까? 푸코? 아니면 알튀세르? 데리다? 아마도 예상 밖일 텐데, 1위를 차지한 사람은 레비-스트로스였다. 알다시피 그는 ‘구조주의’의 창시자다. 우리는 그것의 영향력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것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그것을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1949년에 <친족관계의 기초구조>라는 책을 내면서 구조주의라는 전혀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그는, 이듬해인 1950년 브라질의 아마존 지역을 탐사한 인류학적 여행기 <슬픈 열대>로 출판계에 일대 열풍을 일으켰으며, 1962년 출판된 <야생의 사유>로 당시 지도적 사상가였던 사르트르의 역사 개념 자체, 나아가 인간이나 주체라는 개념까지 근본적으로 비판함으로써 희대의 지적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로써 10여년을 준비한 하나의 거대한 혁명이 전면에 등장한다. 1965년, 알튀세르는 구조주의의 영향 아래 마르크스를 해석한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읽기>를 출판하여 구조주의 혁명이 다른 지적 영역으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구조주의의 해’였던 1966년은 푸코의 <말과 사물>과 라캉의 <에크리>가 출판되어 ‘모닝빵처럼 팔림’으로써 구조주의의 물결이 거대한 해일처럼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간 시기였다. 이러한 물결은 급속하게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으며, 좋든 싫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인간 개념 비판한 레비-스트로스의 지적 스캔들


(사진/맨위부터 구조주의의 창시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끝내 구조주의 자임을 거부한 자크라캉, 구조주의자들이 주목한 소설<도둑맞은 편지>를 쓴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그러나 호사다마라! 1968년 5월 혁명을 거치면서 구조주의는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데리다는 <문자학>에서 레비-스트로스를 주타격대상으로 삼았고, 그를 비판하는 논문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푸코 역시 일종의 ‘자기비판적’ 서문을 포함한 <지식의 고고학>의 결론을, 자신을 구조주의자라고 간주하는 발언들을 반박하는 것으로 채움으로써 싸늘한 배신의 길을 갔다. 라캉 역시 사위인 밀레르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신이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명시함으로써 “구조는 거리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비난조의 슬로건을 모면하고자 했다. 몇년 만에 조류는 급속히 바뀌어 레비-스트로스는 새로운 고독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이른바 ‘포스트구조주의의 시대’가, 즉 구조주의에서 벗어나거나 구조주의를 해체하는 그런 시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자체가 역으로 구조주의의 영향력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을 간단하게 대답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정된 실패를 감행해야 한다. 라캉처럼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이용해보자. 라캉은 포의 소설 <도둑맞은 편지>의 시작과 끝에서 두개의 동형적 관계를 찾아낸다. 먼저, 왕에게 보여선 안 될 편지를 읽고 있는 왕비의 방에 갑자기 왕이 들어온다. 똑똑한 왕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편지를 슬며시 테이블에 내려놓고 왕을 맞이한다. 왕은 다행히 사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 왕을 찾던 모 장관이 들어온다. 눈치 빠른 그는 사태를 직감하고 두 사람의 면전에서 구겨진 종이를 이리저리 흔들다 편지와 바꿔치기 한다. 물론 왕비는 그것을 보았지만 제지할 수 없었다. 장관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키워간다. 다음, 왕비의 부탁으로 파리 경찰청장은 엄청난 경찰들을 동원해서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편지를 찾지 못했다. 그의 부탁을 받은 탐정 뒤팽은 쉽사리 그의 집에서 그 편지를 찾아다 준다. 경찰이 뒤질 것을 안 장관은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눈에 띄기 쉬운 곳에 별 것 아닌 편지처럼 꽂아두었던 것이고, 뒤팽은 이를 알아채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편지로 바꿔놓고는 편지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장관이 있는 자리에서.


편지 둘러싼 반복 관계… 선험적 주체는 신화


첫째 장면에서 왕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고, 왕비는 그것을 알고 편지를 눈에 보이게 두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보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해서 편지를 빼앗긴다. 장관은 그런 사태를 알고 편지를 유유히 가져가는 자다. 둘째 장면에서도 이런 관계는 반복되어 나타난다. 경찰은 눈이 있어도 눈앞의 편지를 보지 못하는 자다. 장관은 그런 사태를 예견하고 편지를 눈에 보이게 두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보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서 결국 편지를 빼앗긴다. 뒤팽은 그러한 사태를 잘 알고 눈앞에서 편지를 유유히 가져가는 자다.




서로 다른 두 장면에서 우리는 세 사람의 관계가 동일한 삼각형으로 표시될 수 있는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라캉은 이를 ‘반복강박’이라는 정신분석 개념의 은유로 이해한다. 전혀 다른 종류의 장면들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다른 사건임에도 이처럼 반복하여 나타나는 동일한 관계를 일종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에만 주목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란 점에서 심층의 구조다. 이러한 관계는 편지(letter)를 둘러싸고 만들어지며, 편지에 대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반복이다. 그렇다면 편지(letter는 문자라는 뜻도 있다)가 바로 이런 반복적인 관계를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 언어, 혹은 상징적 기호들이 바로 이처럼 반복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구조란 언어와 결부된 것이고, 상징적인 것이다(물론 여기서 구조주의가 언어학에 기대고 있는 것은 이런 문학적 은유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다).


한편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가령 장관은 동일한 사람이지만 두 경우에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관계 속의 다른 자리에 있으며, 다른 구실을 한다. 다른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는 그의 몸이 갖는 생물학적 동일성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는가, 다시 말해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선결정된 어떤 주체란 없으며, 다만 관계 속에서 그가 선 자리에 의해 어떤 주체가 될 뿐이다. 즉 주체는 구조의 효과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더불어 어떤 항도 그가 다른 것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고, 관계가 개별적인 항의 의미를 결정한다. 주체철학에 대한 비판, 인간주의에 대한 비판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는 사물을 보는 구조주의적 방법의 결정적 특징을 보여준다. 가령 남성성을 띠게 마련인 전사가 소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고 하자. 그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구조주의자는 소녀와 전사를 직접 연결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설명하다. 남자와 전쟁의 관계는 여성과 결혼의 관계와 같다. 소녀는 전쟁에 반한다. 따라서 소녀의 모습을 한 전사는 결혼에 반하는 여성과 동일하다. 여기서도 다시 관계의 동형성과 반복이 등장한다. 문제는 미개한 종족과 문명화된 종족 사이의, 역사가 메워줄 시간적 격차가 아니라, 아주 다른 것 사이에도 존재하는 구조적 동형성이다. 여기서 역사주의 비판이 시작한다.


“문화적 차이 무시하고 보편적 틀에 묶는다”


구조주의는 이런 식으로 사고한다. 이로써 레비-스트로스는 친족관계의 구조를 찾아냈고, 미개와 야만의 이분법을 깨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동형성을 보여주었으며, 그것을 야생적 사유라는 이름으로 인류의 정신 깊숙이 위치지웠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각각의 사건이 갖는 차이, 각각의 문화가 갖는 고유함을 구조라는 이름의 어떤 보편성과 불변성으로 환원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건 차이가 숨쉬고 변화와 변이가 움틀 수 있는 가변성의 공간을 폐쇄된 동형성으로 메워버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과학을 앞세운 서구중심주의를 과학성을 통해서만 깰 수 있다면, 그것은 또다시 다른 문명, 다른 사유를 과학이란 서구적 사유 안에 가두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그러면서도 루소처럼 문명이라는 타락 이전의 낙원으로 되돌아가려는 회귀의 심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이 구조주의에 가해진 비판이었다. 구조주의는 이런 비판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럼에도 구조주의가, 대문자 주체에서 시작해 대문자 역사로 귀결되는 낡은 사유방법을 전복하여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유방법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진경/ 성공회대 강사

한겨레21 2000년 05월 04일 제3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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