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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Book

<마르크스 평전> - 이론과 현실의 길목에서

by 내오랜꿈 2007.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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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름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미테랑 프랑스 사회당 당수의 경제 브레인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는, 정통 학자 출신과는 약간 상이한 길을 걸었던 사람. 유목주의 운운하는 형태로 들려오는 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들, <인간적인 길>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들은 어느 정도 접하고 있었기에 그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도 없으면서 내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나에게 마르크스 평전이란 게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20년도 더 지난 시절에 이미 마르크스 원전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그의 평전 한 두개쯤은 이미 오래 전에 섭렵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은 나에게 그리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건 아니다. 그러기에 한 달에 한번 꼴로 방문하는 대형서점 안에서 잠시 짬을 내어 머리말과 제일 마지막 7장을 읽고 접었었다. 그리곤 별다른 생각없이 지났는데, 며칠 전 <한겨레신문>에서 손석춘 칼럼을 읽고 기절할 뻔 했다.

 

손석춘씨는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아탈리와  KBS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그의 유토피아 저서 <인간적인 길>을 두고 대담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손석춘씨와 자크 아탈리 간에 논쟁이 오간 모양인데, 그 전말을 보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잠시 그 문제의 문구를 인용해보자.

 

하지만 저는 대담의 끝자락에서 결국 아탈리와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길>에서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제력”을 강조하고 있기에 북핵문제를 물었습니다. 아탈리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정당하게 갖게 되면 문제가 없지만 북핵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통제하면 어렵지 않게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물었습니다.

 

  “아탈리 박사의 저서들을 읽으며 프랑스에서만 살아온 지식인 일반이 지니는 한계를 느꼈는데 오늘 대담을 통해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핵을 가질 정당성이 있는 나라 가 따로 있고 없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나, 북쪽 정권을 붕괴시키는 게 당위라는 생각이 그것인데요.  그런 논리와 제국주의자들의 논리는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유엔 안전보상이사회 국가들이 지닌 핵무기는 정당하다면서 사뭇 결연히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붕괴시킬 권리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있다는 손 박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어 저에게 반문하더군요.

 

  “히틀러를 보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히틀러를 패배시키지 말아야 했나요?”  황당했지만 되물었지요.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히틀러는 다른 나라들을 침략한 전범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미국은 침략 당하지 않았지만 참전했습니다.”

 

방송 녹화 중이었고 사회자의 만류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습니다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아탈리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국제 문제에 미국과 프랑스는 대체로 견해를 같이 한다”고 말을 흐렸을 뿐입니다. (<인터넷 한겨레 www.hani.co.kr> 2006년 11월 6일자 "필진 네트워크"에서 인용)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 그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책일 것이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변화된 현실에서 조금은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려 했다는 의도를 제7장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긋남이 아닌가?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 그놈의 '석학'이란 게 뭔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이 손석춘 칼럼을 읽은 뒤에는 나에게 대체로 우호적인 감정으로 남아 있던 아탈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이럴 땐 내가 경제학 전공자라는 게 후회스럽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탈리라는 이름에 연연해 책을 집어들고 읽지도 않았을 것이고, 세계적 석학 운운하며 그가 한국에 왔다고 호들갑 떠는 언론을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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