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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6. <아날학파> - 역사의 시간을 짜맞춘다

by 내오랜꿈 2009.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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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날학파 - 역사의 시간을 짜맞춘다

시간을 벗어난 전체사 만들기 위해 출발… 다양한 계열사 일구며 역사학의 지평 확대



지리학은 어떤 장소, 어떤 공간이 어떠한 기후와 환경을 갖는지, 그러한 공간들간에 어떠한 관계가 만들어지는지, 나아가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연구한다. 반면 역사학자들은 어떤 사회를 대상으로 시간에 따라 어떻게 그 사회가 변해왔는지, 그 상이한 시간대에 사람들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을 연구한다. 약간 추상적인 표현을 써서 말한다면, 지리학자는 공간에 대해 연구하고, 역사학은 시간에 대해 연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은 그 모든 사건, 그 모든 사실들을 하나의 전체로 연결하고 하나의 역사로 묶어주는 ‘역사적 시간’ 개념 안에서 사유한다.


그렇다면 역사학이 이 ‘역사적 시간’ 개념을 부정하고, 그것의 외부에서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모든 사실들을 하나의 전체로 묶어주는 그런 단일한 시간적 좌표없이 역사학이, 아니 역사 자체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시간이 사라진 이후 역사 내지 역사학은 대체 어떤 것일 수 있을까?


역사학의 경계 넘으며 근본적 질문 던져


(사진/아날학파는 미개와 문명이라 불리는 삶의 방식에서 시간적 차이를 지우려 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모습)


최소한 브로델로 대표되는 이른바 ‘2세대’ 이후의 아날학파는 이런 문제와 대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역사학을, 아니 역사 자체를 하나의 극한으로 밀고 간다. 역사 내지 역사적 시간 자체가 소멸하는 지대가 거기서 출현한다. 역사적 시간의 외부. 그들은 역사의 외부로 나간 것이다. 아니, 그들은 역사 내부에 그 외부를 끌어들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이 20세기에 출현했던 다양한 역사학 중 하나라는 위상을 훌쩍 넘어서게 만든 요인이고, 역사학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는 이유며, 역사학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되는 지점이다.


역사적 시간의 외부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령 우리는 17세기에 만들어진 가문과 족보를 상기시키는 제사에 참여하고, 그러한 관념의 법적 유산인 호적제도에 묶여 살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이여도 성씨가 같다는 이유로 결혼할 수 없는 세계에 산다. 이는 아직도 법조문에 명시된 현재적 사실들이다. 동시에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그래서 항상 미래적인 세계로 표상되는 그런 세계 속에서 산다. 이 두 가지 세계는 분명히 다른 시간성을 갖는다. 언어도 그렇다. 17세기의 유교적 관념과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극도로 세분화된 경어의 체계와, 반은 속어, 나머지 반은 외래어가 뒤섞인 채 축약되고 생략되어 나이로 표시되는 시간의 차이가 소통의 벽이 되는 그런 언어가 공존한다. 군사부일체의 유교적 관념과 모든 사람은 다같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관념이 공존한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상이한 사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종종 원시공산제 사회로 찬양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미개사회, 야만인으로 간주되는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의 삶과, 계몽의 전깃불이 밤마저 쫓아내버린 문명화된 사회가 동시에 존재하며, 척박한 땅에 아직도 호미를 들이대고 있는 전근대적 공간과 거대한 빌딩의 숲이 햇빛마저 가리는 근대적 공간이 하나의 시간대에 공존한다.


역사적 시간은 이토록 상이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의 시간 개념을 통해 ‘통일시킨다’. 어떻게? 그것은 그것들을 하나의 단일한 시간(역사적 시간)을 척도로 하여 앞선 것과 뒤처진 것, 미개한 것과 문명화된 것 등을 하나의 직선 위에 배열하는 것이다. ‘발전’이란 뒤처진 것이 사라지고 앞선 것에 동화되는 것이며, ‘진보’란 미개한 것이 개명되고 문명화되는 것이며, 전근대적인 것이 근대화되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코르테스와 선교사들이 화약과 성경을 들고 간 것이 그것이며, 아마존의 숲에 위대한 개척농장을 만들어 낡은 노동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을 하게 만든 것이 그것이며,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면서” 박정희가 이룩한 ‘조국 근대화’ 역시 그것이다. 식민지 사관 분쇄를 외치며 ‘경영형 부농’에서 자본주의의 맹아를 찾고, 실학에서 근대 사상의 맹아를 찾던 우리의 역사가들이 한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제도 중심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관심사로


(사진/역사학의 지평을 확대한 아날학파의 대표자들. 마르크 블로크(위)와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아래))

아날학파의 역사는 이런 역사적 시간 개념의 역설적인, 또한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페브르와 블로크로 대표되는 아날학파 1세대는 왕이나 국가, 민족에 집중되어 있던 역사가의 눈을 민중의 삶이나 무의식적인 심성이 표현되는 세계로 돌리게 만들었고, 제도에 몰두했던 역사로 하여금 인류학적인 상호관계를 다양한 양상으로 연구하도록 촉구했다. 그런데 동시에 그들은 ‘전체사’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즉 그들의 꿈은 하나의 역사적 시간이 작동하는 ‘전체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실증적 자료들에 매몰되어 전체를 상실한 역사에 대한 비판가였다. 그들이 지리학과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에 관심을 갖고 학제적인 연구를 누구보다 적극 수용했던 것은, 어쩌면 그토록 다양한 세계를 ‘역사’라는 하나의 전체로 포섭하고 포괄하려는 학적인 ‘야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브로델로 대표되는 아날 2세대는 전혀 다른 상대자를 갖고 있었다. 역사학에 대한 비판을 전면에 내세웠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존에서 문명의 전횡에 파괴된 ‘슬픈 열대’를 발견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미개와 문명 사이에 거대한 거리를 만들어두고, 그것을 하나의 직선화된 시간의 끈으로 연결하고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전자를 후자에 ‘통일시키는’ 문명의 폭력이 바로 대문자로 쓰여지는 ‘역사’라는 개념을 통해 행해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반대로 문명화된 사유의 모태를 ‘야생적 사유’에서 찾아내려 했고, 미개와 문명으로 불리는 상이한 삶의 방식 사이에서 시간적 차이를 지워버리려 했다. 그러면서 시간과 무관하게 어디나 항존하는 ‘구조’를 양자 모두에서 공통으로 발견했다.


브로델은 구조주의의 이러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어쩌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새로운 역사 개념을 제안했다. 한편으로 그것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처럼 아주 오랜 시간 변함없이 지속되는 역사의 층위를 포함하고 있었다. ‘장기지속’이라 불렀던 이 역사의 층위는 지질학적 내지 지리학적인 변수들과 관련된 것으로, 모든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를 보지 못하고 그저 사건에만 매달리는 것을 그는 ‘사건사’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비판했다. 그러나 ‘사건’이라는 순간적이고 항상 변하는 요소를 역사의 영역에서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그것을 굳이 말하면 단기지속적인 또 하나의 다른 층위로 설정했다. 그리고 장기지속과 사건사의 두 층위 사이에 ‘국면’(콩종튀르)이라는 중기지속적인 층위를 설정했다. 역사란 결국 이처럼 세 가지 상이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복합체라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페브르와 블로크의 전체사 개념을 갖고 있던 브로델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장기지속적인 역사, 그 거대한 역사적 시간의 포괄성과 전체성이었다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가족생활이나 어린이에 대한 태도, 죽음에 대한 태도, 공포의 양상, 혹은 연옥과 같은 상상적 세계의 변모 등을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심성(망탈리테)의 변화를 새로운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날의 3세대 학자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변화를 하나의 ‘장기지속적’ 역사나 ‘전체사’로 묶는 것을 거부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각각 상이한 시간성을 갖고 진행되는 각각의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개념을 그들은 종종 ‘계열사’라고 부른다. 즉 전체사로 되돌아가지 않는 각각의 계열들에 고유한 역사가 있으며, 그러한 계열로 포착되는 상이한 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체사나 총체성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사람들이 ‘조각난 역사’라고 비난하는 이러한 새로운 역사 개념을 통해서, 이제 그들은 아날의 선배들이 갖고 있던 ‘전체사’의 꿈에 냉정하게 종지부를 찍는다. 그래, 역사에는 브로델 말대로 상이한 시간의 흐름들, 상이한 시간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로델 말과는 반대로 그것을 하나로 묶어주고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하는 그런 시간성은 따로 없는 것이다. 이제 대문자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복수의 어미를 항상 달고 다니는 소문자로 시작하는 ‘역사들’이 있을 뿐이다.


장기지속적인 역사는 포기했을지라도…


따라서 모든 역사를 하나의 척도화된 시간, 하나의 보편 법칙으로 귀착시키려는 그런 태도는, 이질적인 계열들이 분기하면서 때로는 수렴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차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발산하면서 공존하기도 하는 그런 위상학적 공간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렇다면 역사란 이제 ‘과거’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땅덩어리를, 나름의 기울기와 각도를 갖고 절단함으로써 나름의 고유한 단면을 갖는 지층을 발견하고 탐사하는 작업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푸코가 훌륭하게 보여준 것처럼, 새로운 사유의 선을 찾아내고 새로운 삶의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란 점에서, 그저 과거 시제에 머물지 않는 역사, 차라리 미래의 시제를 갖는 역사가 가능하게 해주는 어떤 문턱의 이름은 아닐까? 역사적 시간의 외부에서 작동하는 역사학이 있다면, 그건 혹시 이런 게 아닐까?


이진경/ 성공회대 강사


한겨레21 2000년 04월 20일 제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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