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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사람사진

허클베리핀

by 내오랜꿈 2008.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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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출처:<퍼슨웹(http://www.personweb.com)> 2004. 10. 01

안이현 



 

2001년.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이유 없이 거리를 쏘다니던 때였다. 나는 친구와 함께 신촌 어딘가에서 밤새 술을 먹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학 캠퍼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밤새 벤치 위에서 종이 쪼가리를 덮고 잔 우리는 이곳에서 ‘인디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바람에 날린 페스티벌 벽보가 노숙객의 얼굴에 와장창 달라붙거나, 덮고 잤던 종이 쪼가리가 알고 보니 벽보였다는 그런 유치하고 우연한 만남이었다. 어쨌거나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이날이었다.

 

공연은 오후에 시작 예정이었고 우리는 또 다시 신촌을 헤매며 시간을 흘려보냈다.청명한 가을날이었지만 아직 해는 뜨거웠고, 어디에도 우리에게 허락된 그늘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공연 시간보다 조금 일찍 공연장에 자리를 잡았다. 캔 맥주를 홀짝이며 벤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서서히 모여드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고, 갈 곳도 없었고 그래도 무언가 사람들이 그리웠다. 나는 청명한 하늘과 따뜻한 햇살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중충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에는 우리만큼이나 우울해 보이는 밴드들의 시덥잖은 노래들이 차례로 오르내렸다. 사람들과 잡상인의 재잘거림이 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과 묻혀 들렸는데,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공연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맥주를 홀짝이던 친구와 나도 그만 숨을 멈추고 말았다. 무언가에 흡수라도 된 듯 공연장은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가 되었다.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만 무대전원이 꺼지고 앰프가 나간 것이다. 갑자기 빵 봉지에 담겨진 것 같은 밀봉 상태의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 때의 이상한 느낌을 기억한다.술을 먹다가 머리가 창백해지는 어떤 순간처럼.

 

“다시 갈게요.” 밴드는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제목은 <불안한 영혼>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여리고 폭력적인 기타 음이 깨끗한 가을 하늘로 날아갔다. 그들은 허클베리 핀이었다.


그 후 허클베리 핀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이듬 해 홍대에 있는 어느 작은 클럽에서였다. 당시 나는 백수생활을 마감하고 이름도 모르던 영세한 라디오 방송국을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야말로 영세한 프로그램과 매일 매일 씨름을 하고 있었다.그때 나의 유일한 희망은 Made In Korea, 일명 한국 인디음악 전문방송이었다. 천대받고 있는 이 땅의 음악과 뮤지션들을 재평가하자는 기획이었다. 때가 되면 미디어에선 ‘한국 대중음악의 대안이자 미래’라고 메아리치는 바로 그 인디음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작 미디어에서는 이들의 음악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한다’ 하는 음악들을 닥치는 대로 구해 들었고 휴일에는 홍대에 있는 라이브 클럽을 순례하며 기획안의 빈칸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필요에 의해 시민단체를 만났고, 어느 이름 없는 음악평론가의 도움도 받았다. 내 인생에 일을 한 것은, 그것도 수개월 동안 그럴듯한 일을 꾸민 것은 이 때 뿐이었다.

 

허클베리 핀을 다시 만난 것이 방송국을 퇴직한 뒤였는지, 그 전 일인 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봄 개편에서 Made In Korea 기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에도 나는 쓸쓸한 클럽들을 돌아다니곤 했다.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들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중간에 짧은 말을 몇 마디 했는데 “녹음이 끝났는데, 앨범이 늦어지고 있다”는 보컬 이기용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그 앨범이 이제야 발매가 되었다.



 

이 인터뷰는 세계일보와 퍼슨웹이 공동으로 기획한 <대담한 문화읽기>라는 기획 기사 중의 일부이다. 세계일보 지면에는 언론의 ‘틀에 맞춘’ 인터뷰 글이 이미 게재되었다. 그럼에도 인디음악이 우리 대중음악의 미래이자 대안이라는 ‘미디어스런’메아리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이 말이 틀리거나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제스쳐 마저 요새는 뜸한 것이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글이 이제 지겹고, 불편하다. 개인적인 실패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직도 칙칙한 라이브 클럽을 돌아다니는 나에 대한 지겨움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인터뷰 글이 터무니없게 늦어졌다.

 

이 인터뷰는 실패한 인터뷰이다. 중구난방이고 인터뷰 과정에서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인터뷰 시간은 대략 2시간이었고, 그 중 한 시간은 이들의 과거를 캐는데 소모했다. 그 내용은 지면으로 싣지 않기로 한다. 장소는 홍대의 어느 지하 합주실이었다.

 


이기용 - 33세.

허클베리핀의 브레인. 25살에 음악에 빠짐. 외삼촌이 밤업소에서 연주하는 뮤지션. 외삼촌의 영향을 받았음. 매달 1만원씩 납부하는 사회당 진성당원. 아나키스트. 전업 뮤지션.솔로 프로젝트 그룹 스왈로우 멤버. 

 



 

이소영 - 28세.

2집 때 보컬 오디션으로 밴드 보컬을 맡음. 한 때 학교 기숙사 가요제 등에서 알아주는 가수였음. 전업 뮤지션.

 

장혁조 - 29세.

밴드 ‘한음파’ 베이시스트 활동. 너바나, 펄잼을 듣고 자란 세대. 프로젝트 그룹 ‘스왈로우’에서 피아노 연주. 영어 통역 일 아르바이트.

 

김윤태 - 34세.

밴드 ‘이발쇼 포르노쑈’, ‘허벅지밴드’ 드러머 활동. 이곳에서 ‘더블베이스로 발랐’음. 성격과 머릿결이 타고난 재능이라고 함. 박정희를 매우 싫어함. 대학 강사로 부업.


 

허클베리핀은 리더 이기용을 중심으로 199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음악애호가 사이에서는 명반 반열에 오른 1집 ‘18일의 수요일’(1998)과 2집 ‘나를 닮은 사내’(2001)를 발매했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2000) OST에도 참여했다. 초기 멤버는 리더인 이기용 씨 혼자고 현재 멤버는 2집부터 밴드에 참여했다.

 

퍼슨웹 - 오래 전에 녹음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앨범이 늦어졌어요?

도장을 찍을 뻔한 기획사만 두 번이나 있었어요. 언제 발매하고 언제 이렇게 하자 얘기 다 끝내놓고 그걸 뒤집었어요. 앨범 다 만들어 놓고 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몇 달 날라 가고 시간적으로도 손해를 많이 봤어요. 


퍼슨웹 - 기획사에서는 왜 그런 거죠?

뭐 뻔한 거죠. 안 팔릴 거 같으니까. 그런 거겠죠. 

                                 

퍼슨웹 - 그럼 왜 밴드에 컨택하고 그런 거죠?

그러니까, 음악도 다 들어보고, 계약까지 한 건데. 황당한 거죠.

 

퍼슨웹 - 메이저 기획사였나요?

메이저 기획사 같은 경우는 이런 경우도 있어요. 플럭서스 같은 경우는 음악을 들어보더니 보컬을 바꾸래요. 보컬이 약하다는 거예요. 이 부분에서는 팍 살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음악 하던 사람이야?

 

옛날에 부활에서 베이스 치던 사람이래. 그나마 거기가 메이저 중에서 록밴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데였어요. 그러니까 너무 기분이 나쁜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해서 만든 음반인데, 이건 좀 심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퍼슨웹 - 그래서 자체 레이블을 만들기로 한 건가요?

네. 이럴 바에야 우리끼리 하자. 그렇게 된 거죠. 

 

 

퍼슨웹 - 레이블 설립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다행히 저희가 2001년도에 2집 녹음 들어가면 3집까지 녹음을 해 두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어요. 왜 그랬냐면, 그 때만 하더라도 녹음하는데 1천만원 정도가 들었거든요. 그래서3집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돈을 빌려서 미리 녹음을 해 둔거죠. 

 

퍼슨웹 - 그래서 샤Sha 레이블을 만들게 된 거군요. 샤에서는 어떤 앨범을 발매했죠?

허클베리 핀 3집이랑 1집 재발매. 그리고 스왈로우 1집이요.

 

퍼슨웹 - 인디 씬에 자체 레이블이 많이 있나요?

요즘 홈레코딩(Honme recording)이 보급되면서 음반을 내기 쉬워졌잖아요. 그래서 사업자 등록증을 내진 않았지만 많이 있을 거예요.

음반 하나 내고, 없어지는 데도 많아요. 

 

 

퍼슨웹 - 자체 레이블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네. 지금까지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퍼슨웹 - 쌈지에서 2집 나왔을 때보다 지금 3집이 매체에서도 그렇고, 홍보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특별한 전략이 있었나요?

너무 열심히들 했어요. 보도자료 만들어서 신문사, 월간지, 방송사 이런데 홍보하고. 그러니까 기획사나 매니저들이 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를 다 했어요. 

3시 정도 출근을 해서 10시 11시까지 매일 했어요. 뭐가 좋으냐면, 일단 마음이 편하고.기획사랑 했다면 뭐 안 되네, 불만 쌓이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끼리 하고 하니까. 윤태 씨가 앨범 디자인하고, 소영이가 영상 만들고, 혁조가 녹음 도와주고. 

 

퍼슨웹 - 이 전에는 이런 시스템을 생각을 안 했나요?

왜 안 했겠어요. 레이블 만드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저희는 미리 녹을 해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퍼슨웹 - 이런 자체 레이블 시스템이 인디 밴드의 어떤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 우리처럼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없을 거예요. 자체 레이블을 가졌어도 홍보는 다른 데서 외주하고 그래요.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경우도 자체 넘(Numb) 레이블이 있지만 홍보나 유통은 다른 데서 하고 그래요.

 

외국에 로컬 씬들을 보면 이런 시스템은 흔하게 찾아 볼 수 있어요.

 

최근에 꽤 많이 생겼어요. 상황이 더 좋아지려면 녹음 비용이 적게 드는 홈레코딩 시스템이 더 보급되어야 해요. 음반 제작 과정과 비용이 단순화되고 저렴해져야 된다는 거죠.저희가 3집 앨범 내는 데 1300만원이 들었어요. 저희 같은 인디 밴드에게는 엄청난 돈이거든요. 3천장 팔아야 겨우 제작비가 나오는 거예요. 생계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5천장이 나가야 해요. 이 제작 과정과 비용을 더 줄여야 해요.

 

퍼슨웹 - 자체 레이블 효과를 좀 봤나요. 앨범은 잘 나가요 있어요?

네. 지금 만족해요.



 

인터뷰 전, 편집장이 ‘인디 밴드’에 대한 정체를 듣고 오라는 지령(?)을 내렸다.사실 인디 밴드에 대한 정체와 경계는 아무리 들어도 뭐가 뭔지 도대체 어려운 질문이었다. 묻고 싶지 않았으나, 이들에게 묻기로 했다. 그러나 인디의 정체를 밝히는 질문은 엉뚱하게도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밴드의 생계유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퍼슨웹 - 생계는 어떻게 해결 하세요?

저는 시각디자인 학과 시간 강사 일을 하고 있어요. 비정규직.

구청에서 영어 통역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요.

저하고 소영이는 전업 뮤지션이고요. 음악 하는데 회의가 들 때가, 우선 나이가 있고 주의의 시선들 그리고 돈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회의가 들고 1집 내고 그만두고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막상 음악도 하고 돈도 벌려면, 정규직은 택할 수 없는 거예요. 왜냐면 모든 에너지를 음악에 쏟아 부어도 살아남기 힘든 이런 각박한 현실에, 정규직은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저도 직장 생활에 실패했어요. 녹음 걸리고 하면 어려워요.

일에서 소외가 안 되는 걸 바라는 거죠. 일과 내가 분리가 되는 그런 거.

하고 싶은 음악만 하는데 돈이 되면 얼마나 좋아.

행복한 거지.

 


 

이들의 ‘각박한 현실’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원래는 도대체 인디가 뭐냐고 물으려 했으나, 단지 음악이 좋아 ‘각박한 현실’을 자초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인디라는 말은 95년부터 나왔는데요. 그냥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으면 그게 인디예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데, 여러 가지 상황 논리 때문에 매몰 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거죠.자신의 음악 본연에 대해 충실할 수 있는 거.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인디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버에서도 인디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디라고 해서 꼭 뭐에 반하고 꼭 이렇게 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이기용). 이런 대답이면 충분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퍼슨웹 - 예전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인디 씬의 상황이 좋아 졌나요?

공연 환경. 다양한 음악들. 실력 있는 밴드들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생겼어요.

홍보도 좀 쉬워졌고. 인터넷도 활성화됐고. 매체에 계신 분들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니더라고요.

 

퍼슨웹 - 매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까 말한 플럭서스 같은 데도 소위 록음악을 이해하는 데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보컬이 확 치고 나와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야기한 거예요. 좋은 음악의 기준을 정해놓고 생각하는 거죠. 방송에 있는 분들도 ‘인디 밴드야. 알겠네.’ 이런 식으로 선입견으로 접고 가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바뀌어야죠.

 

 음악 하는 사람 중에도 스틱을 어떻게 잡고 드럼을 쳐야 하느니, 양쪽 무게가 같아야 하느니, 스틱에 금이 가면 안 되느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드럼은 이렇게 쳐야 되느니. 경직 돼 있다는 거예요. 획일화 시키고. 그런 사람들이 위에 올라가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박정희가 문제라니까. (일동 웃음)

 

 

퍼슨웹 - 자본 논리 외에도 그런 편견이 있는 거네요.

생각이 유연하지 못한 거예요. 그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거죠.

정말 우스운 게 일반사람들이 음악에 주입되는 상황이거든요. ‘꿍짝꿍짝’ 이런 거만 틀어대니까 사람들은 ‘음악은 이런 건가 보다.’ 이런 상황이 되니까. 우리 같은 음악을 들이대면 ‘이건 뭐야’ 이상해져요. (일동 웃음)

 

정말 세뇌예요.

 

퍼슨웹 -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천박한 대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월세방에 이렇게 누워있으면 공감이 돼는 이야기인데. 중요한 건 천박한 대중을 만드는 게 뭐냐 이거죠. 허클베리 핀의 노래도 자연스런 감성의 표출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없는 거예요. 일반 대중이 바보 같은 음악에 길들여가지고. 이것도 폭력이거든요. 정치적인 것만 그런 게 아니고 문화적인 것. 일상 이런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박정희가 문제야. 전두환 이런.

 

퍼슨웹 - 음반 시장이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는데, 인디 밴드들은 어떤가요?

저희 같은 경우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항상 불황이었죠. 지금 음반 시장의 불황은 메이저의 불황이지 저희의 불황은 아니에요. 그리고 MP3나 스트리밍 같은 새로운 음악서비스들이 지금의 음반 시장 불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희는 이런 새로운 서비스가 자본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비합리적인 음악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음반 시장이 1백만 장, 2백만 장 나가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이제. 그러니까 수익모델을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상황이 소규모 공연을 중요시하는 저희 같은 인디 밴드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으면 해요. 

 

퍼슨웹 - 이번 앨범 제작에서 문화콘텐츠진흥원 지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인디 레이블 지원 사업은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샘물을 부어준 느낌이었어요. 지원을 안 받았다면 앨범을 못 냈을지도 몰라요.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한류’ 수출 정책에서 일부를 떼어준 거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게 어디예요.        

퍼슨웹 - 한류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인디 씬처럼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리라 생각하는데요. 어떤가요?

당연하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오픈 된 사람들이 많아야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음악 듣겠어요? 그런데 들어가려면 십대부터 얼마나 공부하겠어요. 또 고시 공부는. 클래식이나 듣고. (일동 웃음)

유럽 같은 경우는 영미문화에 방어하는 차원에서도 뮤지션들에게 지원을 많이 한다고 해요.

우스운 것은 황보령 밴드라는 우리나라 뮤지션은 일본에서 뮤지션 지원금을 받고 있어요.


니클 벡이나 에블릴 라빈 같은 캐나다 뮤지션들도 국가에서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주고 있어요. 걔네들은 진짜로 캐나다 음악 쿼터제도 있어요. 그래서 좋은 가수들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이제는 보호가 아니라 문화산업을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내 기억에 허클베리 핀은 톰 소여의 친구이고 말썽꾸러기 개구쟁이다. 어린 시절에TV 만화로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우울하고 분노에 찬 이들의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완전히 틀린 생각에서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계급문학으로 읽혀진다고 한다. 나는 이들을 만나기 전에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됐다. 허클베리 핀은 흑인 노예의 친구고 절름발이의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음악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퍼슨웹 - 왜 밴드 이름이 허클베리 핀이죠?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데.

걔(허클베리 핀)도 나름대로 암울해요. 몰라서 그렇지.(일동 웃음) 톰 소여는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고 허클베리 핀은 아니잖아요. 뭐 그런거죠.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다크 에이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일동 웃음 ) 

 

퍼슨웹 - 이번 앨범 제목이 ‘올랭피오의 별’이예요. 빅토르 위고의 시 ‘올랭피오의 슬픔’에서 차용한 거라고 했는데, 시를 읽어보니까 무지하게 길더라고요.

예, 길어요. 한 번 읽으면 배고파요. 

 

퍼슨웹 - 위고의 시도 그렇고 허클베리 핀의 음악은 상실감, 분노, 우울함....

 

                                                                                               

이 질문은 끝나기도 전에 밴드 전원이 분노, 우울함이란 말에 자동적으로 이구동성으로 합창을 했다. 밴드 스스로도 분노와 우울함을 노래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퍼슨웹 - 저는 허클베리 핀의 음악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과격하게 표출되었을 때는 분노가 되고, 좀 더 자조적일 때는 스왈로우 같은 침울함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 궁금한 것은 노래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절름발이’도 그렇고 무언가에 대한 부채의식이 느껴지는데요?

빚은 별로 없는데. (웃음)        

 

 

퍼슨웹 - 가사를 보면 막연하게 이미지적으로만 드러날 때가 많아요. 무언가 때문에 사회에 대해 냉소하고 자학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기용 씨의 개인적인 어떤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는 건가요?

사실 삐딱해요. 불만이 많죠. 그렇다고 제가 진지한 운동권이었던 건 아니고요. 네추럴 본 빨갱이 기질이 좀 있어요.

기용 씨는 운동권은 아닌데, 빨갱이예요. 사회당원. (웃음)

 

퍼슨웹 - 진성당원이세요?

예. 없는 살림에 1만원 씩 내요. 80년대 제가 대학을 다닌 20대라고 하더라도 앞에 나가서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술집에서 빈정대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당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가장 급진적인 거라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활동은 안 해요. 그렇게 따지면 제가 제일 마음에 든 것은 1920년대 아나키스트예요. 말하자면 일종의 입장 같은 거죠. 진지한 사회당원으로 보진 마세요.

 

나는 말로만 듣던 사회당원을 처음 만났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 대화도 주로 허클베리 핀의 리더이자 창작자인 이기용 씨에 대한 질문이었다.

 

퍼슨웹 - 시집을 1천 2백 권이나 소장하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예. 음반보다 시집이 많아요.

변태죠. (일동 웃음)

 

퍼슨웹 - 문학청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도 쓰시나요?

아니요. 안 해요. 그냥 시를 읽는 게 편할 뿐이에요.

      

퍼슨웹 - 음악이 아니라 글쓰기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음악은 정말 섬세한 거예요. 표출하는 방식들이 섬세한 것들, 세밀한 무늬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말은 좀 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해도 정확히 전달이 안 되잖아요. 음악은 언어화 될 수 없는 미세한 것들로 이루어진 거예요.

 

퍼슨웹 -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시적인 가사다, 문학청년의 노래다’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울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저는 1집에 실린 ‘huckleberry finn'을 가장 좋아해요. ‘먼 데 앞동산에 휘어진 나무, 휘어진 나무를 돌아~’

 


 

‘내게 찾아온 서늘한 바람, 바람을 등지고 가면’ 그가 하는 노래를 나도 따라 불렀다. 이후에도 여러 소탈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술을 좋아하고, 후진 가요가 나오는 술집에서는 술을 안 마신다. 노래가 후지면 왠지 안주도 맛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그 자잘한 내용과 느낌들을 기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인터뷰는 끝났다. 세계일보에 실릴 인터뷰 기사를 서둘러 마감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인터뷰 기사를 쓰지 못했다. 무언가 할 말을 하지 못했거나, 듣지 못한 기분이었다. 인터뷰가 막히면 공연장을 찾았다. 이들의 공연을 보며 한참을 생각해도 그게 무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이들에 대한 물음인지, 나에 대한 물음인지 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절름발이가 되었을까. 절름발이의 분노와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없는 대로 인터뷰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다시 취직을 했다. 비정규직이다. 그간 직장을 몇 군데 다녔으나, 사회생활이 맞지 않거나, 싫었다. 우연찮게도 허클베리 핀은 나의 취업 문제와 인연을 맺어 왔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거리를 헤매던 한량이었고, 이들이 음반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계획하던 일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들이 오랜만에 음반을 냈고, 나도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에 나는 묘한 동료의식을 느낀다. 말하자면 절름발이 정서라고 해야 할까. 인터뷰에서 해답을 듣지 못한 그 무엇은 이런 동료의식이었을까. 그들에게서 그런 동질감을 찾고 싶었던 걸까.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전에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허클베리 핀과 흑인 노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절름발이 그 살인마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나는 도서관 같은 곳에서 소설책을 읽으며 키득키득 웃고 있을지 모른다. ‘huckleberry finn'의 음악을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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