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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벌교 국일식당의 꼬막정식

by 내오랜꿈 201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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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벌교는 만만한 동네다. 여기서 '만만하다'는 건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란 얘기다. 수도권에 있을 때는 남도여행이란 명목으로 천리길도 마다 않고 다니던 곳인데, 막상 벌교와 이웃해 있는 고흥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오고 가는 나들목에 있음에도 쉬이 발길이 가지 않았던 곳이다. 이사 온 뒤 몇 년 동안은 진주로 부산으로 수도 없이 왕래했지만 정작 벌교는 지나치기만 했던 것. 그러다 작년부터는 벌교 읍내를 자주 들르는 편이다. 일단 벌교시장이 고흥의 여느 시장보다 훨씬 크고 해산물이나 농산물도 싸고 싱싱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 고춧가루나 쌀가루를 만드는데 드는 방앗간의 삯도 고흥보다는 훨씬 싸다. 고추 열댓 근만 빻아도 삯이 만 원 넘게 차이가 날 정도로. 그러니 방앗간에 갈 일 있으면 일부러 외지로 나갈 일이 있을 때를 맞추어 준비하곤 한다. 그렇게 벌교는 나의 삶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낮기온이 섭씨 17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주말 벌교를 다시 찾았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마중하기 위해서다. 남는 시간을 쪼개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자집을 기웃거리다 일행들을 만나 천변에 주차를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국일식당으로 가는 길. 눈에 보이는 곳 모두가 꼬막정식 집이다. 언제부터인가 벌교의 모든 음식점이 꼬막정식으로 통일되어 가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획일화된 음식과 맛에 불평을 늘어놓은 글들이 블로그나 까페에 넘쳐나기도 한다. 나 역시 10여 년 전에 먹었던 꼬막정식에 비해 몇 년 전에 먹은 꼬막정식에 실망한 까닭에 다시는 찾지 않았던 음식이기도 하다. 그래도 손님들이 막상 벌교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곳도 없어 오래된 기억이 살아있는 국일식당을 찾았다.




사실 국일식당은 꽤 알려진 집이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된 뒤 강진 해태식당, 벌교 국일식당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식당이든 관광지든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넘쳐나서 망치지 않은 곳은 드물다. 해태식당과 국일식당도 그런 평가를 받았던 곳이다. 국일식당은 원래 가정식 백반 한정식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시류에 밀려서인지 지금은 꼬막정식이 대표 음식이다. 백반 한정식을 시킬려고 해도 꼬막정식이 더 낫다며 권하기 일쑤다. 벌교에서는 무조건 꼬막정식을 먹어야 할 운명인가 보다. 그나마 이곳 국일식당의 꼬막정식에는 다른 꼬막정식 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홍어와 돼지머리 눌린 게 나와 홍어삼합 맛을 어설프게나마 느낄 수 있고, 제철 회도 조금 나온다. 요즘은 숭어회가 나오는데 살짝 얼린 숭어회가 먹을 만하다.


참꼬막 삶은 것, 꼬막전, 꼬막무침, 꼬막된장시레기국이 꼬막정식의 주메뉴다. 만오천 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먹는 점심으로는 가격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사실 좀 과한 편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나 선암사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진일기사식당의 칠천 원짜리 백반정식과 비교해 보면 꼬막이 나오는 것 말고는 어느 하나 나은 게 없기 때문이다. 벌교 거리에 넘쳐나는 꼬막정식. 여행길에 한 번 쯤 먹어볼 수는 있겠으나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라고까지는 못하겠다.




소주 몇 잔에 부른 배를 만지고 식당을 나서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된 일본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보성여관. 1층은 찻집으로 개조해 음료를 팔면서 손님들에 한해 건물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마도 국일식당 간판을 찾는 것보다는 이 보성여관 건물을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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