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에겐 '대중들의 공포'를 느끼기 전에 책 두께 자체가 공포다. 그런데 목차를 쭈욱~ 훑어봤을 때, 예전에 나온 책들에서 다룬 논문들이 상당수 중복되어 있는 것 같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2부의 "스피노자, 반오웰:대중들의 공포", "피히테와 내적 경계 :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 관하여", "맑스라는 이름의 쟈코뱅", "부록1 - 푸코와 맑스 : 유명론이라는 쟁점", "부록2 - 파시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맑스주의" 등이 내가 갖고 있는 알튀세르, 발리바르의 이전의 책이나, 90년대 발간되던 계간지 <이론>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들이다. 특히, "맑스라는 이름의 쟈코뱅"은 루이 알튀세르가 죽은 직후 윤소영 교수가 엮은 <루이 알튀세르>에 실려 있는 논문이다.
그렇다면 발표된 지 25년이 지난 논문("스피노자, 반오웰:대중들의 공포")을 비롯하여 20년 가까이 된 논문("맑스라는 이름의 쟈코뱅"-1989, "푸코와 맑스:유명론이라는 쟁점"-1988)들도 들어있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이미 번역되어 출간된 논문이.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전의 글들은 대부분 윤소영 선생의 번역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의 주번역자는 서관모/최원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새롭게 엮어져 나오면서 재번역된 게 아닌가 싶다. 책 제목은 조금은 '선정적'인 것 같다. 스피노자 정치학의 문제만을 따로 다루는 게 아니라면, 부제로 붙은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이 실질적 제목이 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아래 서평은 경향신문에 실린 걸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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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깊이읽기]폭력을 넘어서는 법 ‘시민인륜’ |
출처 :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09월 21일 14:47:57 |
▲ 대중들의 공포…에티엔 발리바르|도서출판 b
아포리아(aporia)는 논리적 궁지를 뜻한다. ‘대중들의 공포’를 읽을 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용어들 가운데 하나가 아포리아이다. 발리바르의 친구이자 스피노자 전문가인 마트롱은 언젠가 발리바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매년 새로운 아포리아를 발견하려 한다. 스피노자의 대중들 개념에는 아포리아가 있다, 민주주의에는 아포리아가 있다, 이런 식으로. 그건 미친 짓이다.” 이 에피소드는 역설적으로 발리바르의 철학하는 핵심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체계적인 통일성과 정합성을 전제하거나 새롭게 구축하려 하지 않고, 통일적인 체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아포리아를 찾아낸다.
아포리아를 찾는 과정은 사유가 어디까지 근본적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도정이다. 먼저 어떤 사유가 닦아놓은 논리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고, 그 논리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막다른 골목의 정체를 확인해야 하며, 또한 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게 된 근본 전제와 가설을 복기해야 한다. 여기에 이를 때 비로소 아포리아 너머에 있는 새로운 사유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대중들의 공포’는 이 고통스럽고 지난한 근본적인 사유의 도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성과물이다.
이 책의 문제 틀은 ‘대중들의 공포’라는 말 속에 녹아 있다. 발리바르가 고민하는 철학의 대상은 계급이 아니라 대중들이다. 이는 경제주의적 계급론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대중들이 역사를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언급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대중들은 과학적인 적합한 인식이 아니라 진리와 허구가 혼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실의 갈등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 틀은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탐구를 함축한다. 여기서 ‘대중(mass)’이 아니라 ‘대중들(masses)’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는 대중들이 단일한 주체(단수)가 아니라 복합적인 양면성(복수)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들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말이 ‘대중들의 공포’이다. 스피노자에서 유래하는 이 용어는 대중들이 느끼는, 그리고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가리킨다. 이는 1차적으로는 민중의 능동성과 진보성을 신화화했던 과거 민중론이 지닌 한계와 유사하게 대중들의 일면적인 봉기성만을 특권화하는 논의에 대한 비판이다. 대중들은 능동적인 만큼 수동적이고, 진보적인 만큼 보수적인 양면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함의는 대중들의 역량이 갖는 잠재적 폭력성에 관한 것이다. 대중들의 힘은 때로 폭력과 구별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공포에 느끼고 이를 제거하려는 대중들은 오히려 대항폭력을 통해 대중들에 대한 가공할 공포를 초래하여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붕괴로 나아갈 수도 있다.
발리바르가 이런 양면적인 긴장을 전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반폭력 정치이다. 반폭력 정치에 대한 사고는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민인륜(civilite) 개념으로 정교해진다.
시민인륜은 ‘시민권’과 ‘사적이고 공적인 윤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결합한 신조어이다. 이 개념은 대중들의 폭력이 동일성(identity)과 결부되어 있으며, 따라서 공동체(국가) 내부에서 증오와 잔혹으로 나아가는 동일성들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에서 해방의 정치나 변혁의 정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
물론 이상의 간략한 정리는 전체적인 문제 틀에 불과하며, 이 책에는 훨씬 풍부한 논의들이 담겨 있다. 그것은 근본적인 사유가 갖는 전복적인 힘을 예증한다. ‘대중들의 공포’는 구태의연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최근 주목 받고 있는 네그리, 푸코, 들뢰즈 등의 철학과 쟁점을 형성하면서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며, 무엇보다 빈곤과 잔혹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정세를 돌파하려는 이론적 실천이다. 이 두툼한 책이 옮긴 이들(최원·서관모)의 오랜 정성과 노력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김정한|서강정치철학연구회 회원
용어 번역에 대하여: '시민인륜'과 '의념'/서관모
저자 서문
수록 논문 출전
1부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인륜
정치의 자율성: 해방
정치의 타율성: 변혁
타율성의 타율성: 시민인륜의 문제
2부 근대성들: 인민, 국가, 혁명
스피노자, 반(反)오웰: 대중들의 공포
인민이 인민이 되게 하는 것 : 루소와 칸트
피히테와 내적 경계 :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 관하여
맑스라는 이름의 자코뱅?
3부 맑스주의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동요
1 관념론의 교대군
2 세계관들
3 붙잡을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
4 정치와 진리
부록1 - 푸코와 맑스 : 유명론이라는 쟁점
부록2 - 파시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맑스주의
4부 또 다른 장면 : 폭력, 경계, 보편성
유럽적 인종주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종주의 : 여전히 보편주의인가?
모호한 동일성들
경계란 무엇인가?
유럽의 경계들
폭력: 이상성과 잔혹
5부 보편적인 것들
보편적인 것들
[역자해제]이론의 전화, 정치의 전화 : 알튀세르에게서 발리바르로/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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