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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녹색당의 20대 지역 정치인 Petter

by 내오랜꿈 201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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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녹색당의 20대 지역 정치인 Petter


 

Petter Forkstam(페터 포크스탐). 올해 만 28세.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 룬드시의 시의원이자 녹색당의 룬드시 지부장인 20대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동네 극장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다큐 상영회에서 DJ를 하기도 하고, 성권리 활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DJ 하는 20대의 직업 정치인이라니! 무조건 인터뷰를 청했다.


출처:<퍼슨웹>(http://www.personweb.com) 2011. 10. 31

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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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0년 가을부터 2년 과정으로 스웨덴 룬드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본업은 학생이지만, 딴짓하기를 좋아해서 매주 화요일마다 동네 극장에서 다큐 상영회 진행을 돕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 있었던 기후변화 다큐 상영회에서 DJ를 하러 온 Petter Forkstam(페테 포크스탐, 이하 페테)이라는 청년을 만났다. 올해 만 28세의 눈웃음이 매력적인 이 청년, 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룬드시의 시의원이자 녹색당(Green Party) 룬드 지부의 리더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한국의 20대가 투표장과 반값 등록금 집회에 모이면서 일각에서는 청년의 정치참여가 봄날을 맞았다지만, 이들이 지역 의회와 국회에 진출하여 직접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 점에서 스웨덴의 청년 정치인으로 살고 있는 그의 삶이 궁금했다. 나처럼 이 극장에 딴짓을 하러 왔다는 점에서 괜한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리고 이틀 후, 아침 8시 반에 그가 추천한 커피숍에서 만나게 되었다.


무척 이른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페테는 활기찬 모습으로 큰 배낭을 이고 들어왔다. 이 인터뷰가 끝난 후에 자신이 오랫동안 활동해 온 성(性)권리 단체가 주관하는 모임에 참여하러 스톡홀름에 간다고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질문했다. 


“이 커피숍 와봤어요? 여기는 다른 곳과 달리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부들로부터 공정한 가격에 직접 사들인 커피만 취급해요. 커피를 유통, 가공하는 대기업을 거치지 않고 소규모 재배 농가들과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익이 농부들에게 돌아가죠. 수익의 일부분은 현지 한 초등학교의 급식비를 지원하는 데 쓰이고요. 그래서 여기 오자고 했는데, 맘에 드나요?” 


하하. 누가 녹색당 소속 아니랄까봐. 하지만 나와의 인터뷰를 위해 이런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장소를 고른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고, 그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잘 먹고 잘 사는 스웨덴이 공정무역에 더 활발히 참여해야 함을 한참 역설하던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아, 인터뷰 하기로 했는데 내가 흥분해서 딴 이야기가 길어졌죠? 저 준비되었어요. 인터뷰 시작하죠.”



1.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퍼슨웹(이하 “퍼”)> 페테는 지금 녹색당 소속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해요.

 

페테(이하 “페”)> 고등학교 때 스웨덴 청소년 적십자(Red Cross Youth)에서 활동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비롯한 여러 차별 이슈에 대해서 또래 청소년들의 문제의식을 높이는 일을 했어요. 그리고 공정무역과 아동 권리에 대해서 알리는 일들도 했었죠. 그 후 룬드 대학교(Lund University)에서 정치학과 인문지리학을 공부하고 있고요. 


퍼> 학교 공부는 지금 다 마친 건가요?


페> 작년 가을학기가 마지막 학기였는데 아직도 학사 논문 쓰고 있어요. 스웨덴 개발청(한국의 KOICA처럼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 활동을 돕는 목적의 정부기구)이 우간다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또래 성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1년간 우간다에도 다녀왔죠. 혹시 프로젝트 6*라고 알아요?


*프로젝트 6는 룬드대학 내의 학생 단체로서 성 정체성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는 성생활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캠페인, 콘돔 배포, 성문제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스웨덴어로 6을 ‘섹스’라고 발음한다.


퍼> 성문제에 대해서 알리고 콘돔을 나눠주는 학내동아리 아닌가요? 


페> 맞아요. 스웨덴 개발청의 그 우간다 사업이 제가 룬드에서 관여했던 프로젝트 6를 모델로 한 거예요. 현재 우간다의 Mbarara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주도하는 또래 성교육이 진행되고 있죠. 우간다에 있을 때 그 친구들을 만나서 또래 성교육이 학생들과 그 주변 공동체에 일으킨 인식 변화에 대해서 조사했어요. 우간다에서는 낙태와 동성애가 불법인데, 제가 여기선 공개적으로 게이라서(가벼운 웃음) 현지에서 좀 애매모호 했었죠.


퍼> 애매모호 했다는 상황이 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페> 우간다에 있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의 성정체성을 존중해 주었어요. 제가 룬드대학과 스웨덴 개발청의 멤버로 가서인가 봐요. 일부 학생들은 제가 동성애자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 했고요. 대체로 우리는 유익한 토론을 가졌고, 학생들이 성소수자들의 시각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제 첫 여행 때 우간다 쪽 협력자 한 명이 동성애는 아프리카의 문화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제게 이해시키려고 했었어요. 어떤 위협을 느끼진 않았는데, 그 분과의 토론이 쉽지는 않았어요.


퍼> 그랬었군요. 우간다의 동성애자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페> 우간다에서는 게이라는 신분이 불법이에요. 동성끼리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구류를 살 수 있어요. 성소수자(동성, 양성, 트렌스젠더도 포함)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그 가족들과 친구들을 7년간 구류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이 있었지만, 통과하지는 못했다고 들었어요.


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 특히나 다른 문화권에서 그렇게 하는게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페테는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자기 자신을 ‘성권리 활동가’로 소개하고 있는데, 성문제에 대해서 꾸준히 활동을 해 왔나요? 


페> 맞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생활 시작할 즈음에 스웨덴 성교육 연합(이하 RFSU) 소속으로 중,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했었죠. 스웨덴의 관련 법들은 꽤 진보적인데 반해 사회는 아직 그렇지 않아요.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슈들은 아직도 민감하게 여겨지고 있고, 선생님들 중에는 성교육을 직접 진행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렇게 활동가들을 교실로 초청해서 교육하기도 해요.  


퍼> 스웨덴 학교의 성교육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페> 피임교육도 하지만, 저는 성정체성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나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알아가는 것은 우간다나 스웨덴이나 동등하게 중요하거든요. 또 성문제라고 했을 때, 이것이 단순히 성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간의 관계(relationship)의 문제라는 걸 청소년들이 알아야 하고요. 안 그래도 오늘 오후에 RFSU 회의가 있어서 스톡홀름에 가는 거예요.


무슨 우연일까. 인터뷰 녹취를 푸는 날 학교에서 ‘젠더와 개발’ 수업을 듣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문구를 접했다. 공개적인 게이이자 성권리 활동가로서의 페터를 설명하는 데 이 보다 적합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필자도 중학교 3학년 때, 남동생을 유달리 좋아했던 집안 어른들에 대한 반발심에 자기 희망 직업을 쓰는 난에 페미니스트라고 적었더라지……



2. 행동은 이해의 어머니




 

퍼> 고등학교 졸업 후에 성권리 활동가로 활동하고, 또 대학에서는 학생회장도 했는데, 이때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페> 저는 학생의 주거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새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신입생들이 짧게는 몇 일, 길게는 몇 주간 친구 집에 얹혀 살거나 텐트를 치고 살잖아요. 전 저희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먼 걸음을 한 학생들이 텐트나 길거리에서 지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나요? 전 서명 운동이나 집회 외에 딱히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데요.


페> 아직 살 곳이 없는 학생들이 집을 찾을 때까지 지낼 수 있게 저희 집 소파를 내주는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저희 학교 총장과 룬드시 시장, 학교의 과학장들에게도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이 캠페인에 총장님이 참여해서 집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을 자기 집에서 묵게 해주면서 언론에서 화제가 됐었어요. 그 캠페인 때 룬드의 학생 주거시설 부족 상황이 크게 이슈화 되었고, 그 이후로 총장님은 모든 학생에게 주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대외적으로 말하시죠. 물론 이 말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기실 건지 지켜봐야 하지만.

 

퍼> 그렇게 어떤 권한을 가진 결정권자들을 캠페인에 참여시키는 건 흥미로운 방법인 거 같아요.


페> 그럼요. 전 늘 이런 식으로 활동해 왔어요. 지금은 저도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정치인이지만요. (웃음)


퍼> 굉장히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셨는데, 정당을 통해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페> 학생회장 임기가 끝나고 나서 몇몇 정당에서 비례대표 후보 제의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나의 성권리 활동을 대변하는 로비스트인데 내가 정당 정치에 발을 담가야 하나?”라고 자문했었어요. 그리고 저 역시 많은 스웨덴 청년들처럼 어느 한 정당이 표방하는 가치 전체를 지지하기 보다는 특정 이슈에 관심이 더 많거든요. 


퍼> 한국도 비슷해요. 정당이 표방하는 이데올로기보다 반값 등록금 같은 특정 이슈에 대해서 청년의 정치 참여가 더 활발해요. 


페> 그렇죠. 그런데 문득 ‘내가 로비스트로 일할 때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직접 정치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인생의 목표가 늘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는 것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녹색당 입당 제의를 받아들였죠.


퍼> 한국에서는 정치인이 특권적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권력을 남용하는 일부 정치인들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정치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죠. 저만 해도 ‘내가 굳이 왜 정치를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스웨덴에서 정치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주변 가족들과 친구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페> 스웨덴에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직업 정치인이 아니라, 생업이 따로 있고 정치를 겸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다양한 교육배경과 직업, 경험들을 대변하게 되지요. 저만해도 정치인이 되기 전에 이미 정책 결정자들을 대상으로 학생 문제, 인권 그리고 성권리에 대해서 알리고 이슈화시키는 로비스트였거든요. 지금도 그 활동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고요. 그러니 정치를 한다는 게 그렇게 특별한 선택이 아니었고, 제 가족과 친구들도 그 결정을 지지해줬어요.


퍼> 아,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군요. 그럼 녹색당에 들어가서 정치를 시작한 게 학생 회장이 끝나고 나서니까 2009년인 거죠? 지금은 녹색당 룬드시 지부 대변인 아닌가요?


페> 맞아요. 저는 운이 좋아서 비교적 빨리 지역 대변인(‘리더’와 같은 말)이 된 경우예요. 2010년 총선을 거쳐 룬드 지역 의원이 되었어요.*


* 스웨덴의 정치 및 지자체 행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4년마다 스웨덴에서는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Riksdag(의회) 의원 선거와 kommunfullmäktige(지자체의회) 의원 선거가 함께 열린다. 양 선거 모두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소속 정당이 차지한 투표수에 비례하여 의석을 차지한다.



3. 초년 시의원의 시장급 고민들




 

퍼> 지금 룬드시의 시의원인데, 시의원의 입장에서 볼 때 요즘 룬드시의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제가 온 서울시의 경우 무상급식의 실현여부가 뜨거운 주제였어요.


페> 룬드 지자체(municipality)는 룬드시와 그 주변을 아우르는데 인구가 11만이에요. 당신이 온 도시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매년 거주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어서 주거지 마련이 필요하죠. 그런데 이 지역이 스웨덴에서 농사짓기 가장 좋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요. 이러한 토지 위에 집을 더 지어야 하는지, 아니면 식량 생산을 위해 농업용으로 보전할 지가 문제죠. 아, 그리고 룬드시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여러 지자체가 멀지 않은 미래에 겪을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옆에 있던 신문을 뒤적이더니, 기사 하나를 가리킨다)


페> 내년에, 스웨덴에 있는 약 100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재정 위기를 겪는다는 전망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일부 사회서비스를 축소하게 될 수 있죠. 이미 매년 90여 명의 교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요. (스웨덴 대부분의 학교들은 지자체의 재정으로 운영된다.) 이것이 학교와 교육의 퀄리티에 의미하는 바가 뭐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재정난이더라도 중요한 사회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세금을 더 징수해야 하죠. 


스웨덴의 경우 9년간 의무교육이 보장되어 있고, 학비는 없다. 보편적인 교육권 원칙에 따라서 사립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상, 시민들은 대학 교육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생활비를 일부 보조 받는다.


퍼> 스웨덴 시민들은 높은 세율에 불만이 많지 않았었나요? 게다가 요즘 전 유럽이 경제위기라는 분위기 속에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에 시민들이   동의할까요? 


페> 제대로 일을 하는 정부라면 왜 세금을 증액할 수 밖에 없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상황이 나아지면 세금을 내리겠다라고 해야죠. 현 우파정부는 세금을 증액하지 않는 대신 공공 서비스를 축소해 오고 있어요. 흡연과 알코올 중독 예방 프로그램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복지 서비스들이 줄고 있죠. 현 정부가 지난 4년간 집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복지의 혜택에서 떨어져나가고 있어요. 스웨덴이 오랫동안 지켜온 복지 모델이 망쳐지는 것 같아 심히 우려돼요.


지난 60여 년 간 스웨덴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해왔었다.  이에 맞서고자 2004년 보수성향의 4개 정당들은 ‘스웨덴을 위한 연맹’이라는 이름의 연합을 구성, 공동으로 정책 공약을 준비했고, 2006년 총선 승리 이후 현재까지 연합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녹색당은 이 우파연합의 일원이 아니다.


퍼> 최근, 스웨덴의 복지모델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하는 데, 페터가 마침그 이야기를 해주었네요. 지역의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되는 룬드시의 문제가 있나요?


페> 룬드시에는 정치적 비전이 필요해요. 정치적 비전을 가졌다 함은 지역 정치인들이 자기 지역의 필요와 가능성을 파악 한 후, 대학이나 비즈니스, 시민사회 단체 등과 함께 능동적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거죠. 


퍼> 페터가 보는 룬드시의 정치적 비전은 어떤 건가요?


페> 룬드시에는 영향력 있는 룬드대학과 아스트라 제네카(스웨덴계 제약회사)와 같은 지식 비즈니스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요. 현재 룬드대학에는 많은 외국학생들이 있는데, 전 이들이 곧 자국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버클리가 좋은 예라고 생각하는데, 이 도시에 모여 있는 지식과 문화, 사람들을 시 정부가 잘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 우파정부 소속 의원들은 능동적으로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세예요. 


퍼> 서로 다른 의견과 동기부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통의 목표를 찾아서 일한다는 게 쉽지는 않죠. 


페> 그렇죠. 하지만 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해요. 듣지 않고서 제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전부 아는 것이 제 직업은 아니고요. 정치인이 할 일은 듣고, 행동으로 만드는 거죠. 물론 지금 제가 속한 녹색당이 야당이라서 쉽진 않아요. 여당인 우파 연합에 비교했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데 제약이 있죠. 그렇다고 해도, 상대편이 반대하지 않는 안-예를 들면, 룬드시와 말모시 간 자전거 전용 고속도로 건설안-들을 제안하고 함께 일할 수 있단 건 멋진 일이죠.



4. 그의 녹색 커밍아웃


퍼> 페테는 국회에 진출할 생각이 있나요?




 

페>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말을 멈추고, 한참 생각한 후에) 뭐 가능할 수도 있죠.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지역의원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었네요. 녹색당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되나요?


퍼> 하하. 물론!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어요.


페> 사실, 제가 녹색당을 참 좋아해요. 


이 친구, 원래부터 녹색당 청소년 정당조직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인터뷰 초반엔 정당에 소속된다는 것에 대해 전반적인 거부감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인터뷰 중간에 나온 그의 정치적 커밍아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녹음기를 좀 더 그의 쪽으로 옮겼다.


페> 녹색당에서는 최대 3선까지 할 수 있어요.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죠. 바로 이전 대변인이 Maria Wettestrand라고 굉장히 쿨하고,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던 여성 의원이 있었어요. 인기가 높아서 미디어와 일부 지지자들은 내규를 고쳐서라도 정당의 지지율 확보를 위해 Maria를 그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규칙대로 작년에 그녀 대신 새로운 대변인을 뽑았어요. 다행히 그 이후에도 정당의 지지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요.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의 이 규칙, 저도 마음에 들어요.

 

퍼> 그렇군요. 근데 제가 좀 헷갈리는 게 있는데 녹색당 대변인(spokeperson)이라는 말이 다른 정당으로 치면 당수(party leader)라는 말인거죠?


페> 네, 맞아요. 창당 당시 멤버들은 리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대요. 누군가를 리더라고 하면, 마치 그 사람이 정당을 이끌어가고 다른 멤버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요. 우리는 녹색당 활동이 수직적 리더가 없는 운동(movement)이라 생각하고, 리더 대신 이 운동을 대외적으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대변인을 둔 거죠. 


퍼> 그렇군요. 그럼 페터는 이런 독특한 정당 내 문화에 이끌려 녹색당을 선택한 건가요?


페> 그런 이유도 없지 않지만, 저는 녹색정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녹색당을 선택했어요. 정부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면, 개발이 미치는 사회적 여파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그런 점에서 녹색당에는 탄소배출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아요. 하지만 녹색당이 10년 전처럼 환경문제에만 집중했다면 아마 들어오지 않았을 거예요. 


퍼> 녹색당은 환경 이슈에 기반한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요?


페> 물론 환경문제 하면 녹색당이죠. 하지만, 요즘은 환경 이슈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저희의 정치 행동 영역을 사회문제, 인권과 소수자 문제 등으로 넓히고 있어요. 예를 들면, 주거난과 실업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법으로 에너지 플러스 주택 건설을 제안하고 있어요. 에너지 플러스 주택은 태양광 패널 등을 장착해서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주택이에요. 이런 주택을 지으면 녹색 일자리도 창출 되죠. 


퍼> 녹색 일자리 창출 명목의 건설 사업들 중에는 오히려 주변 환경을 해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에 비해 에너지 플러스 하우스는 기획배경이나 실천방법이 모두 친환경인 것 같네요. 


페> 녹색 일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녹색의 기치를 내건 활동은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녹색당 슬로건도 “동물, 자연, 생태계와의 연대, 미래 세대와의 연대, 세계 시민들과의 연대”이죠. 그래서 저희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을 넘어서, 사회 문제 해결에 환경적 관점을 보탠 대안을 만들어 나가려고 해요.


퍼> 그렇군요. 그럼 녹색당은 스웨덴 정당들 중에 어떤 정치성향으로 분류가 되나요?


페> 아, 중요한 걸 질문했네요. 녹색당은 우파연합의 일부가 아니긴 하지만, 저희는 녹색당의 정치 성향을 좌우 스케일에서 찾지 않아요. 대신 방향성을 논의할 때, 스웨덴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한 단계 전진(forward)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퍼> 좌우로 가지 않고, 전진하는 정당의 방향성이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나요? 


페> 녹색당은 전국구, 광역단체, 기초단체 차원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정당들과 연합하고 있어요. 저희는 각 지역에서 환경문제에 가장 의식이 강한 정당이 있으면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협력하고 있죠. 예로, 룬드시가 포함된 스코네 주에서는 보수 성향인 온건당(사회민주당과 더불어 제일 많은 의석을 가지고 있는 우파연합의 실세)과 힘을 합치고 있고, 국회와 룬드 지역 차원에서는 좌파당과 함께 일해요. 저희 정당 멤버들을 좌우 스케일로 놓고 본다면, 아주 다양한 성향이 나올 거예요.   


퍼> 녹색당이 연합관계를 넘나들며 일한다는 게 인상 깊네요.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두 정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하다가, 최근에서야 진보성향의 제 3당이 존재감을 갖게 되었거든요. 그 이후로 더 많은 소규모 정당이 생기긴 했지만, 서로 정책적으로 협력하는 예는 찾기 힘들거든요.


페> 저는 블록정치(bloc politics, 정당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대신, 비슷한 정치적 이익에 대해 블록을 구성, 이 블록이 주 정치행위자가 됨)를 믿지 않아요. 현재 스웨덴에는 8개의 정당이 있는데, 정당들이 블록을 위해서만 활동한다면, 8당 체제가 아니라 여덟 개의 파벌이 있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양자 구도가 되는 거지요. 저는 소수당들의 목소리가 더 돋보였던 예전의 정치 환경이 더 좋은 거 같아요. 지난 선거 때처럼 공동으로 정책공약을 구성하면,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이 크게 줄잖아요.

 

앞서 언급한 대로 2004년 보수성향의 4개 정당들은 ‘스웨덴을 위한 연맹’이란 이름의 연합을 구성하여 공동으로 정책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도전하고자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당도 ‘적녹연합’을 구성하여 2010년 총선에 참가했지만 과반수 차지에 실패하면서 야당에 머물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녹색당의 탈퇴와 함께 적녹연합은 해체하게 된다.


퍼> 아, 그렇군요. 그런데 녹색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페터가 녹색당 정치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신나게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느껴지네요. 


페> 아, 그런가요? (웃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전 제 위치에서 지역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좋아요. 저와 다른 동료는 룬드시 녹색당을 대표해서 지역의회의 임명으로 구성되는 집행 위원회에 속해 있어요. 이 일에 제 시간의 50%를 쏟고 있고 이에 대해 시정부로부터 활동비도 받고 있죠. 그래서 만족스러워요.


지역의회 내 집행위원회는 지역정부의 행정업무를 감독하고, 여러 특별위원회의 활동을 시찰하는 일을 한다. 집행위원회의 의원들은 지역의회가 임명하는데, 임명된 의원을 갖지 못한 소수 정당들도 대리의원(alternate)을 둘 수 있다. 이는 다양한 정당의 목소리를 집행위원회에 전달하기 위한 장치이다.



5. 스웨덴에서 20대로 정치하기




 

퍼> 녹색당 내에는 페테처럼 젊은 정치인이 많나요?


페> 저와 함께 룬드지부 공동대변인을 맡고 있는 Emma Berginger라는 친구가 25세예요. (녹색당은 남녀 공동대변인을 둔다) 현 스웨덴 의회 의원이자 녹색당의 공동대변인인 Gustav Fridolin은 저와 동갑이고요. 녹색당에는 20대와 30대 정치인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예요.


퍼> 그렇군요. 얼마전에 20대 의원들이 점점 더 정당의 리더십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었어요. 미디어에서는 20대라는 사실을 주목하더라고요. 페터는 정치인과 젊다는 것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페>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청년뿐만 아니라 60대 정치인도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스웨덴에 비교적 젊은 의원들이 많다는 점에는 동감해요. 최근에 중앙당 당수로 선출된 Annie Lööf도 20대고, 녹색당 내에도 녹색청소년(Green Youth) 출신의 젊은 의원들이 많죠. 저는 정치에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녹색청소년부터 시작한 사람이라면 12세, 13세부터 정치에 참여하게 돼요. 저희 대변인인 Gustav도 16세에 녹색청소년 대변인이 되었고, 19세에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거든요.


정치입문에 뜻이 있는 스웨덴 청소년들은 각 정당 산하의 청소년조직에 가입하여 정치수업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을 2-3년 밟고 나면 바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이는 보수에 대비하여 업무 시간과 강도가 높아 이직률이 높은 스웨덴 정치에 새 피를 수혈하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고 한다.


퍼> 19세에 국회위원이라니! 정말 놀랍네요. 그런데 Gustav의 경우에는 대학 학업을 마치느라 중간에 공백기간이 있지 않았나요?


페> 맞아요. 그는 첫 4년 임기를 마치고 대학학업을 위해 4년간 쉬었다가, 다시 국회위원이자 녹색당 총 대변인으로 복귀했어요. 그런데 원래 정치인이었다가 잠시 공백기를 가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맨 처음 정치에 발을 들이는 것 보단 어렵지 않아요. 제가 룬드에서 만나 본 모든 정당들은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이 적다고 말하는데, 그건 청년들이 활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활발해 질 수 있는 가능성들이 적기 때문이죠. 많은 정당들은 전국구를 비롯해서 기초 지자체 의회에서 활약하는 직업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약 10년 정도 당원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말해요. 청소년 조직부터 시작한 청년들은 그게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또래들은 공부도 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걸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퍼> 그렇군요. 그 하고 싶은 많은 일 중에서 페테는 정치를 선택한 건데요, 정치인이라는 것이 페터 개인에게 준 변화가 있나요?

 

페> 글쎄요. 저는 여러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정치인을 하고 있는 거라서, 특별히 큰 역할 변화를 느끼진 못해요. 그리고 정치인이라는 역할에 제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도 않고요. 정치인 이전에 난 ‘나’니까요.



6. 문화 충돌과 인종 갈등의 시대를 사는 그

 



 

퍼> 덕분에 오늘 스웨덴의 정치에 대해서 많이 배웠네요. 사실 정치 외에도 스웨덴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막연히 스웨덴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있어요. 이 기회를 빌어 페테에게 물어보고 싶은데요…


페> 얼마든지요.


퍼> 이번 여름에 노르웨이에서 극우민족주의자에 의한 테러와 총기난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잖아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 사건이 스웨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최근에 스웨덴에서 인종차별문제와 반이민정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 노르웨이 총기난사 사건


페> 그 사건으로 스웨덴 전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 사건을 통해서 많은 스웨덴 시민들은 테러가 이슬람 세계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그게 정말 무서운 거죠. 노르웨이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지만 이번 사건은 북유럽내의 서로 다른 문화가 일종의 전쟁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웨덴도 마찬가지예요. 말모에 로젠고드(Rosengård)라는 지역 알지요? 


퍼> 잘 알죠. 예전에 제가 그 쪽에 집을 구하려고 하니까 친구들이 말리던데요? 그런데 제 친구 하나가 거기에 살아서 몇 번 놀러 갔는데, 전 그리 위험한 지 잘 모르겠어요.


스웨덴 제 3의 도시인 말뫼시의 한 지역구로 60년대와 70년대에 이민자들이 스웨덴에 왔을 때 이 지구에 주택을 배정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래 살고 있던 많은 스웨덴인들이 지역을 떠나게 되고, 지금은 이민자와 난민정착자들이 거주민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낮은 취업률과 높은 범죄율, 청소년들의 방화와 기물파손 사건이 언론을 타면서 게토로 인식되고 있다.


페>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치안과 사회불안의 원인이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게 곧 로젠고드가 게토화되는 이유라고 봐요. 그런 말 대신 로젠고드 안과 밖의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사회가 성숙하고 풍성해진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걱정스러운 건, 이런 문화적 충돌과 극우민족주의가 지금 전 유럽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에요.  

 

퍼> 스웨덴에서도 극우민족주의가 커지는 걸 체감하나요?


페>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이 국회 원내에 진출했으니 말 다했죠. 그런 극우주의 정당이 국회에 진출 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2010년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스웨덴 민주당이 총 5.7%의 표를 얻어 원내 진출에 성공하였다. 스웨덴 민주당은 “스웨덴을 스웨덴 사람을 위해”라는 민족주의 슬로건을 내 걸고, 스웨덴의 비교적 관대한 이민과 난민 정책을 비판해 왔다. 작년 총선 후, 필자의 스웨덴 친구들은 스웨덴 민주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늘상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스웨덴 친구들의 이런 반응이 꽤 생경했던 기억이 난다.


퍼> 페터도 정치를 하니까 이들과 직접 일할 기회도 있었겠네요. 페터가 보기엔 어떤가요?

 

페> 스웨덴 민주당과 토론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특히 제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것도 돌려서 말할 때 말이죠. 예를 들면 그들은 “우리는 이민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대신 “우리는 스웨덴 내의 이민자들을 지지하지 않으며, 최선의 이민정책은 이민자와 난민들은 자국에 머물러 있게 하고 스웨덴이 그들을 현지에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에 처한 이란의 활동가에게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정치적으로 보호(asylum)를 받아야 할 그에게, 이란에서 기다려 보라고 말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이들하고 대화하는 게 쉽지 않긴 한데, 그래도 저는 이들과 거리를 두기 보다는 맞장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퍼> 그렇군요. 인종차별과 극우주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스웨덴이 그 동안 보편적인 사회복지의 모델로 주목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복지국가가 어떻게 늘어나는 이민자와 함께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사회적 실험으로서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이민자 통합에 대한 페테의 생각은 어때요?


페> 저는 스웨덴에 오는 모든 이민자가 스웨덴 사회에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90년대와 2000년 초반에 이민자가 급증했을 때 당시 스웨덴 정부는 그들에게 무료로 살 곳을 제공하긴 했지만 더 폭넓은 사회활동을 제공하지는 않았어요. 여기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사람과 택시기사 대부분이 이민자잖아요. 저라면 이들이 출신국가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스웨덴에서 살릴 수 있게 돕겠어요. 이들 개개인이 정착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민자 통합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7. 복지국가의 20대도 불안하다




 

퍼> 페터가 사회에 대해서 아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겠어요. 이제 지금 입고 있는 그 정치인 자켓을 벗고, 그냥 평범한 20대로서 한번 이야기 해보죠. 저는 지금 학생인데, 공부 끝나고 할 일을 찾아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무 것도 정해진 건 없고, 경기도 안 좋고… 이래저래 불안해요. 페터도 이런 고민이 있나요?


페> 왜 없겠어요! 저도 스웨덴의 다른 20대가 겪는 스트레스들을 겪어요. 그 중에 하나가 집 걱정이에요. 지금 당장은 부모님 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지만, 집도 많이 없고 젊은이들이 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은 특히 많지 않아요. 게다가 예전에는 정부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었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우리세대가 65세가 되면 노령연금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해요. 75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도 있고. 


퍼> 그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한국의 20대들은 일찍부터 재테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페> 그렇군요. 요즘은 모든 것들이 너무 빨리 변해요. 저는 원래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 아닌데, 이런 변화들을 보고 있으면 ‘인생의 전략을 세워야 하나, 아니면 계속 내 마음을 따라가야 하나’ 이런 고민이 들곤 해요. 지금 사회에서는 누가 공부를 더 많이 했다고 무조건 직장을 구할 수 있거나 하지 않잖아요.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높은데, 스웨덴도 많은 청년들이 일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제 친구들도 이런 상황에서 사회보장 시스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요.


퍼>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면 어떤 거 같아요?


페> 저희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에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가족에서 최초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셨죠. 스웨덴은 종전 이후에 복지국가의 기틀을 만들었고 70년대에는 자동차와 선박산업이 번창했어요. 제 아버지가 회사에서 일할 당시에는 고등학교 학력만 있으셨는데, 회사에서 공대를 가라고 재정적으로 지원해줘서 학사까지 마치신 거예요. 


퍼> 회사에서 직원의 대학교육을 지원해줬다니 정말 부럽네요.


페> 그런데 이제는 회사가 직원들의 능력계발에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요즘은 고등교육 학위가 한 세 개쯤 있는 사람도 뽑을 수 있다고 말해요. 회사가 지원하지 않아도 이미 회사가 원하는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누구에게도 보장된 미래는 없다는 얘긴데, 그래도 전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해요. 저는 동성애자로서 제 남자친구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거든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스웨덴에서는 성소수자에게 많은 권리가 주어지니까요.


퍼> 커밍아웃 할 때, 어땠나요?


페> 스웨덴도 어린 성소수자 친구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기란 쉽지 않아요. 특히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는요. 저는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말뫼라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께 제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들이 제가 게이임을 이해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지금도 그분들은 제가 게이라는 게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세요. 


퍼> 그렇군요. 또래 친구들에게 커밍아웃 했을 때는요?


페> 또래간에도 어렵긴 마찬가지에요. 고등학교 때 친구 네 명과 성소수자 클럽을 만들었었는데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활동했는데, 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고 함께 행동하는 일을 좋아한 거 같네요. 그러다 보니 정치도 하게 되고.


퍼> 아. 그랬구나. 쉽지 않은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저번에 다큐영화제에서 DJ할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남자친구예요?


페> (수줍게 웃으며) 맞아요. 처음 DJ하는 거라 떨려서 데려왔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서 노래 선곡하는 거 도와줬어요. 그 DJ 소파가 2인용이던데 옆자리를 채워 줄 사람이 있어서 좋더라고요. 처음 하는 디제잉도 재미있었구요. 그 전에는 다큐 상영회 관객으로만 갔었는데. 저희 화요일 마다 종종 갔거든요.  


퍼> 저도 거기 좋아해서 지난 학기부터 종종 출석했었어요. 그 남자친구는 학교에서 만났어요?


페> 아니요.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음악 공유하다가 만났어요. 보통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짝을 인터넷을 통해 만나거든요. 점점 더 인터넷은 스웨덴인들에게 있어서 만남과 연결의 장소되어 가는 거 같아요.


퍼> 그렇군요. 부럽네요. (웃음)



8. 내일은 내일의 일




 

퍼> 자,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페터의 꿈은 뭔가요?


페> 꿈이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은 함께 일하기 보다(work with) 서로 경쟁하려(work against)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척 많아요. 저는 대화를 통해서 많은 사회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믿어요. 자원 쟁탈을 위해서 필요한 건 전쟁이 아니라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퍼> 음… 그런 꿈이 있어서 성권리 활동가, 학생회장, 녹색정치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해왔나 보네요. 혹시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일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페> 물론이죠.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런데 제가 좀 웃긴 사람인 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라서요. (웃음)


앞선 인터뷰 질문에 봇물 터지듯 답변한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간결한 답변을 내놓을 줄이야! 본인도 멋쩍은지 씩 웃는다.


페> 저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제일 좋아해요. 신나서 일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너 이거 해볼래?”라고 제안하고, 저는 또 “한번 해볼까” 하면서 뛰어들죠. 지금의 정치인 활동도 그렇게 시작한 거구요. (웃음) 아, 개인적으로는 다시 창조적인 활동에 시간을 쏟고 싶어요. 피아노를 꽤 오래 쳤어요.  얼마 전에는 사진도 시작했고. 아! 여행도 좋아해요. 우간다에 갔었을 때, 실제로 거기에 가보니까 그 사람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가 좀 계획성이 없는 사람이에요. 답변도 두서없이 했을 텐데, 인터뷰 하느라 진짜 힘들었겠어요.


퍼> 아니에요. 오히려 페터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서 전 더 공감이 가고, 안심되네요. 왜 일까요? (웃음)



나가면서


“스웨덴의 20대 정치인”이라는 얘기에 나와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었다. 선진 정치 문화 속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엘리트 투사? 아니면, 동네 작은 극장의 다큐 상영회에서 디제잉하는 하드코어 히피?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페터는 한없이 가벼웠다. 


가슴 설레는 새로운 모험을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그 설렘을 온전히 알아채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제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정치는 무거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페테를 만나기 전 그에게서 기대했던 것은, 어쩌면 정치라는 것이 심각한 일부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는 정치에 나도 관심이 있고 뭔가 참여하고 싶다’라고 커밍아웃 할 용기가 없었던 나를 위한 기대가 아니었을까.  


뒤늦은 깨달음은 또 있다. 서울 시장 재보궐선거 부재자투표를 놓친 것. 80%를 넘어선 20-30대의 투표율을 보면서, 조용하지만 그러나 결국 기성정치계를 놀라게 한 이 정치운동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아마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부재자투표도, 스웨덴에서 정치를 하는 28살 페테의 선택도, 결국은 “한 번 해볼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것을, 페테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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