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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일연 <삼국유사> - 천년을 내려온 이야기책 살아있는 ‘오늘의 지침서’

by 내오랜꿈 2007.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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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내려온 이야기책 살아있는 ‘오늘의 지침서’
[고전다시읽기] 일연 <삼국유사>

병삼/ 영산대 정치학 교수
출처 : <한겨레> 2005년 06월 30일 


△ ‘동해 용왕의 아들’로 묘사되는 처용은 ‘처용가’라는 향가를 지어 불러 아내를 차지한 역신을 물리친 <삼국유사> 속 처용설화로 널리 알려졌다. 처용무에 쓰이는 ‘처용탈’의 머리에 꽂인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복숭아 나뭇가지는 귀신을 쫓는다.



일연 <삼국유사> 

이제 덥다. 여름에 읽을 만한 고전으론 <삼국유사>만 한 것이 없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원두막에서 호롱불을 돋워가며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이야기책’이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야 사람으로 변하는 호랑이, 여우, 용들을 둘러싼 신묘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테다. 

귀신과 여우들을 부려 다리를 건설한 씩씩한 비형랑, 낭군을 위해 끝내 목숨을 바친 암컷 호랑이의 애절한 사랑,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임금님과 또 그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물길을 파놓은 감은사 이야기, 얼마나 피리를 잘 불었으면 달님도 혹해서 그 자리에 멈추었다는 월명사 이야기 등등. 

역사가 이성의 산물이라면 설화는 감성의 산물일 것이기에, 역사 서술엔 논리가 앞서지만 설화엔 사람들의 원망과 바람이 앞선다. 서기 660년, 김유신의 신라군과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것이 역사라면, 그 뒷면에 아로새겨진 계백의 죽음과 낙화암의 슬픔은 설화의 몫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엄정한 세력의 흐름을 읽지만 설화에서는 안타까움과 꿈을 읽는다. 하나 어느 것이 더 낫고, 덜한 것은 아닐 터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아니무스(과학적 인식)와 아니마(꿈의 상상력)는 같은 값어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공식 위에 우리 고전을 얹어보면,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역사로 읽어야 한다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설화로 읽어야 하리라. 앞의 것이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차분차분한 글 읽기를 통해야 졸가리를 제대로 얻을 수 있다면, 뒤의 것은 호롱불 돋우며 소곤소곤 전해지는 옛 이야기로, 또는 밤을 새며 풀어헤치는 무당의 사설로 읽혀야 옳다. 

<삼국사기>가 빡빡하고 뻣뻣하다면, <삼국유사>는 솔깃하고 나긋하다. 김부식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그것의 서술이었지 그것에 얽힌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상하고 이상한 이야기들은 빼놓고 싣지 않았다. 그러나 일연은 그 빼놓은 이야기들을 주워 담아서 책을 지었다. 그래서 유사(遺事)다. (<삼국유사>란 곧 ‘삼국에 관해 남겨진 이야기들’이란 뜻이다.) 

삼국사기는 역사, 삼국유사는 설화 

또 신라 제22대 지증왕을 두고, 김부식이 “체격은 크고 담력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났다”라고 기술하였던 반면, 일연은 똑같은 인물에 대해 “자지 크기가 한 자 다섯 치(45㎝)나 되어 짝을 찾기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남과 달리 이상한 몸을 가진 지증왕을 묘사하면서 건조하게 ‘큰 체격, 뛰어난 담력’으로 표현할 적엔 그 뒤의 많은 이야기들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한데 일연은 당시 지증왕의 등에서 소곤소곤 전해지던 이야기를 살짝 드러내어 보인다. <삼국유사>의 매력은 이런 천연덕스러움에 있다. 임금님의 ‘거시기’가 그렇게나 거시기 하셨다니! (큭큭큭!) 

<삼국사기>가 태양에 빛바랜 ‘역사’라면, <삼국유사>는 달빛에 물든 ‘설화’다. 과학과 실증이라는 서구식 합리주의의 햇살에 눈이 부셔서 숨을 돌리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번 참엔 <삼국유사>를 머리맡에 두고 쉬엄쉬엄 읽으면서 그 이야기들을 접하면 좋을 것이다. 

신라 제22대 지증왕을 두고
삼국사기는 “체격과 담력이 크다”썼지만
삼국유사는 “거시기가 45cm” 소곤거린다
촐싹거리는 세태에 대한 일연의 비판
한여름 소나기처럼 서늘하고 통쾌하다
 

일연은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역사의 새벽과 국가를 건설하는 초창기에는 신화(신들의 이야기)가 마땅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이미 중국의 삼황오제 설화 속에서 오롯하다. 일연은 바로 이런 ‘이적’이 결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로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아니 <삼국유사>의 첫 번째 편명인 ‘기이’(紀異: 이상한 이야기들에 대한 기록)라는 이름에서 엿보이듯, 그는 ‘신비롭고 이상한 일’을 요즘 사람의 눈으로 이해하여 ‘거짓말·참말’ 하는 식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이상함을 그대로 받아들여 기록하고자 하였다. 

실로 기이 편을 필두로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그리고 효선 편 등으로 구성된 <삼국유사> 전체를 꿰뚫는 저술 방침은 이상한 것을 이상한 것대로 기술하겠다는 의지다. 이상한 세계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사유가 <삼국유사>의 저술 태도다. 요즘으로 치면 ‘팬터지 세계’를 승인하는 자세요, 선가의 어법을 빌자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요,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해도 좋다. 

이에 그의 글쓰기 방식은 잘라내고 쪼개는 분석이 아니라 포괄하고 함축한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필자의 안목으로 해석한, 갇힌 메시지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들 역시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또 나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폭력으로 이룬 삼국 통일의 후유증을 보여주는 ‘만파식적 설화’를 읽으면서 앞으로 남북통일은 더디더라도 평화로운 길을 모색해야겠다는 교훈을 얻는 것도 이런 <삼국유사>의 툭 트인 공간 때문이다. 

일연은 승려였기에 <삼국유사>에는 불교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불교를 정치적으로 옹호하거나 진리를 불교식으로 독점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넉넉하게 다른 종교나 정신들을 인정하고 허용한다. 반면 승려들이 무참히 깨지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실려 있다. 가령 다음 대목을 보자. 

그리스 신화 찾아 헤멜 필요 없다 

신라 신문왕대 나라의 대원로로서 존경받던 승려 경흥이 궁궐에 들어가려고 말을 준비하고 의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때 행색이 초라한 ‘거사’가 지팡이를 짚고 망태기를 진 채, 문 앞에서 쉬고 있었다. 흘깃 보기에도 망태기 안에는 마른고기가 담겨 있었다. 경흥의 제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중 옷을 입은 채로 부정한 물건을 짊어지고 다니다니.” 

거사가 말했다. “양다리 사이에 산 고기도 끼고 다니는 판에 시장에서 파는 마른고기 쯤 짊어지고 다닌다고 흠될게 뭘꼬!” 그러고는 일어나 떠나버렸다. 경흥은 그 말을 듣고 다시는 말을 타지 않았다. (<삼국유사>, ‘경흥우성’) 

통쾌할 손! 늙은 거사의 눈높이여. 여기 “양다리 사이에 낀 고기”란 ‘타고 다니는 말’을 두고 하는 말이니 공부는 젖혀두고 세속에 기웃거리는 수도자(또는 학자들)의 행태를 비난하는 손가락질이다. 하나 어찌 이 손가락질이 신라와 고려시대에 국한하리오. 깊숙한 산길에서조차 굉음을 울리며 치달리는 요즘 승려들의 지프차는 또 다른 “양다리 사이에 낀 고기”가 아닐 것이며, 정책자문 한답시고 이 정부에서는 이 말, 저 정부에서는 저 말을 해대는 학자의 행태는 또 어찌 거사의 손가락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오. 

이렇게 <삼국유사>는 살아 있다. 그 속에 숨쉬는,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따뜻한 눈길과 더불어 시대 변화에 촐싹대며 붙좇는 세태에 대한 차가운 비판정신은 오늘날에도 한여름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시원하면서 또 서늘하다. <삼국유사>는 천년을 내려와 오늘 우리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일연의 인도로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옛 조상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신나고 흐뭇한 일이냐!

옴파로스! <삼국유사>를 읽고나면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이 문득 ‘지구의 배꼽’, 세계의 중심으로 변한다. 평상하고 심드렁했던 이 땅에서의 삶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뿌듯한 감동이 등허리를 감쌀 때, ‘아! 고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느낌을 얻으리라. 그 감격의 세례를 통과하고 나면 신화와 설화를 찾아 저 먼 아테네며, 메소포타미아며, 룩소르를 구태여 헤맬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리라. 


50자 서평 

◇ 손남훈(28·부산대 국문과 석사과정)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는 게 어디 향가 뿐이겠는가. 이미 <삼국유사> 자체가 감동을, 아니 그 이상의 영감을, 우리에게 부어주고 있는 것을.” 

◇ 이완근(49·인천남고등학교 교사) “일연 스님! 1281년 출판된 게 아직 출판되고 있으니 그 원고료 받으시면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문학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당신의 가르침. 내 자식들한테 들려줄 우리 선조의 삶이 담긴 이야기보따리.” 

◇ 노우정(인터넷 영풍문고 독자서평에서) “신화와 전설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소설보다 흥미롭고 긴박한 역사적 사건 전개가 쾌감과 흥취를 준다. 더구나 작가 일연의 개인 감정이 서술돼 살아 있는 역사서를 체험할 수 있다.” 


서평자 추천도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지음. 현암사 펴냄(2005), 8500원. (<삼국유사>를 꼭꼭 씹어 새로 써, 오늘의 독자를 안내) 

<삼국유사>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2002), 9000원(보급판). (젊은 학자의 감각과 넉넉한 한문 실력이 어우러져) 

<삼국유사(2권)> 이재호 옮김. 솔 펴냄(2002), 1만원. (원로 한학자가 번역해 더욱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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