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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산 · 트레킹

팔영산 - 두 발로는 못 오르는 산

by 내오랜꿈 2014.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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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은 몰라도 팔영산이나 녹동은 안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산을 좋아하거나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요즘이야 인공위성 나로호의 발사로 고흥이라는 남도 끝자락의 촌동네가 조금 알려진 편이지만 그 전에는 고흥이라고 하면 '거기가 어디야?'라는 질문이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 평촌마을에서 바라본 아침운무 가득한 팔영산 전경


지리산 천왕봉에 가기 전 마지막 '워밍업'은 팔영산을 오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보니 이슬이 마치 비가 내린 듯하다. 오늘 날씨 억세게 맑고 햇빛이 강렬할 거라는 암시다. 집에서 20분 정도 거리의 팔영산에 가는 길. 평촌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아침운무가 채 가시지 않은 팔영산의 전경이다. 



▲ 팔영산 오토캠핑장

 

평촌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능가사를 지나면 주차장을 지나 산행코스로 접어든다. 요즘은 어딜 가나 오토캠핑장이 유행인지 이곳도 작년부터 오토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주차장엔 벌써부터 관광버스도 여러 대 주차해 있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줄 서서 하는 산행이 될 거 같다. 팔영산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여덟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솟아 있는 돌산이다. 그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서는 바위 틈에 설치된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설치된 난간도 서너 곳 되기에 한 사람씩만 오를 수 있는 것. 그러니 등산객이 많으면 줄을 서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목표로 삼은 코스는 능가사에서 출발해서 흔들바위를 지나 유영봉(제1봉)에서 적취봉(제8봉)까지 팔영산 여덟 봉우리를 오르내린 뒤 정상인 깃대봉까지 갔다가 다시 적취봉으로 돌아와 탑재를 거쳐 능가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거리는 약 9.1Km 정도다. 중간에 2~3Km 정도가 제1봉부터 8봉까지의 구간인데,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바위와 난간을 오르내릴 수 있는 '네 발'(?)의 힘이 문제가 되는 구간이다.



▲ 유영봉에서 바라보는 능가사 (클릭하면 사진 확대) 


참나무 터널로 이루어진 등산길을 1시간 30분 정도 쉬지 않고 오르면 제1봉인 유영봉에 다다른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유영봉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다. 아까 본 주자창에 세워진 관광버스가 말해주듯 등산길은 사람들로 넘친다. 이제부터는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가야 하는 구간이기에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숨만 돌린 채 바로 출발했다. 몇 개의 산악회에서 모인 시끌벅적한 저 많은 사람들과 같이 움직였다간 줄 서는 건 물론이고 귀까지 정신사나울 것 같기 때문이다. 



▲ 유영봉에서 두류봉 가는 길의 난간들(클릭하면 사진 확대) 


2봉에서 6봉까지 가는 길. 온전히 두 발로만 가는 길이 드물다.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도 이 코스에서는 순리대로 가야 한다. 한 번 등 뒤에 서면 봉우리에 오를 때까지는 그 사람의 등만 보고 가야 한다.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 그렇게 40여 분 가면 두류봉(제6봉)에 오른다.



▲ 두류봉에서 바라본 여수 방면


두류봉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여수 방면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날은 맑지만 시야가 그리 좋지는 못하다. 가을 날씨 치고는햇빛이 너무 뜨거워 봉우리에서는 앉아 있기가 힘들다. 다른 때는 봉우리마다 앉아서 탁 트인 풍광을 감상하며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게 팔영산 등반의 묘미 가운데 하나인데 오늘은 빨리 내려가 그늘에 앉고 싶어진다.




칠성봉(제7봉)과 적취봉(제8봉)을 지나 깃대봉 가는 길 옆 바윗돌에 점심상을 차렸다. 3시간 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람에 동행한 아내는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아까부터 보채고 있었던 것. 밤을 넣은 찰밥에 김치와 물김치, 오이와 오이고추, 그리고 빠지지 않는 장아찌와 막걸리. 산에서 이만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팔영산 봉우리들


팔영산은 이번으로 여섯 번째인데, 모두 다 적취봉에서 내려갔었다. 팔영산의 정상인 깃대봉(609M)은 높이만 정상일 뿐이지 가는 길도 그렇고 전망도 KT 송신탑이 망쳐 놓고 있기에 잘 가지 않는 코스다. 하지만 오늘은 많이 걷는 게 '컨셉'이니까 무조건 가기로 했다. 깃대봉에 서서 왔던 방향을 돌아보면 봉우리들이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각도가 맞지 않는 탓이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정상에서 다시 적취봉으로 돌아가 능가사로 내려가는 길. 지금까지의 코스와 비교해보면 너무 평이한 길이다. 경사도 완만하고 등산길도 잘 정비되어 있다. 1시간 30분 정도면 능가사 경내에 이른다. 보기 드물게 절터 전부가 평지에 널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경내가 산만하고 잡초가 무성하다. 둘러 보기가 싫어진다. 곧바로 천왕문을 나서니 동네 할머니들이 감이며 밤, 강낭콩, 도라지 등을 팔고 있다. 올라갈 때도 계셨던 분들이 5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뙤약볕에 앉아 있는 모습들이 짠하다. 


이제'워밍업'은 끝났다. 지리산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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