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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ovie

<추격자>,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추격전과 개싸움의 스릴러

by 내오랜꿈 20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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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가장 야비한 개가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또는 가장 잔인한 들개와 싸우는 얘기다.”

김윤석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추격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타짜>의 ‘아귀’를 통해 그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머리 속에 각인시키게 된 것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서다. ‘천하장사’ 동구의 아버지 역으로 나온 김윤석은 그야말로 리얼리티의 극치를 보는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이 보기에 ‘멀쩡한’ 아들 동구가 화장을 하고 립스틱을 칠하는 등 ‘이상한’ 짓을 하자 동네 개패듯 아들을 두들겨 패는 장면, 아들 동구의 성정체성 방황을 전혀 이해 못하는 그는 이혼한 아내를 찾아가 울부짖으며, “우리 동구 불쌍해서 어쩌냐?”며 눈물 흘린다, 진심으로. 대한민국 여느 가부장적 가족제도 하의 전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두 장면은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돋보이게 한다. 내게 <타짜>의 ‘아귀’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 아버지’에 비하면 별 기억에 남지 않은 역이었던 것 같다.


사진 출처 <씨네21> 640호

영화 <추격자>는 10여 년 전 김성수 감독의 단편영화 <비명도시>를 다시 보는 것처럼 긴장감 있는 추격신이 연출된다. 단편영화였기에 쫓고 쫓기는 장면들이 거의 전부였던 <비명도시>에 비해 <추격자>는 여기에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가 더해진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악수로 표를 구걸하는 시장, 이를 호위하는 경찰, 정치가에게 던져지는 똥물 세례, 성과 올리기에 급급한 경찰, 이 틈에 사람들은 계속 죽어간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야성의 세계다.

이 속에서 살인자 영민(하정우)과 전직 비리경찰 중호(김윤석)가 펼치는 싸움을 얼개로 하고 있는 영화 <추격자>는 한국 장르영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정도로 120분이 넘는 런닝타임 동안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적당히 사회 풍자적인 요소를 더해 간간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면서...

어쨌거나 <추격자>는 나홍진이라는 신인감독을 흥행감독 대열에 올려놓은 영화로 기억될 확률이 높은 편이지만 그 못지 않게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키게 될 영화로도 남을 것 같다. 연기의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설경구나 송강호, 최민식을 넘어서는, 그런 영화배우 말이다. 

2008 02 19 

(추신)

<추격자>에서 김윤석 못지 않은 '명연기'를 보여 주는 인물은 목욕탕 바닥에 묶여서 엄청 고생하는 미진(서영희)의 딸로 나오는 아역배우다. 사라진 미진을 찾아 헤매다 어느 편의점에서 둘은 캔맥주와 컵라면을 앞에 두고 마주 앉는다. 컵라면을 먹는 미진의 딸에게 중호는 묻는다. '너 아버지는 어디 있냐?', '아버지 봤어?' 이 '잔인하고 집요한' 중호의 질문에 집요하게 아버지란 존재의 있음을 강조하던 아이는 '통화는 해봤어?' 라는 질문에 결국 컵라면에 고개를 쳐박고 말없이 젓가락질만 해댄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난감한 표정을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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