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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by 내오랜꿈 2008.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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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 봉준호의 추억


출처:<퍼슨웹(http://www.personweb.com)> 2003. 05. 31

첸/mailto:hicnunc@paran.com


1.  <살인의 추억> , 어떻게 봤나요

화성 연쇄 살인범 찾기와 <촛불 시위>

<여러 겹>인 관객들, 수용의 세대론?

 

2.  당신은 어디 있/었/어요

<부천 성고문 사건> VS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

동원되다 하나씩 죽었다.

<폭력의 나날>

<우리 안의 파시즘>?

 

3.  어떻게 말할 건가요

   재밌는 <80년대>

   <개인들>이 말한다면



1. <살인의 추억> , 어떻게 봤나요

 

화성 연쇄 살인범 찾기와 <촛불 시위>


대단한 텍스트가 만들어졌다 했다. 4백5십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이 영화를 누구든 보지 않고 못 배기고, 본 뒤엔<미치도록> 영화에 대해 말하지 않고 못 배기게 되었다 했다.비평가와 일반의 상찬을 함께 받기로는 이후 처음이라고도 했다.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자 영화의 모든 것이 관심거리가 되었다. <살인의 추억> 홈페이지(http://www.memoriesofmurder.co.kr)에는 <진범>을 추리하는 관객들의 상상력 넘치는 글들이 넘쳐나고,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한다. 


기발한 유머, 머리를 쓰게 만드는 추리, 강간과 시체에 관련된 엽기 코드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매끈하게 직조된(well-made) 플롯,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어떤 영화나 소설이 성공하기 위한 일반적 필요요건들이다. 그러나 다양한 계층에 속한 여러 성향의 영화 관객들을 한 번에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텍스트의 결은 이런 일반적인 요소보다 훨씬 더 두터울 것이다. 

무엇이 영화를 <여러 겹>으로 만들고 있는 걸까.


[봉준호 감독] 남자 고등학생들이 재밌게 본다는데 저도 그게 이상하더라구요. 영화가 우충충하고 옛날 것들만 나오잖아요.영화사 기획실 직원에게 물었더니, 고등학생들 의견을 모니터 해보면 걔들이 <분노>에 쉽게 빠져든다고 하더라고요. <분하다! 저 나쁜 범인 개새X를 잡아야 된다.> 


관객들이 범인 추리하기에 열 올리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영화 후반부에서 형사들의 절실한 연기가 절실하게 관객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극히 시의적인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런 반응은 여러 겹인 관객들 중 20대 초~10대 후반 남성관객들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봉준호 감독] 영활 보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분노>를 느낀다고 하데요. <저런 나쁜 새끼를 왜 못 잡냐? 우리가 나서자...> 예를 들어 작년부터 인터넷에서 그런 체험들이 많잖아요.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라든가, <붉은 악마>라든가. 뭔 일이 있을 때 인터넷에서 능동적으로 모이고 일을 하는 벌이는 말이죠. 아마 화성 사건도 실제 사건이다 보니까...


그들의 반응은 <촛불시위>와 관계있었다. 부녀자들이 잇달아 강간당하고 살해된다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킬만하다. 그러나 그 <분노>할 소재는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마련된 것이다. 1주기를 맞은 <미선이 효순이> 사건도 지극히 한국적이며 동시에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사건이다. 그보다 더한 <범죄>로 남한에 사는 사람들이 살해당해왔고, 한국전쟁 때는 이라크에서 그랬던 것보다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미군의 무기로 학살당했다. 미군이 주둔하는 이상 앞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그러나 2002년이 다른 해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될만한 것은,그 <분노>가 매우 새로운 방법에 의해 폭발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여태 없었다. 자발적으로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지고 게시판을 통해 넷망에서 <분노>는 그야말로 삽시간에 번져나간다. 어느 순간 넷망의 <시민들>은 광화문 거리를 메우는 실재하는 군중이 되어, 세상을 움직이고 바꾸려 시도한다. <미선이 효순이> 일에서 보듯 그렇게 군중을 움직이는 힘은 매우 <단순하고 강렬하게>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다. (*주)


그 젊은 관객들의 반응이란 묻는 자에게도 의외였다. 나는 거의 <분노>를 못 느꼈으며 감독이 영화에 섬세하게 장치한 <80년대적인 것>을 어떻게 20대 관객들이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다분히 세대론적인 흥미와 의아함을 동시에 가졌었기 때문이다. 

8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그 시대 일상의 분위기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처럼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순이의 00학번 여자친구는 그냥 송강호가 너무 재밌다고 했단다. 99학번 선이는 <등화관제가 왜 80년대의 상징인지> 물으며 <등화 燈火가 한자어냐>는 질문을 곁들였다. 그러자 98학번이라 이미 <단순하고도 강렬한 분노>에 빠지기에는 나이가 좀 많다고 할 수 있는 창이는 문제를 느끼고 퍼슨웹 회원용 게시판에서 이렇게 적절히 지적한 바 있다.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뭔가 핀트가 어긋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꼬맹이였기 때문에 추억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80년대에 대한 옛 기억은 희화화의 대상으로써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더 강조되어 각인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이 생긴다는 거죠.”


그랬다. <분노>하지도 못했지만 관객들이 웃는 대목에서 별로 웃음도 나지 않았다. <무모증> 환자를 찾아다닌다든가, 사람을 발로 짓밟기 위해 워커에 봉지를 덧쓰는 등등의 어처구니없는 형사들의 행태는 <희화(戱畵)>이긴 했지만, 지나가버렸어도 <웃음거리>는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데에는 분명 <세대론>이 껴들만하지 않은가.


봉준호 감독] 사실 80년대에 집착하고 그런 것은 우리들만의 감각일 수 있어요. 논자들이나 평론가들이나 나도 인터뷰를 하다보면 그 이야기가 꼭 나오지만요.



<여러 겹>인 관객들, 수용의 세대론?



2.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부천 성고문 사건> vs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


 80년대를 통과하고 그 시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본> 또는 <생각해온> <80년대적인 것>과 그의 것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대조해보고 싶어진다. 그것은 한편 아직도 가슴 속에 남은 20대의 불도장을 어루만져 보는 일이며, 다른 한편 <현실>의 요청을 꽤 유치한 패거리의식이나 세대의식으로 바꿔놓는 정신의 작업일 수도 있다. <386>세대는 당분간 더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도 그랬다. 더구나 그는 나처럼 <88학번>이라 했다. 영화에는 1980년대의 <정치사>를 기억하게 하는 신문 기사들과 뉴스 화면들, 그리고 당시의 <일상사>를 재현하기 위한 문화적 아이콘들이 섬세하게 <삽입>되어있다.


[봉준호 감독] 일상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이 분리될 수 없다고 봐요.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는 자료 속에만 있는 시대이지만 80년대는 자료도 있으면서 내가 직접 민감하게 살았던 시대니까<일상>과 <거시>는 다 뒤섞여버려요. (......) 


옛날 신문 본 적 있어요? 어떤 한 사건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상들의 모자이크죠. 실제로 ‘86 아시안 게임 개막'이라는 큰 기사 밑에 바로 ‘화성에서 세 번째 시체 발견'이 병치되어서 나오죠. 그걸 한 눈에 보면 그것 자체가 영화의 톤하고도 비슷한 거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을 통해 봉준호 감독도 <박하사탕>의 감독이나 문부식 씨처럼 <80년대적인 것>에 대한 유력한 해석자가 되었다.


그런데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왜 <연쇄살인사건>을 통해서 해야 했는지? 사실 단언컨대 가공할 화성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별로 안 중요했다. 다른 더 중요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강력계 형사들조차 살인사건을 버려두고 시위 대학생들을 쫓아 다녔듯, 변태성욕자(?)가 저지른 듯한 개인적인(?) 엽기 범죄보다, 군과 경찰, 즉 정권이 <노동자ㆍ민중>과 학생을 상대로 저지르는 집단적 범죄가 더 중요했다. 그들이 그들을 <백주대낮에> 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가진 느낌밖에 가진 게 없었지. 물론 그때도 나중에 크면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지만 이걸 영화화 하겠다 하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었고. 그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제 고2 때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진데, <야, 한 동네에서 계속 죽냐? 무섭다. 이 정도였지 우리의 기억에서 다 잊혀졌잖아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86년은 그야말로 또다른 죽음의 해가 아니었나. 그해에 송철순 이경환 김성수 김세진 이재호 이동수 박혜정 등이 의문사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형사 문귀동은 86년 6월에 여대생 권인숙을 강간했다. <5.3 인천사건>에 연루된 좌익학생을 찾아낸다는 수사를 명분으로, 화성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한 시간 내로 나타날 <부천경찰서>에서. 어이없게도 대한민국 정부기관은 사건을 폭로한 측을 오히려 비난했다. 성(性)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한다며. <살인의 추억>이 사건을 80년대의 <성-정치>로 재해석했다면, 부천서 사건이야말로 당대인들에게 각인된 <성-정치>의 징표였다.



동원되다 하나씩 죽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또는 <추억된> <80년대적인 것>에 대해서, 또 그 <영화적> 처리의 적절함에 대해서 사실 봉준호 감독은 여러 차례 질문을 받았고, 여러 차례 비슷하고도 다른 방식으로 답했다. 그날 인터뷰 자리에서도 감독은 자신의 <해석>을<변주 變奏>했다.


[봉준호 감독] 제일 핵심적인 시대의 이미지는 <동원>이예요.한복 입은 여고생들, 시위진압 전경들도 결국 <동원>된 거고,민방위 훈련을 중요하게 쓴 거도 그것 때문이에요. 등화관제는 영화적ㆍ시각적으로 중요했죠. <빛과 어둠>. 훈련이 어둠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거니까 영화적이잖아요.


80년대 모티프 중에서 등화관제가 나한테는 중요했고 그 속에서 여중생이 죽어가는 것부터 모션이 떠올랐어요. 여중생 피살사건 경우 실제 '민방위 날'에 발생했어요. 어둠 속에서 여중생이 죽어갔다는 것.


행사에 동원된 여고생들도 그랬겠지만 국가가 걔네들을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국민, 여고생까지 뭘 해야한다,이런 상태였고 모든 것이 그랬던 것 같아요. 중ㆍ고등학교 때 맨날 전국체전이니 아시안게임이니 뭐니 불려나가서 청소하고 줄서서 그런 것하고 그랬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데.


<떼거지로 동원되어 몰려다니는 동안 하나씩 죽는다>, 그러니까 감독의 머릿속에는 <전체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대립(혹은 통일?)>의 이미지가 있다. 사회는 대단히 전체주의적이며 폭력적 규율로 유지되는데, 문제의 사건은 극히 개인적인 <변태적 취향>에 근거한 <성>범죄이자 일탈이다. 


봉준호의 말대로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인간이 <개떼처럼> 타의로 동원되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도 86년과 88년의 국제 스포츠 대회가 그랬다. 아마 전두환에게는 <국민>들이 모두 자기 사단 병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운동권이 쓰던 은어 중 <빌한다, 모빌한다mobilize>는 말을 기억하시는지? 군사 정권뿐만 아니라 운동권도 사람들을 <동원>했다. 시위ㆍ집회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필요했고,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곧 정권에 맞서는 대항이 <도덕적>이라는 점을 보증해주는 것이었다.


[봉준호 감독] <강제성>은 없었지만 꼬시기는 했죠. (웃음) <얘, 나랑 같이 어디 가지 않을래?> <너, 롯데백화점 가봤니?> 하면서. 종로 3가에 많이 나가서 모였죠.



<폭력의 나날>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차츰 짜증스러워졌다. 내가 영화에서 본 <80년대적인 것>은 <일상적 폭력>, 또는 <폭력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사정없이, 그리고 너무 쉽게 서로를 때린다. 형사가 피의자와 같이 한 그릇에서 자장면을 먹는다. 그러다 문득 형사가 피의자를 매몰차게 구타한다. 동료 형사들은 자기들끼리 때린다. 같이 술 먹다가 수사하다가.


나를 가르친 80년대의 중ㆍ고등학교 선생들 중 몇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폭력을 행사했다. 그 중에서도 중2 때 담임에게 <엎드려 뻗혀> 자세로 각목으로 맞은 열 몇 대, 고2 때 자습 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맞은 석 대의 뺨따귀는 가해자들의 얼굴과 더불어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 몇 번 이외에도 선생들에게 많이 맞은 내가,자잘하게 얻어맞은 일들을 도무지 기억도 못 하고 맞을 때도 폭력이라 느끼지 못했다는 데 있다. 80년대에 우리는 학교에서뿐 아니라, 술집ㆍ군대ㆍ경찰서ㆍ검찰청에서 너무 자주, 또 많이 맞지(때리지) 않았나? 원래 인간이란 그렇게 많이 서로 맞고 때리는 건가?

 

영화의 인물들도 계속 서로 치고 받는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통에 쉼 없이 가해지는 생각 없는 손길들은 마치 내 머리통을 내리쳤던 선생이나 고참들의 주먹인 것 같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의자>들에게 날아든 형사들의 발길은 89년 어느 가을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당한 백골단의 옆차기를 기억나게 하였다. 그런 식으로 나는 영화에 <동일화>되어갔다.

영화 후반부에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뉴스를 배경으로 하여 대학생들과 형사들이 싸우고, 와중에 늘 맞던 백광호가 못 박힌 각목으로 형사를 쳐 복수한다. 영화를 보다 나도 그 폭력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 같다. 거기서는 마음이 불편하기는커녕,통쾌ㆍ후련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우리는 그런 걸 <대항폭력>이라 불렀던 것 같다.



<우리 안의 파시즘?>


문제는 저 <더럽게 나빴던 80년대>를 회고ㆍ성찰할 때, <우리>조차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 반성을 상대적인 데가 아니라, <절대적인 반성> 속에 포함시켜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폭력>이나 <동원>도 결국 저들의 그것과 동전의 뒷면에 있는 것이었고 우리 또한 결국 <파시즘적>이었다...


[봉준호 감독] 그래요? 나는 우리 과가 리버럴해서 그런지 별로 그런 것 못 느꼈었는데. 시위할 때 문화나 행태 같은 것은 그런 게 좀 있긴 했죠. 교문싸움하면 <전투조>라고 그래서 각목이랑 <그거>(^^) 하는 애들이 쫙쫙 줄 지어 나가고 끝나고 돌아오면 마치 출정 나갔던 군인들 돌아올 때처럼 양쪽에서 줄 서서 박수치고 그랬거든요. 


난 그게 넘사스럽고 쪽 팔리고 그랬어요. <이게 무슨 뻘쭘한 짓인가. 끝났으면 각자 찢어지면 되지.> 이상한 세레모니 같은 게 있었죠.


저 대항폭력의 폭력성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며, 또 그것이 <단순히> <어쩔 수 없는> 것을 지나 <최소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항폭력>도 때로 끔찍하며 특히 화염병은 <끔찍한>폭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끔찍함>을 무엇으로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 


문부식 씨 같은 이는 저 <끔찍함>에 <역으로> 지나치게 매혹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대항폭력이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것이었다>며 쉽게 말하는 것보다, 어쩌면 <모든 폭력을 부정해야 한다>는 그런 말이 더 쉬워 보인다. <비폭력>은 숭고할지 몰라도 <비폭력! 비폭력!> 구호를 외치는 건 변태스럽기 십상이다.심오해지고 진지해지는 방법은 그 길 외에도 다양할 듯하다.다시 문부식 씨와는 다른 방식으로 심오해지고 싶다.


[봉준호 감독] 전 사면복권 받았어요...... 

근데 그런 게 좀 닮은 거다? 비슷한 행태가 있었지만, 난 본질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아.


봉준호 감독은 6공화국으로부터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89년 5월, 부산 동의대의 학내 농성을 진압하던 전경 6명이 건물로 진입하다 화재로 죽은 사건이 있었다.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을 계기로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많은 대학생들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외에 이 법으로 구속되거나 수배되기도 했다.



죽었죠. 가을 축제 땐데 그 날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학회실에 있는데 선배가 조용히 오더니 도청될지 모른다며 매직 팬으로 조용히 쓰더라고요. <프락치가 동아리방에서 죽었다. 여차저차하니 누구누구는 어디 어디로 가라> 그런 내용이었어요. 기타 치면서 놀고 있었는데, 분위기 썰렁해졌죠. 그 사건이나 동의대 사건은 정권 입장에서 봤을 때 얼마나 호재였겠어요. 신이 났지 뭐.


그러나 누군가 죽어서 신이 난 건 정권이었지 우리가 아니었다. 그 시대에 왜 <개인들>이 없었겠는가. 우리도 이미 <성숙한 개인들>이었다.



3. 어떻게 말할 건가요


재밌는 <80년대>


많은 이들이 죽고 잡혀간 대신 80년대의 대학은 자본과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인 면도 있었다. 학생운동의 <대의>는 쉽게 공감을 얻었고 <정의감>은 넘쳐흐르는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인지 <운동>해야 되는 양심적이고 순수한 어떤 90년대 학번들은 80년대 학생사회를 <이상적인 상태>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 또한 80년대가 만든 괴상한 콤플렉스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 무슨 콤플렉스처럼? (웃음) 상당히 날조되었다고 봐야죠. (중략) 

어제 일이 있어서 연세대에 갔는데 민주광장 백양로 앞에서 애들이 힙합공연을 하더라고요. 

<우리는 연세! 오~예!> 이상한 것도 막 하고요.


야, 잘 놀더라. 거 신기해서 한참 봤네. 여학생들도 예쁘고요.(웃음) 

<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못 저랬는데.> 억울한 생각이 물밀듯이 막 드는 거야.

<내가 지금 다시 대학에 가면 얼마나 재미 발랄하게 지낼까>하는 생각에 참... 

근데 우린 또 우리 나름대로 재미있었어.


우리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80년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나눴다. 김호철이나 <농활>도 피비 케이츠나 <미림극장>과 함께 소재로 등장했다.(*주) 


<살인의 추억>이 <박하사탕>과 <품행제로>의 중간 길이나 제3의 길로 갔다고 말했지만, 과연 <박하사탕>과 <품행제로>가 대립하는 것인가? 유재하나 이문세 노래만 좋았던 것이 아니라,김호철 노래도 좋았고 <농활>도 재미있었다. 


봉준호는 1989년 <농활 야사>라는 만화를 그려 소질을 발휘하고 학교에서 유명해졌었다 한다. 80년대에 <농활>은 어이없게 어렵고 엄숙했으나, 웃을 수밖에 없는 일투성이이기도 했다. 


<개인들>이 중요하다면 <박하사탕>과 <품행제로>의 중간 길은 언제나 가능하고 수없이 많지 않을까. 둘 다를 좋아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80년대도 혼란스럽고 풍부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말한다면


그러니까 그 불에 타서 재처럼 되어버린 연대(年代)가 우울ㆍ암울하기만 했다면 거짓말이겠다. 아니, 사실 <암울한 80년대>란 말은 너무 유치하다. 그 말은 너무 쉽게, 일면 진실이며 일면 거짓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시작된 죽음의 연도인 86년 가을만 해도 그렇다. <아시안 게임의 환희>에 <전국민>이 온통 들뜨지 않았던가. 게다가 누군가들에게는 희망찬 때였다. <3저 호황> 때문에 경제는 안정적이었고 국민소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졸부들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암울한 80년대>란 말이 유치한 것은 수식어구가 달랑 하나에 피수식어가 달랑 하나라서 그러하다. 복잡한 것은 복잡하게 말해야 된다. 사실 너무 빨리 90년대가 왔던 탓이 크다. 


그러나 시대의 총아들은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고 앞으로도 오래 그렇게 할 것이다. <6-10항쟁이 내 정신의 뿌리>라며 매일 좌충우돌하는 현 대통령도 있고, <학살>로 그 시대를 개막하고는 이제 끝까지 돈 떼먹고 천당에 가려는 전 대통령도 있다. 

또한 김문수나 김민석 같은 이는 그 시대와 <개인>의 삶에 대해 좀 다르게, 그러나 특히 난처하고도 난해하게 우리 <개인들>에게 질문한다. 


그러니 어떻게 그 시대에 대해 말하고 쓸 것인가. 

당신은 20대의 날들에 대해 어떻게 추억할텐가. 

들으니 <재수한 94 애들>이 올해 <서른>을 먹었다 한다.



글. 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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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한편 <분노>를 느껴 그것을 웹상에서 표현하는 방식이 단지 <촛불시위>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차원을 넘어선 관객들도 있다. 어떤 네티즌들은 사건 자체의 경과를 관찰한 뒤 <지문 확인이 안 되며, 힘이 세고 수법이 세련되며, 양심의 가책도 없기 때문에(!)> 화성 사건의 진범이 <미군>이라는 추리를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네티즌들의 상상력이란 때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주) 김호철= 80년대 말, <전투적 조합주의>에 입각한 <단결투쟁가> <진짜 노동자> <노동조합가> 같은 행진곡 풍 민중가요들을 수없이 작곡한 작곡가. 원래는 군악대 출신의 연주자였다 한다.


* 미림극장 = 80년대 후반~90년대 초 서울대 녹두거리 근처에 있던 2본 동시상영관. <미림 아트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그 동네 대학생과 고시생의 대표적 문화공간의 역할을 했다 한다..



봉준호 인터뷰


“매트릭스 씨팔, 다 오라 그래.”


퍼슨 女> <매트릭스 2>와의 일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봉준호> 장열하게! (웃음) 극장을 300개를 잡았다나? 근데 벌써 <매트릭스 2> 본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말하기도 하던데. 송강호 씨는 전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매트릭스 씨팔, 다 오라 그래! <엑스맨 2> 씨팔, 날아갔잖아.”(<넘버3>에서의 송강호씨 말투를 상기하면 됨) 계속 그러고 있어요. (웃음) 한 주만 버티면 <살인의 추억> 흥행이 다시 올라갈 거라고. 그래서 제가 “강호 씨, 나도 매트릭스 예매 할 건데,” 그랬더니, “SF는 우리나라에서 안돼요.”, 거의 기획실 직원 같아. (웃음) 나랑 배우들이 대구, 광주 무대 인사를 돌거든요? 그건 회사에서 강요하거나 기획했던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송강호 씨가 워낙 전투적이어서 술 먹다가 자기가 기획실에 전화해서 버스 한 대 빌리고 배우들 모으고, 일이 그렇게 됐죠.


퍼슨 男> 워낙 인터뷰를 많이 하셔서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서 받으실 땐 지겹죠?

봉> 비슷한 질문에도 저는 좀 업그레이드 된 대답을 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같은 얘길 하려면 나도 힘들어지니까. 그런데 그렇게 다르게 얘기하는데도 매체에서는 결국 비슷하게 쓰더라고. <키노> 같은 류의 매체가 아니면 앞 뒤 팍팍 자르고 단순화해서 싣기 때문에 결국 비슷해 지더라구요. 답답하지 뭐. <키노>는 손태웅 씨와 대담을 했고, 오늘 또 장준환 씨랑 ‘장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다음달에 나온대요.


 

남녀노’少’가 <살인의 추억>을 즐기는 이유

 

퍼슨 男> <살인의 추억>은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봉> 정말요? 나는 ‘소(少)'는 별로 안 좋아하리라고 봤는데. 남자애들은 <친구> 같은 영화 좋아하지 않나. 마초를 꿈꾸는 남자애들이 대사도 흉내내면서.


퍼슨 男> 고등학교 때 마초를 꿈꾸지 않은 남자애들이란 거의 없으니까. 감독님은 <살인의 추억>을 20대나 고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어요?

봉> 저도 그게 이상하더라구요. 영화가 우충충하고 옛날 것들만 나오잖아요. 영화사 기획실 직원에게 물었더니, 고등학생들 의견을 모니터 해보면 아이들이 쉽게 ‘분노'에 빠져든다고 하더라고요. “분하다! 저 나쁜 범인 개새끼를 잡아야 된다!” (웃음)


퍼슨 男> 영화가 정의감 같은 걸 불러일으킨다는 말이죠?

봉> 영활 보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분노를 느낀다고 하데요. “저런 나쁜 새끼를 왜 못 잡냐? 우리가 나서자...” 예를 들어 작년부터 인터넷에서 그런 체험들이 많잖아요.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라든가, ‘붉은 악마'라든가. 무슨 일이 있을 때 인터넷에서 능동적으로 모이고 일을 벌이는 것 말이죠. 화성 사건도 실제 사건이다 보니까…. 지금 고등학생이면 85년 전후에 태어났을 텐데, 우리야 그 사건을 고등학교 때 겪어서 알지만,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애들은 알고 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거겠죠.


퍼슨 男> 전 좀 달랐는데요. 다른 방식의 동일화라고 할까요? 나중엔 짜증이 나더라고요.

봉> 갑갑하다, 이런 반응도 꽤 있었어요. 나이 든 축에서 주로. 다른 방식의 동일화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퍼슨 男> 송강호가 무모증 환자를 찾으러 다니고 점 보러 다니는 게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이고 부조리라고들 하는데, 전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그냥 실제로 느껴졌거든요. 실제로 그냥 그랬던 거니까 우스울 것도, 부조리할 것도 없죠. 영화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폭력, 일상적 폭력이 제가 느낀 ‘80년대적인' 건데 그게 바로 짜증나는 거죠. 다들 손버릇이 나빠서 툭하면 서로 치고 받기도 하고, 선생이나 고참은 때리는 게, 우리는 맞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런 문화가 팽배했죠.

봉> 영화에선 한 테이크 안에서 바뀌죠. 같이 <수사반장> 보면서 짱깨 먹다가 싹 취조 포맷으로 바꿔서 패죠. 입 쓱 닦고 바로 발길 날아가죠.


퍼슨 男> 그것도 80년대 풍경인데요. 지금 같으면 지가 먹던 짜장면, ‘같이 먹자'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땐 라면이건 짜장면이건 한 그릇으로 먹었죠. 그 장면 보니까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할 때 한국에 ‘B형 간염' 많다고 난리 치던 거 기억나요.


퍼슨 男> 다른 인터뷰에서 많이 나온 이야기이긴 한데요, 결국 영화 속에서 ‘그린' 또는 ‘추억된' <80년대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86-7년의 신문 쪼가리, ‘부천서 성고문' 뉴스 화면들은 ‘디테일'인 듯하지만, 사실상 ‘외삽'된 것일 수밖에 없고, ‘전경들이 모두 시위 진압에 나서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는 해석은 ‘거시적'인 차원의 해석인데요.

봉> 일상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이 분리될 수 없다고 봐요.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는 자료 속에만 있는 시대이지만 80년대는 자료도 있으면서 내가 직접 민감하게 살았던 시대니까 ‘일상'과 ‘거시'는 다 뒤섞여버려요.


퍼슨 女> 감독님이 좋아하시는 장면이 한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종이 태극기를 들고 도로변에 서 있다가 빗방울이 굵어지자 우르르 뛰어가는 장면이라죠. 전두환 때문에 동원되어 나왔던 환영 대열이 일거에 무너지면서 비를 피하는 모습이 의미심장했는데요.

봉> 예. 제일 핵심적인 80년대의 이미지는 ‘동원'이에요. 한복 입은 여고생들, 시위진압 전경들도 결국 ‘동원'된 거고, 민방위 훈련을 중요하게 쓴 것도 그 때문이에요. 여중생 피살사건의 경우 실제 ?민방위 날?에 발생했어요. 등화관제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어둠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80년대 모티프 중에서 시각적으로나 영화적으로 등화관제가 중요했던 건 그런 이유예요. 어둠 속에서 여중생이 죽어갔다는 것. 행사에 동원된 여고생들도 그랬겠지만 국가가 그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국민, 여고생까지 뭘 해야한다, 모든 것이 그런 식이었죠. 중ㆍ고등학교 때 맨날 전국체전이니 아시안게임이니 불려나가서 청소하고 줄서서 뭐 하고 그랬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데.


퍼슨 男> 80년대 사회가 ‘전체주의적인' 사회였다는 거죠?

봉> 채석장 추격 신에도 무슨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인부들이 밤늦게까지 불려나와 일하고 있죠. 사실 비현실적인 장면인데, 원래 채석장에서 밤에 그렇게 일 안 하거든요. 그런데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강렬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런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장면이 현실을 더 잘 드러내는 거죠.


퍼슨 女> 상상적인 현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도 있으니까.

봉> 좀전에 ‘외삽된 것' 얘기도 하셨지만 ‘전경들 데모 막으러 갔다'는 대사나 부천서 문귀동 사건은 노골적이고 돌출된 것이고, 그것보다는 사람들이 줄서 있고 떼거지로 불려나와 있는, 동원되었다는 이미지가 중요했어요. 그렇게 동원이 되는데 시골구석에서 여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죽는 것에 과연 신경이나 썼을까?


퍼슨 男> ‘전체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대립 혹은 통일인가요? 사회는 전체주의적인데 사건은 개인적인, 즉 ‘변태'가 저지른 성범죄다, 라는 식의…

봉> 사건 자체를 시대하고 분리시켜서는 생각 못하겠어요. 86년, 87년도에 일어났던 일이니까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왜 못 잡았나'부터 시작한 거죠. 형사들은 왜 그런 꼬락서니로 수사를 했을까, 왜 저렇게 ‘현장보존'이 안 되고 개판이었을까? 파고 들어가 보니 그 시대만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기도 하고, 한 덩어리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야메'스러운 거예요. ‘야메'의 코드가 반복적으로 나오죠. 나이키 대신 나이스, 송강호의 애인이 정식 간호사가 아니라 야메로 주사 놓고 다니는 거, FBI에서 온 서류와 시골형사의 대비, 취조실이 외국처럼 이중거울 있고 스위치 누르면 뭐가 나오는 데가 아니라 보일러실인, 그런 야메스럽고 조악한 것. 그런데 범행 자체는 되게 ‘앗싸리'하죠. 그 시대보다 좀 앞서 있는…. 서로 진도가 안 맞아.


퍼슨 女> 시대를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취재를 정말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어떤 과정들을 거치셨나요?

봉> 처음엔 막막하더라고요. 사건이 한두 번 난 것도 아니고 6년간이나 계속된 거라 워낙 방대한데다가, 대한민국이 원래 자료정리가 잘 안되어 있는 나라잖아요. 발로 뛰었지 뭐. 대한민국 시나리오는 발로 뛰어야 한다는 겁니다. 형사도 만나고 기자도 만나고. 국회도서관에서 맨날 뒤적거리고. 옛날 신문 보면 정말 재밌어요. 옛날 신문 본적 있어요? 어떤 한 사건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상들의 모자이크죠. 실제로 ‘86 아시안 게임 개막'이라는 큰 기사 밑에 바로 ‘화성에서 세 번째 시체 발견'이 병치되어서 나오죠. 그걸 한 눈에 보면 그것 자체가 영화의 톤하고도 비슷한 거죠.


퍼슨 男> 백광호가 현장 검증할 때는 영화 속에서 86년 겨울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당시 신문에 ‘현대중공업 노사 협상 결렬'이라는 기사가 나오던데요?

봉> 아, 거기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영화의 주된 배경은 사실 87년 9월이에요. 현대중공업 노조가 싸우는 때가 맞죠. 그런데 영화 처음에 ‘86년 10월'이라고 자막이 뜨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 시체가 겨울에 논에서 나오죠. 그 다음 신은 전미선이 송강호 귀 파주면서 ‘작년에 논에서 죽은 이향숙' 어쩌고 하는 데가 나오는데, 거기서부터는 사실 87년이거든요. 원래 영화 섹스신 위에다 자막을 넣었었어요. 그런데 한참 그거 하는데 ‘87년' 자막 넣기가 너무 뜬금 없어서 안 넣었죠.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나 유재하의 앨범이나 현대중공업 노조 투쟁이나 87년이 맞죠. 헛갈릴 소지가 있어요.


퍼슨 男> ‘전체'와 ‘개인'의 대비가 문제라면, 저는 그 둘이 만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고, 술집에서 대학생들하고 싸우는 장면, 그게 감독의 의도가 제일 잘 반영된 사건이라고 느꼈어요.

봉> 그런데 요즘 애들은 그 사건을 몰라서 약간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퍼슨 男> 그렇죠. 그래서 20대들이 ‘80년대적인 것'에 감흥을 일으키는 이유가 다시 궁금해지는 것이기도 한데요. 송강호가 보여주는 야메스러움, 부조리 같은 것도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코믹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는 거죠

봉> 그런 코드들은 드라마에 티 안나 게 섞여 있는 게 좋죠. ‘나 지금 시대를 말할게요.'하고 뭘 하면 뻘쭘하잖아요. 티 안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 좋다고 봐요. 


이 영화에는 여러 가지 모티프들이나 코드들이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너무나 당연시되는 폭력들, 방금 얘기한 야메스러움과 조악함, 그리고 그 반대항으로서의 ‘FBI스러운 것'. 이런 대립항이 있죠. ‘얼굴ㆍ손ㆍ발' 그런 코드들도 있지요. 서태윤은 항상 손과 연관돼요. 뭐든 항상 손을 보고 판단해요. 백광호 손을 보고 ‘너 젓가락질도 잘 못했겠다'고 판단하죠. 범인 손이 부드럽다는 소릴 듣고 와서는 박현규에 대한 심증이 굳어지죠. 조용구는 발이죠. (웃음) 군홧발로 맨날 밟고 차다, 결국 발이 잘리잖아요. 박두만은 눈이구요. 피의자들한테 “내 눈 똑바로 봐” 하는 것. 이건 영화 전체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기도 했는데.



‘80년대’의 추억


퍼슨 男> 한편으로는 90년대 이후 학번들의 경우 80년대를 신비화하거나,

봉> ‘전설'로 여기거나!


퍼슨 男> 왜 등화관제가 그 시대의 상징인지, ‘등화'가 한자어인지 묻는 98학번이 있었어요.

봉>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코믹하거나 황당하지 않아요?등화관제를 했다거나 실제 교복 입고 나와서 서있던 거.뙤약볕 밑에서 흔들다가 전두환이 2, 3초만에 지나가면 끝나는 거죠. 자기야 한복이나 교복 입은 애들 계속 보겠지만, 흔드는 입장에서는 몇 시에 흔들어라 하면 열심히 흔드는 순간 지나가버리는 거 아니에요. 정말 황당한 일이죠. 요즘 그런 것 하면 학부형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순진했던 건지, 착했던 건지.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믿을 수 없었던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퍼슨 男> ‘빌한다, 모빌한다(mobilize)'는 말 기억나세요? 정권뿐만 아니라 운동권도 사람들을 ‘동원'했거든요. 물론 ‘도덕적' 강제였지만.

봉> ‘강제성'은 없었지만 꼬시기는 했죠. (웃음) “얘, 나랑 같이 어디 가지 않을래?”, “너, 롯데백화점 가봤니?” 하면서. 종로 3가에 많이 나가서 모였죠.


퍼슨 男> ‘80년대가 나빴다'고 회고ㆍ반성하는 사람들도 많은데,그 근거는 ‘폭력'이나 ‘동원'이 결국 비슷한 게 아니냐는….

봉> 맞짱을 뜨다보면 닮나봐요.


퍼슨 男> 예…. ‘우리' 또한 전체주의적이었고, 도덕적 강제라 해도 결국 파시즘적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문부식 씨가 대표적인 경우고.

봉> 그래요? 나는 우리 과가 리버럴해서 그런지 별로 그런 것 못 느꼈었는데요. 시위할 때 문화나 행태 같은 것은 그런 게 좀 있긴 했죠. 교문싸움하면 <전투조>라고 그래서 각목이랑 화염병 든 애들이 쫙쫙 줄지어 나가고, 끝나고 돌아오면 마치 출정 나갔던 군인들 돌아올 때처럼 양쪽에서 줄 서서 박수 치고 그랬거든요. 이상한 세레모니 같은 게 있었죠. 난 그게 남사스럽고 쪽 팔리고 그랬어요. ‘이게 무슨 뻘쭘한 짓인가. 끝났으면 각자 찢어지면 되지.'


퍼슨 女> 감독님이 ‘화염병 처벌법(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피해자가 아니셨나요?

봉> 전 사면복권 받았어요. 근데 그런 게 폭력이라는 면에서 비슷한 행태가 있긴 했지만, 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아.


퍼슨 男> 화염병 처벌법 때문에 사람들이 완전히 쫄았죠.

봉> 프락치 구타사망 사건도 있었어요. 동양공전 학생 하나가 동아리 방에서 죽었죠. 그 날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학회실에 있는데 선배가 조용히 오더니 매직 팬으로 조용히 쓰더라고요. ‘프락치가 동아리방에서 죽었다. 여차저차하니 누구누구는 어디 어디로 가라' 그런 내용이었어요. 기타 치면서 놀고 있었는데,분위기 썰렁해졌죠. 그 사건이나 동의대 사건은 정권 입장에서 봤을 때 얼마나 호재였겠어요. 신이 났지 뭐. 


어제 일이 있어서 연대에 갔는데 민주광장 백양로 앞에서 애들이 힙합공연을 하더라고요. 야, 잘 놀더라. 거 신기해서 한참 봤네.여학생들도 예쁘고요. ‘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못 저랬는데.' 억울한 생각이 물밀듯이 막 드는 거야. 근데 우린 또 우리 나름대로 재미있었어.


퍼슨 男> <품행제로>나 <해적, 디스코왕 되다>와 같이 ‘낭만으로서의 80년대'를 다룬 영화와 비교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봉> 그런 영화랑 비슷한 구석도 사실 있긴 있죠. 예를 들어 백광호가 처음 등장할 때 오락실에서 쇠자로 막 치는 장면 나오잖아요.그 오락이 <올림픽>인데 해 봤어요? 처음엔 50원짜리로 하다가 쇠자도 나오고. 그런 디테일에만 충실했다면 <품행제로> 풍의 영화가 되었겠죠. 


앞서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저 나쁜 놈들을 우리가 잡자'라는 식으로 영화를 봤다는 얘기를 듣고 되짚어 보니까, ‘80년대적인 것'이나 이런 저런 것들을 막 배치해놓고 뒤엉키게 했지만 그런 걸 빼고도 나름대로 ‘사건', ‘형사와 범인' 구도가 성립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문귀동이 누군지 몰라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죠. 일부러 이중적인 텍스트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반 농담 삼아 ‘농촌 스릴러'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그 틀에 놓고 보면 그 자체로 따라 갈 수 있겠죠. 사실 80년대에 집착하고 그런 것은 우리들만의 감각일 수 있어요. 논자들이나 평론가들이나 나도 인터뷰를 하다보면 그 이야기가 꼭 나오지만요.



살인의 추억>, 이전과 이후


퍼슨 女> 사실 <살인의 추억>전에 개봉된 작품성이 있는 영화들이 다 흥행에는 실패했었는데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봉> 나야 뭐 하루하루 영화 만드느라고 정신 없었는데, 주변에서 걱정들 많이 하더라구요. 이 영화도 어두운 구석이 많고 통쾌하게 범인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걱정 많이 했었어요. 나도 사실 잘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는데, 글쎄… 걱정 많이 했었지.


퍼슨 男> <플란다스의 개> 할 때랑 <살인의 추억>이 ‘대박'나고 난 뒤에 감독님의 위상 자체가 많이 달라졌을 텐데요. 느낌이 어떠세요?

봉> <플란다스>처럼 쫄딱 망해도 보고 <살인의 추억>처럼 잘되기도 해봤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망했을 때 감독의 대처법, 잘됐을 때 감독의 대처법. 이 영화가 흥행을 하는데도 저는 어리둥절 우중충구리 하고 그냥 있었어요.사람들은 나보고 ‘왜 이렇게 안 기뻐하냐?', ‘지금의 상황을 만끽해라' 그렇게 말하기도 하던데, 난 오히려 어리둥절하고 잘된 것도 참 영문을 모르겠던데. 잘 돼서 다행이고 기쁘긴 해요. 다음 영화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유리하거나 수월한 건 있겠다 싶어서. 그러나 언제든지 망할 수 있고 언제든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퍼슨 男> 어떤 평론에서 <플란다스의 개>하고 비교했을 때 ‘봉준호 감독이 성숙했다'라고 썼더라고요.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똑같이 자기 스타일로 영화를 만든 거 아닌가요? ‘성숙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식의 시간 개념을 가지고 평가를 내리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봉> 접근방식이 다르니까 그런 것 같아요. <플란다스의 개>가 세세하고 자질구레하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라면. <살인의 추억>은 액션도 있고 사건도 방대하고 원작도 있고, 거대한 바다에 다이빙한 거지. 그렇기 때문에 <플란다스의 개>처럼 내 안에서 뽑아내서 자유 자재로 가지고 노는 것하고는 좀 달랐죠. 실제 사건의 압박도 있었고. 영화가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하거나 어른스럽다는 얘기가 그런 것 때문에 나온 것 같아요. 세 번째 영화는 초절정 엔터테인먼트 오락영화를 찍어 볼까 생각중인데.. (웃음)


퍼슨 女> 박찬욱 감독이 를 만들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사회적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웰메이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간절하기 때문에 쉽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죠.

봉> 사실 내가 영화를 볼 때 몰입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영화 찍을 때도 자기가 연출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실 몰입을 잘 안해요.


퍼슨 女> <플란다스의 개>도 그랬나요?

봉> 내가 웃긴 장면을 찍어도 약간 거리가 있어요. 장면과 나와의 거리감. 그런데 이번에는 그걸 없애버린 것 같아요. 이건 위험하기도 한 건데, 완전히 형사 시점이고 감정에 100프로 몰입해서 완전히 내가 들어가서 찍어버렸어요.


퍼슨 女> 자료조사 하다가 범인에 대한 매력을 발견하지는 않았나요?

봉> 매력까지는 아닌데, 범인을 만나고 싶다거나 범인과 한 2년 동안 같이 지낸 것 같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과대 망상이기도 한데, 시나리오 쓸 때 특히 만나보고 싶었고 물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았죠.


퍼슨 女> 감독이 형사의 입장에서 그 영화를 바라본 것이라면,그게 영화를 이끌어 갈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봉> 표면적으로는 형사의 이야기이지만 영화 전체를 압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범인이잖아요? 그 전제가 있으니까 모든 것이 성립이 되는 것이고. 근데 지금은 만나기 싫어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웃음)


퍼슨 女> 예전 인터뷰를 보면 촬영 때 ‘진범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얘기했던데요?

봉> 그랬나?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걸 보고 눈물 흘리거나 반성할 놈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범행의 행태가 너무나 아…


퍼슨 女> 그게 단독 범행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밝혀진 건가요?

봉>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단독범행이라는 입장이에요. 논리적으로만 봐도 2차부터 5차까지는 동일범인 것 같아요. 그 뒤부터는 모방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5차사건 이후로 범행의 디테일 같은 것들이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했거든요.


퍼슨 女> 내가 당시에 본 신문기사에서도 모방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봉> 모방범죄가 실제로 있었죠. 8차 사건 때. 이때는 음모를 조사해서 범인이 잡혔는데, 그 양반은 범행 수법이나 모든 것이 달랐어요. 동네가 그 동네여서 처음엔 화성 사건 카테고리에 묶였다가 잡혔는데, 이 사건이 8차는 모방이고 다른 사건들이 동일범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 같았어요. 사건 현장을 보면 실제 사건의 범인은 정말 냉철한 사람이었죠. 결코 성욕에 울컥 해서 충동적으로 그것을 저지르고 급히 달아나고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여중생을 죽인 다음에 교복을 빨래 개듯이 차곡차곡 반듯하게 놓고, 가슴에 19차례 자상이 있는데 그것도 미친놈처럼 막 그은 것이 아니라 피가 날 듯 말 듯 하게 살짝살짝 그은 거였어요. 복숭아는 7차 사건 때 음부에서 나온 건데 9조각이었죠. 그건 피해자가 가방에 가지고 있던 복숭아였어요. 그 동작과 상황들을 떠올려 보면 얘는 결코 허벅거릴 사람이 아니에요. 형사들도 지적이고 냉철한 화이트칼라일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고.



2년 8개월, <살인…>의 추억


퍼슨 女> 제작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봉> 2년 8개월. 정확히 99회 촬영했는데, 찍는 건 거의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장소 이동이 많고 날씨랑 계절조건 때문에 애를 좀 먹었죠.


퍼슨 女> 6년에 걸쳐 10명의 희생자를 낸 화성 연쇄살인사건 중 영화에선 6건이 다뤄졌지요. 인물들은 어떻게 선택된 건가요?

봉> 용의자를 묘사할 때, 박현규(박해일)는 포지션부터 소개되죠.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는 놈이 있다, 이렇게 계속 관심이 모아지다가 나중에 박해일의 뽀얀 얼굴이 나와요. 이미 존재하는 투수 마운드에 박해일이 올라간 거죠. 앞선 두 용의자들의 경우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편이죠. 조병순은 교회 열심히 나가고 병간호 열심히 하고 인사성 밝고, 백광호는 ‘덮쳐라 백씨'라는 아버지 캐릭터와 연관해 설명되고. 그런데 박현규는 그런게 전혀 없거든. 니가 작년 9월에 군대 제대하고 이 동네 온 뒤부터 사고가 일어났다, 그 외에 이 사람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느낌이나 정보들은 일부러 많이 지운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형사와 관객들의 모든 욕구, 점점 누적된 분노라는 것이 다 박현규한테 집중되는 거죠.


퍼슨 男> 그걸 예상 했었나요? 그걸 컨트롤했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봉> 사실 뭐, 시나리오 쓸 때는 객관적인 폼을 따라가는 거죠. 영화를 찍어놓고 나서 이런 것을 생각해 보긴 하는데... 박현규라는 사람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더 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들이 있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어요.


퍼슨 男> 관객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이 박현규였다는 말씀이죠?

봉> 백광호나 조병순은 누가 봐도 아니잖아요. 인물들의 느낌이 말이에요. 이제 제대로 된 범인이 등장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퍼슨 男> 그것이 상당히 매끈하다고 생각되더군요. 소위 ‘잘 빚은 항아리'와도 같은….

봉> 박해일이 고민을 많이 했죠. 형사들이야 ‘야 이 새끼야, 니가 범인이지?' 하는 감정으로 연기하면 되고, 나는 박현규 쟤가 범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고 연출을 하면 되는데, 배우 본인은 매일 전화해서 ‘감독님, 제가 범인이에요?' 물어봐요. 그러면 난‘어, 나도 몰라' 하고 얼버무려 버리고. 나중엔 정말 힘들어 하길래 내가 어느 한쪽으로 정리를 해줬어요. 와, 그러니까 되게 좋아하더라고.


퍼슨 男> 범인이 아니라고 말해 줬나요?

봉> ‘이거 비밀인데, 아니다'라고 얘기 해줬어요. ‘니가 범인이 아니라고 결백하다고 믿고 연기해라'. 속으론 니가 아무리 진심으로 연기를 해도 사람들은 오히려 너를 더 가증스럽게 볼 것이다, 생각했죠. (웃음) 그래도 어쨌든 좋아하더라고요. 이틀 뒤엔가 술먹다가 전화해서는 “감독님, 나 범인 아니죠?” 그러기도 하고, 기획실 직원들한테 “누나들, 제가 범인이 아니거든요?” 그래요. 한 번은 또 술 먹고 전화해서 “감독님, 형사 이 나쁜 새끼들, 인권을 유린하는 개새끼들, 나는 범인이 아닌 거예요, 그죠?” 하길래 “그래 알았어. 너 범인 아니니까 그만 먹고 들어가서 자” 그랬죠.


퍼슨 男> 그때 송강호의 비중이 떨어지기 시작하잖아요. 처음엔 중요하다가.

봉> 역전되죠. 비중이.


퍼슨 男> 송강호가 괴물배우란 말씀을 많이 했는데 어떤 뜻인가요?

봉> 괴력이 있는 걸물. 슬렁슬렁 하는 척하지만 몰입의 강도가 세고, 배우이기 이전에 나름의 창조력과 동물적인 감수성이 있는 독자적인 예술가 같아요. 클라이막스 찍을 때 해장국집으로 불러내 가지고, ‘뭐 결정적인 것 하나 없수?' 하고 물었죠. 90퍼센트 정도 찍었을 때쯤 되면 감독보다 배우가 그 인물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거든요. 대여섯 달 동안 그 인물로 살아왔고, 또 강호씨는 애드립도 강하고 하니까 현장에서 나오더라고요. 약간 뜬금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밥은 먹고 다니냐?' 하는 거 말예요. 나중에 편집을 하면서 보니까 좋더라고요. 해석의 여지도 많고. 때론 오해의 소지도 있겠지만 뭔가 열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최종 편집할 때 싹 집어넣었죠. 맥주병은 일찍 따놓지 않듯이 그 테이크는 따로 저장해 뒀었지요. 최종편집 이틀 전에 붙이고 일반인 모니터링을 했었는데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인상적이라고도 하고. 아싸,하고 끝내 버렸지요. 하다 보면 그런 타이밍 싸움이 필요해요.


퍼슨 女> 송강호 같은 배우, 나이도 더 많고 영화도 더 많이 찍었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봉> 편하게 해줘서 좋았어요. 서로 죽이 잘 맞고 그래서 내가 어,하면 아, 하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만든 게 많았어요. ‘니가 아까 나뭇가지 밟았지' 하고 상경씨가 말하면 강호씨가 ‘나뭇가지를 밟든 똥을 밟든' 하는 대목은 현장에서 만든 거예요. 강호씨는 거기다가‘나뭇가지를 밟든 똥을 밟든... 쟤가 밟았다 왜?' 그렇게 끝마무리를 해줘요. 그럼 난 기쁘지. A를 주면 AB가 그 자리에서 딱 나오거든요. 그 경운기가 발자국 지우는 신도 좋았고. 이 신은 개판 아수라장을 생중계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찍은 건데, 정말 어렵게 찍었어요. 30, 40명을 동시에 컨트롤하면서 경운기 오는 타이밍도 맞춰야 하지… 하루종일 그거 한 씬 찍었으니까.


퍼슨 男> 크랭크 인하면서 찍은 게 그거 아닌가요?

봉> 첫날 찍은 건 발차기 하는 거였어요. 송강호의 영화 첫 커트.일부러 내가 센 거를 잡았죠. ‘강간의 왕국'하는 거. 딱 한번 찍고 오케이 내린 건데, 다큐멘터리처럼 찍었어요. 전혀 동선도 안 맞추고. 상경씨는 TV에서 하던 습관이 남아서 “무술 감독은 없나요? 안전장치는?” 그래요. 나하고 강호씨는 “그런 게 어딨어? 알아서 하는 거야” 그랬더니 상경씨가 좀 삐졌죠. 얻어터지고 했으니까. 미리 짜고 하면 실감나게 안나오니까 때리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막 한 거예요.


퍼슨 男> 날아차기할 때 보니까 송강호씨 몸이 가볍더라고요.

봉> 예전에 <반칙왕>을 해서 그런지 드롭 킥 같은 걸 알고 있더라고요. 경사길이라서 뛰어 내려가다 보면 발로 찰 수밖에 없었어요. 그냥 깔짝깔짝 할 줄 알았는데 강호씨가 갑자기 붕 나니까 상경씨가 퍽 하고 날아가잖아요. 다행히 김형구 촬영 감독님이 노련하셔서 시침 뚝 떼고 마치 계획에 있던 것처럼 스르륵 찍었던 거예요. 아, 그 노련함…. 카메라가 그렇게 못했으면 배우들이 아무리 실감나게 했더라도 삑사리 났을 거예요. 포커스를 미리 잰 것도 아닌데 조수들도 노련하게 했고.


퍼슨 女> 그 명대사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는 시나리오에 있던 건가요?

봉> 제가 콘티에 적었던 건데 강호씨는 자기 리듬으로 마치 에드립처럼 생동감있게 해요. 그러니까 그게 대단해.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능력이 남다르다고나 할까? 섬세해요. 보통 아저씨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인물은 정말 섬세한 구석이 많아요.


퍼슨 女> 노래 <빗속의 여인>이 흐르는 태극기 행렬과 시위대 진압 장면은 혹시 편집기사가 빼자고 할까봐 뮤직비디오처럼 찍었다는 말도 들었는데요.

봉> 그건 조금 와전되었는데, 비 오고, 여고생 뛰어가고, 시위진압, 함정수사로 이어지잖아요.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니까 일부러 뮤직비디오처럼 엮었죠. 그걸 누가 자르자고 했던 적은 없어요. 물론 편집기사가 이 신하고 이 신하고 바꾸면 어떠냐, 이 장면은 빼도 괜찮은 것 같은데, 하는 의견은 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감독이 하는 거죠. 태원엔터테인먼트 같은 데는 어떤지 모르지만, 싸이더스 영화는 다 디렉터스컷이라고 봐도 상관없을 거예요.


퍼슨 男> 박두만 캐릭터를 잡으면서 애초에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들었는데요, 다음 작품도 염두에 둔 사람은 있나요?

봉> 변희봉 선생님은 계속 할 거니까, 연세도 많으시고 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중이에요. 나머지 캐릭터는 나중에 시나리오 써봐야 알겠고.


퍼슨 女> 배우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개성들이 정말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봉> 오디션 본 배우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로에 가서 술을 못 먹어요. 한 맺힌 얼굴들이 많아서. 대학로 연극배우들이, 내가 옆에서 술을 먹고 있으면 ‘아, 저 빼놓고 준비 잘되세요?' 그러니까요. 오디션 봤던 배우들이 술자리에 사방 뒤섞여 있어서 조심해야겠더라구요. 오디션 정말 많이 봤죠. 한 4-500명 봤나? 거의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 만났죠.



TV 키드, 영화감독이 되다

 

퍼슨 女> 원래 꿈은 뭐였죠?

봉> 영화감독.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죽.

 

퍼슨 女> 중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봉> 텔레비전을 많이 봤어요. 우리 때는 비디오가 없었잖아요? TV가 시네마테크였죠. 밤에 하는 야한 영화도 많았고.

 

퍼슨 男>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봉> <자전거 도둑>이 어릴 때 본 건데 생각이 나네요. 이태리 영화인지도 몰랐는데, 자전거 잃어버리니까 슬프고 훔치려다가 또 잡히니까 슬프고. 아이도 인상적이고….

추석이나 명절 때 했던 <대탈출>, 크아. 그거 얼마전에 DVD가 나와서 샀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너무 재밌더라. 손에 땀을 쥐고 봤네. 스티브 맥퀸이 철창에 크아… <대탈출>하고 <빠삐용>은 맨날 했잖아요.

 

퍼슨 男> 요즘 나오는 영화도 많이 보나요?

봉> 영화야 늘 보는데, 이것저것 많이 섭렵하지는 않고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스타일이에요. 요즘 영상원 수업을 하다보니까 <양들의 침묵>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데,또 초등학교 1학년 우리 애 때문에 <토토로>를 반복해서 보고 그래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영화는 <공포의 보수>라는 영화가 있어요. 혹시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이브 몽땅 나오는 거. 서스펜스 영화인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였어요. 어릴 때 봤던 영화 중에서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죠. 거기 보면 주인공 친구가 타이어에 깔려서 다리 잘리는 장면이 있는데, 어릴 때 그 장면이 어찌나 끔찍하던지. 그 사람을 기름웅덩이에서 끌어낼 때 잘려서 으깨진 다리가 계속 딸려 나오는 거. 그 장면이 며칠동안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된 거지. 이브 몽땅이 니트로 글리세린 폭탄을 트럭에 가득 싣고 산꼭대기 유정을 폭파하는 영화죠. 명작이에요. 거의 화장실을 못 갔어요. 오줌을 참으면서 봤는데.

 

퍼슨 男> 그런 경험들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어떤 다른 기제가 필요하지 않았나요?

봉> 카메라 뒤가 궁금했었어요. 배우는 못생겨서 못할 것 같았고. 만화를 많이 그리다 보니까 장면을 배열하는 법,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죠. 영화도 그런 비슷한 것 같았어요. 어렸을 때는 맨날 TV만 보던 시대여서, 밖에 나가 놀지도 않고 여행도 안가고 일일연속극 주말연속극 다 봤었어요. 변희봉 아저씨도 TV 보다가 알게 된 거고.

 

퍼슨 男> 그 마음속의 믿음, 즉 TV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유지하는 힘은 어디서 주어진 건가요?

봉> 축구를 많이 본다고 해서 축구선수가 되지는 않죠. 사실 당연한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보니까 그 당시 너무나 잘나가던 배창호 감독 등등 감독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연극영화과 나온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상관이 없더라고요. 국문과 가서 소설공부해도 좋을 것 같았고, 신방과, 철학과, 심리학과 어디를 가도 상관없겠구나 생각한 거죠. 사회학과가 정원도 많고 ‘오케바리다'하고 간 건데,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사회학 공부보다는 영화서클을 하면서 영화 공부를 많이 했죠. 사이비 서클이지만 공부도 참 열심히 했었는데. 이 대학 저 대학 사람들 모여서 있는 서클이 있었어요.

 

퍼슨 男> 그땐 영화공부를 할만한 클럽이라던가 지적인 활동이 없었던 것 같은데.

봉> 그때가 사실 초창기였어요. 그래서 나도 외국서적들 카피해서 공부하고 삐짜(벌크) 테이프들 카피해서 서로 보고, 참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정성이었어.

 

퍼슨 男> 생각해 보면 80년대에 다 있던 거였는데, 90년대에 들어서 나온 문화들을 포스트 모던하다거나 마치 새로운 시대의 것인 양 이해를 했잖아요. 그런데 한참 대학 때나 방위 받을 그 당시에는 영화를 보러 다니고 그 뒤에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그럴만한 문화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봉>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기엔 별 문제 없었어요. 시네마테크 생기기 전이라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 보러 다녔죠. 우리 대학 1학년 때 <양철북> 같은 거 개봉하고 그랬어요. <아빠는 출장 중> 같은 영화.  그때부터 조금씩 센 영화들이 하나 둘 개봉을 했죠.

 

퍼슨 女> 영화 아카데미 갈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봉> 거기가면 영화 공짜로 찍을 수 있다더라, 돈 다 대준다더라, 장비도 충무로 사람들이 쓰는 똑같은 장비로 준다더라, 해서 ‘이거다' 싶어서 시험 봤죠.

 

퍼슨 女>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봉> 변태적인 학생이었죠. 학교생활은 얌전히 하면서 뒷구멍으로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중3때 <로드쇼>가 처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피비 케이츠가 활짝 웃고 있는. 으아, 피비 케이츠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질렀지. (웃음)



“거부한다,  ‘봉테일’!”

 

퍼슨 男> <플란더스의 개>를 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색조가 노란색이에요. <살인의 추억>도 오프닝과 라스트 신이 노란색이죠. 노란색에 어떤 의미라도 두고 있는 건가요?

봉> 옐로우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데, 사건이 가을에 났잖아요. 하늘 파랗지 논은 노랗지 구름은 떠가지 애들까지 뛰어 노는, 무슨 공익광고나 농협 CF의 한 장면 같은 그 완벽한 풍경에 시체가 있는 거예요. 너무나 부조화스럽고 그런 이미지를 좋아하니까 거기에 끌려서 시작한 거죠. 영화 탈색시키는 과정이 있는데 오프닝 신하고 라스트 신만 탈색 안하고 생생한 노랑 그대로 나오게 했어요. 나머지는 <쎄븐> 같은 영화에서처럼 탈색을 해서 회색이나 잿빛으로 가라앉혔지요.

 

<플란다스의 개>는 의도한 부분도 있고 우연히 그렇게 된 것도 있고 그래요. 회색에서 시작해서 옐로우가 점점 많아지는 거죠. 배두나가 처음에 회색을 입고 나오다가 사건이 진행되면 노란색 후드티로 갈아입잖아요. 이성재도 빨간색 옷 입고 점점 이상해지지. 나중에 급기야 노랜색 옷을 입은 군중이 나오지. 그 영화가 가을에 찍은 거라서 우리가 찍었던 아파트단지 주위에 있던 은행잎들이 노랗게 변하더라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도와주더라고. 색이라는 게 무의식중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퍼슨 男> <플란다스의 개>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변희봉 아저씨가 티샷하는 신, 참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던데.

봉> 그건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 본 거예요. 실제 봤을 때 묘한 느낌이 드는 게, 저 양반은 평생 골프를 못 칠 것이다 혹은 못 쳐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그렇게 빗자루로 우유팩을 탁치는 게 웃기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아파트단지에 사니까 골프 치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기는 할텐데 자신은 평생 골프를 못 쳐 볼거란 말이야. 러닝머신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원래 그것도 시나리오에 없던 건데 실제 아파트단지 지하실에서 찍은 거예요. 동네 주민들이 커다란 물건들 처리 못하면 지하실에 쳐 박아 두잖아요. 장롱이나 운동기구 같은 것들. 그 운동기구 중에 러닝머신이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야, 저거 좀 가져와 봐' 했죠. 그래서 이것도 좀 해보세요, 한 거죠. 경비원이라는 계층의 사람들이 집에 그런 게 있겠어요? 자기 몸 관리하는 건 중산층 이상이나 하지.

 

퍼슨 女> <플란다스의 개>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이 할머니 유서에 적힌 무말랭이 이야기였는데요.

봉> 아, 무말랭이… 현남이 원래 잘 안 풀리는 캐릭터였잖아요. 뉴스에 나올 것 같은데 안나오고, 뭔가 될 듯하다가 끝내는 안 되는 그런 맥락이잖아요. 내가 찍었어도 뭔지 잘 모르겠어요. 무말랭이 그거 너무 장난스러운 것 아니냐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참, 무말랭이 가지고 무슨 스토리를 만든다고...

 

퍼슨 女> 외국인들이 보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봉> 일본사람들이 뒤집어졌어요. 그 장면 보고. 서양인들은 약간 뻘쭘해 했고. 만화적인 감성이 잘 맞아서였는지, 동경 영화제 할 때도 무말랭이 나오니까 의자에서 팍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고 그랬죠. 일본에서 7월에 개봉한다고 하던데, 팔고 어쩌고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야 나랑 배우들 7월에 오라고 하더군요.

 

퍼슨 男> 평소 지하실에 대해서 전향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거 아닌가요?

봉> 옐로우에서 이젠 지하실이군. 지하실이 왜 이렇게 나오게 되었을까….

 

퍼슨 男> 지하실에서 취조할 때 보일러공이 나오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척 하면서 지나가지만 혹시 그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라구요.

봉> 인터뷰할 때마다 그런 질문이 많이 들어오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그 얘기가 있더라구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의도와 결과가 대부분 일치하고 그대로 컨트롤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만 의도와 결과가 너무나 엉뚱하게 돌아온 것 같아요. 그 보일러공 역은 이강산 조명기사가 한 건데,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 지하실이라는 야메스런 공간에서 취조하고 하니까 그것을 좀더 강화하기 위해서 너무나 허접한 취조분위기를 만들려고 넣은 거죠. 취조를 막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멀쩡하게 들어와서 만지다가 나가는 것,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조악한 분위기를 싹 드러내려고 한 것이었어요.

 

퍼슨 男> 그런데 그게 더 공포였던 거죠.

봉> 그게 이상하게 시선을 많이 끌었어요. 찍기를 내가 잘 못 찍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강산 기사님이 연기가 서툴러서 느릿느릿 걸어가니까 더 뭐가 있어 보이고 그렇죠.

어떤 사람들은 ‘그 보일러공 아저씨가 범인이다'라고 하고, 심지어는 ‘언론사 기자가 인권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 보일러공으로 잠입한 것이다' 그러기도 해요. 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다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근데 사람들이 그걸 주목하거나 관심 있어 하는 데에는 장르적 관성이 있는 것 같애. 이런 류의 영화들은 모든 디테일들에 대해서 민감해지게 되거든요. 저건 단서가 아닐까? 저건 암시가 아닐까? 그런 장르적 관성 때문에, 이건 내 손을 떠나버렸어.

 

퍼슨 男> 관객들이 그렇게 집요하게 뜯어보고 하는 게 워낙 봉감독이 ‘봉테일'로 소문이 나서 그런 것 아닐까요?

봉> 그 ‘봉테일'이란 말 때문에 한 달 동안 미치는 줄 알았어요. 난 사실 그렇게 디테일에 민감하지 않거든요? 퍼슨웹 인터뷰에서 최초로 얘기하는 건데, 난 디테일에 대한 거부감까지 있어요. 실제 우리 연출부들이 더 챙기면 챙겼지, 난 ‘그거 안 중요해' 하면서 ‘에잇,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랬다니까. ‘거부한다 봉테일!' (웃음) 그런 디테일들은 감독이 해야할 일들 중에서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해요. 농협 마크도 미술팀이나 연출부들이 서로 이야기하다가 나오는 것이지, 거기에 집착할 이유가 없죠. 감정의 흐름 같은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계속 신문마다 떠들어대는 거야. 마땅한 모티브가 잡히면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거지. 이젠 그 얘기 지겨워. 사람 쪼잔해지는 것 같고.

 

퍼슨 女> 감독으로서 현실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요?

봉> 난 결국 개인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미시적으로 들어가게 되다보면 나중엔 사회 전체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접근 루트가 좋아요. 개인적인 구체성이 없는 영화들은 싫어해요. 거대 서사극 같은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퍼슨 女> 어떤 감독들을 좋아하나요?

봉> 마틴 스코세지, 토드 솔론즈. 특히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토드 솔론즈 같은 경우는 미국 개개인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죠. 요즘 미국 중산층들이 어떤 꼴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는데, 확 와 닿아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그다지 분리되지 않는다는 거죠. 일본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충격적인 영화가 있거든요?그 영화 만든 이마무라 쇼헤이도 많이 보진 않았지만 좋고 김기영 감독님 영화도 좋아해요.

 

퍼슨 女> 기억에 남는 평이나 영화평론가나 있다면요?

> 난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평자가 하나도 없어서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김영진 씨 글은 정돈된 글쓰기를 하는 것 같아서 좋아해요. 가장 인상깊었던 평은 <무비스트>라는 사이트에서 어떤 여성분이 쓴 10자 평이었어요. ‘팝콘 먹다 혀 깨문 영화'라고 썼더라구요? (웃음) 범인 튀어나오는 장면 때문에 그러는 건가? 혀 깨물린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 오더라고.



팔방미인, 이후를 기대하며


퍼슨 女> 여경이 단서를 찾는 장면에 나온 유재하의 노래 때문에, 유재하가 새삼 인기를 끄는 것 같던데요.

 봉> 그 노래가 좀 유명해진 모양이에요. 원래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노래라서 넣은 건데.

 

퍼슨 男> 평소 음악은 많이 듣나요?

봉> 신경 안 쓸 수가 없죠. 음악은 사실 직격탄을 쏘는 것과 같아서 너무 직접적으로 감정을 흔들기 때문에, 약간 잘못하면 영화가 골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아주 좋아질 수도 있죠.

 

퍼슨 男> 이번에 일본인하고 음악작업을 같이 했는데 진행과정이 궁금합니다.

봉> 싸이더스에서 <무사>를 할 때 일본 사람하고 했거든요. 일본 쪽에 연결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일본 음악가는 어떠냐고 권해왔어요. 나도 일본 연주음악 좋아하는 게 있고 호기심도 있어서 일본 음악가들 많이 만났었죠. 히사이시 조도 만났는데, 사실은 시나리오 보고 하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논두렁에서 막 구르고 이런 영화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에서와 같은 신화적인 스케일은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더라고요. 워낙 바쁜 양반이어서 스케줄 빼기도 너무 힘들겠고. 이와시로 타로는 <바람의 검심> 음악도 좋았고 젊은 사람이고 커뮤니케이션도 잘되고 해서 즐겁게 작업했죠.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하고 최종 작업은 일본에서 60인조 오케스트라 놓고 하고.

 

퍼슨 男> 봉감독을 인터뷰 한다니까 ‘제보'가 들어온 내용이 있었는데, (웃음)농활을 갔다온 뒤에 농활 수기를 만화로 그렸다면서요?

봉> 농활야사요? 농활야사 그린 건 89년도예요. 사회학과 학회지가 단행본처럼 나온 것이 있는데 거기 들어갔었지요. 연세춘추에 93년 한 학기동안 카툰이랑 네칸짜리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죠.

 

퍼슨 男> 만화책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요.

봉> 영화를 못하게 되면 만화를 그릴까 생각하는데, 만화가의 세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 양반들이 ‘뭐 하다 안되면 만화하나?'라고 할 것 같네요. (웃음) 안 그린 지 오래 돼서 그 부분을 훈련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퍼슨 女> 만화는 많이 봤나요?

봉> 많이 봤죠. 만화책도 많이 보고 만화 영화도 많이 보고.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도 영화로 찍으면 재미있을 텐데. 찍기는 어렵겠지만.

 

퍼슨 男> 박찬욱 감독도 <올드보이> 판권 사서 하는데, 봉감독도 한 번 찍을 생각 없나요?

봉> 만화 가지고 누가 나한테 제안하면 찍을 수도 있죠. 재밌는 거 많은데, <기생수> 같은 건 제임스 카메론이 사갔다면서요? 그 자식은 할 것도 많으면서 여기까지 욹어 먹는지… 우리 같은 놈들은 어떻게 살라고…. (웃음) <드래곤 헤드> 같은 건 끝났나? 시간이 없어서 6권까지 보고 못봤는데.

 

퍼슨 男> 그러고 보면 어두운 거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봉> 아니라니까…. 어휴, 난 뽕밭에서 뽀뽀하는 신만 찍어도 연출부 애들이 ‘에이.. 뽀뽀하다가 혀 자를 거죠?' 이래요. (웃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지? 따뜻한 영화 하나 찍어야겠어.

 


봉준호 감독 인터뷰 후기 by

 

많은 것이, 의외였다. 한창 각광을 받으며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던 그의 이미지들에,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게 된 때문일까. 그 숱한 기사와 인터뷰들을 찾아 읽으면서 그의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해 본 나로서는, ‘감독 봉준호'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더 이상 그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두려움조차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건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를 만나기 전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의 영화나 그가 하고 있는 생각 혹은 그의 사람됨보다는 그의 목소리나 몸짓 혹은 표정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은,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질감을 생생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화면의 뒤편이 늘 궁금했고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그. 나 역시 스크린 위에 펼쳐진 <살인의 추억>의 뒤편 그 어딘가에 드리워진 그의 뒷모습이 궁금했다.

 

반복되는 인터뷰로 인해 지쳤을 법도 한데, 이젠 슬슬 지겨울 때도 됐을 텐데. 그러나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전보다는 업그레이드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는 말로, 기대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고 있던 인터뷰어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해야 나도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고 덧붙임으로써, 그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최고도의 수준으로 마감질되었다. 아, 그러나 오해는 마시길. 그의 그런 태도가 단지 ‘판에 박힌' 배려나 계산된 ‘포즈'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그와 잠시만 대화를 나누어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실제로 그는 시종 흥겨운 어조를 잃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또 발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마치 자가발전의 동력을 늘 몸 속에 품고 있는 사람처럼, 그에겐 활기가 있었다.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에게는 장난기와 재치가 넘쳐흘렀다. 아무리 수개월 간 호흡을 맞췄다지만, 그이만큼 송강호의 말투를 그렇게 그럴듯하게 흉내내는 사람을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지리멸렬>의 그 ‘엽기적인' 설정들, 그리고 <플란다스 개>에서의 포복절도할 ‘무말랭이'에서 이미 그의 재기발랄함을 짐작했어야 했던 것을. 왜 그에 대해 그런 터무니없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인지. 사진을 통해서 접한 고집스러워 보이는 까만 곱슬머리와 사뭇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제일 많이 본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는 첫대바기에 ‘토토로'라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 때문이란다. 가장 많이 본 영화 목록 일순위에 ‘토토로'가 올라있긴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 도둑>과 같은 고전 명작들에 빠져 있었던 영화광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입에서는 아직껏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영화들이 줄줄이 꿰어져 나온다. 그러나 그는 헐떡헐떡 극장을 찾아 돌아다니며 영화를 탐식했던 ‘헐리우드 키드'라기보다는, ‘TV 키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TV를 끼고 살았고 그리고 그 TV에서 해주는 방화 외화 드라마들을 섭렵하다시피 했다는 걸 보면.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니면서도 여전히 열렬한 대중문화의 향유자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TV광이면서 영화광에 만화광이었던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가 어릴 때 TV만 보고 살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어, 나도 TV를 누구 못지 않게 끼고 살았는데..' 나 역시 주말이면 낮과 밤에 늘 틀어주던 TV 영화들을 보고 또 보고, 그저 습관적으로 브라운관 앞에 앉아있던 TV 키드였으므로. 제목도 모르는 채 처음부터든 중간부터든 무턱대고 봤던 영화들은 아직껏 단편적으로 뇌리에 박혀 있다. 명절 때마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틀어주었던 재탕 삼탕 영화들도 어김없이 반복해서 봐 줌으로써 방송국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TV영화 추종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다섯 살 차이가 지는 그와 나는 똑같이 TV로 대표되는 80년대 문화의 포로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 감독이 되어 있는 누구처럼 화면 뒤의 세상이 궁금해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 같은 것은 꾸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속 세상에 나 자신을 동화시키길 좋아하여 영화를 보면서 하염없이 울고 웃었던 충실한 관람객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TV를 끼고 살았다고 그리고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해서 다 영화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 만큼의 공통점만으로 비교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은근히 부아가 나면서 그가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노배우를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겠다는 포부는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변희봉씨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그래서 그를 영화마다 꼭꼭 등장시키고 있는 이 감독의 후속작들에서, 배우 변희봉이 어떤 모습으로 속속 등장할 지를 지켜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변희봉 할아버지도 무척 행운아이긴 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행운아는 봉감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감독이 되면 저 아저씨를 내 영화에 꼭 써야지'라고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어릴 적 우상(?)에게 이만큼 큰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더군다나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그 어처구니없는 ‘경비원'과 <살인의 추억>에서의 촌장 아저씨같이 수더분한 ‘수사반장'에 이어, 앞으로도 주욱 그의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고 명배우의 진면목을 뽑아내는 것보다도 더.

 

두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소설은 좀 읽는 편이냐는 질문이 던져졌다.그러자 그는 근래에 통 소설을 못 보았다며 조금 멋쩍어 한다. 그리고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숨까지 쉬는 것이 아닌가. 그 한숨의 의미를 몰라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인터뷰어들은 ‘이제 인터뷰가 좀 지겨운가보다'하고 좀 걱정스러워졌는데, 그는 정색을 하며 ‘내가 그동안 소설을 너무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덧붙여 준다. 거기에 대해 더 자세하게는 물어보지 못했다. 소설을 읽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정신 없이 바빠서 그게 좀 불만족스러운 건지, 요즘 읽을 만한 소설이 없어서 더 이상 문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 근데, 그런 걸 물을 자격이 내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질문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문학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나조차도 소설 읽기보다는 영화 보기를 훨씬 더 즐기는 편인데, 그런 내가 무슨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저 나도 속으로 덩달아 조그맣게 한숨을 쉬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플란다스 개>의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기 전‘걱정을 참 많이 했다'고 몇 번이나 되뇌는 봉준호 감독. 며칠마다 한번씩 들려오는 ‘몇 백만 돌파' ‘흥행 신기록'의 기사들로 일단 그 걱정은 완전히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이제 그동안의 짐을 던 듯한 홀가분함은 있겠지만, 그런 만큼 새로이 떠안게 되는 부담도 만만치 않지 않을까. 그러나 이 차분하기보다는 열정적인, 이지적인 면 이상으로 감성적인 젊은 영화감독은, 마구 들뜨지도 혹은 쓸데없이 가라앉아 있지도 않은, 자기의 현재에 충실할 줄 아는 진지함과 소박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믿음직스러웠다. 사인을 해달라는 음식적 주인아저씨의 요청에, 거절을 하다 하다 마지못해 재빨리 사인을 해주고 도망치듯 빠져 나온 큰 키의 사내는, ‘별일이 다 있네'라며 멋쩍게 웃었다.

 


글. 김미지(suder74@hanmail.net)

 

※ 영화 스틸 사진은 <살인의 추억>공식 홈페이지와 <플란다스의 개>공식 홈페이지에서 갖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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