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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카트슨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지하세계와 지상세계, 인육을 파는 푸줏간, 그것을 사먹는 사람들... 그 기괴하고 우스광스러운 캐릭터들과 습하고 우중충한 이미지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그러나 영화내용은 결코 충격적이지 않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기행들은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한편의 영화로 칸느에 초청되어 그 이름을 알린 장 피에르 쥬네는 이 이미지들을 좀더 컬러풀하게 다듬어 남의 꿈을 훔치는 과학자를 묘사한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외계인의 유전자를 간직한 여전사라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풀어낸 [에이리언4] 등, '지금 여기'와는 한참 동떨어진 듯한 이야기나 이미지에만 집착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동화적 상상적 '꿈'에 집착하는 감독이다. "나는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게 좋다. 그것도 과도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의 영상으로. 영화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다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내 영화를 좋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진 않다. 그건 교황에게 콘돔을 쓰라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고, 이 정도까지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머지는 당신네들이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다. 광적으로 지지하든 혐오하든... 이런 주네였기에 최신작 [아멜리에]는 언뜻 보면 전혀 그의 작품 같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엉뚱하기는 하지만 [아멜리에]에서 보여지는 상상력은 아주 친근하고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몽마르트르 언덕의 한 아가씨, 아멜리에가 남들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 끝에, 결국 자기의 반쪽과 만난다는, 그래서 '해피 투게더' 해지는 로맨틱코미디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다. 물론 어떻게 보면 주네가 묘사해 놓은 인물들은 꽤나 별나기는 하다. 식당 여자에 집착한 나머지 하루 종일 그 식당에 앉아 여자의 말을 녹음하고 일거수 일투족에 시비거는 습관성 스토커, 지하철의 즉석사진 촬영대에서 남들이 찢어버린 사진조각을 주워 모으는 남자, 방안에 틀어박혀 명화들(그것도 르느와르만)의 모작을 그리면서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을 연구하는 데 골몰하는 늙은 화가...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인 '지금 파리'에는 어쩌면 이런 인물들이 실제로 있을 법하지 않은가. 그 중에는 사랑에 굶주린 이들도 빠지지 않는다. 외국으로 떠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는 여자, 사별한 아내의 무덤을 가꾸는 일에 전념하는 노인 등등. 이렇게 다소 별난 사람들의 공간에서 아멜리에는 어릴 때 어머니가 죽고 외롭게 살면서 '잡다한' 상상(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을 끊임없이 해대며 자란다. 어느날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도 모르게 가져다 주고는,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한다. 이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엉뚱한 인물들은 모두 아멜리에의 일감이 되고, 사랑을 포함해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걸 찾아주려는 아멜리에에게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러면서 아멜리에도 스스로의 사랑을 찾는다. 주네의 영화들을 보면 알겠지만 세상에서 소외되고 어딘가 결핍된 인간군상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주네 자신이 '몬스터'라고 지칭하는 그 캐릭터들은, 인간 본성의 마디마디를 다소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비교적' 정상적인 캐릭터들로 꾸려진 [아멜리에]에서도 스토커 기질이 있는 카페 손님부터 외부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몸이 약한 유리 인간까지 '집착'과 '연약함'을 상징하는 주변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다. 이러한 다소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주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금씩 뒤틀려 있는 다수들이 포진한 세상으로부터 살아남거나 거꾸로 그들을 구원하는 건 아멜리에처럼 백지상태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 같은' 어른이다. 동화가 사랑하는 건 아이들이니까. 동심이 어른의 세상을 구하고([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인조인간이 인간을 구하는 아이러니([에이리언4])는 [아멜리에]에서도 동일하다. 세상과 사람을 등진 외로운 이웃을 구원하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폐적인 소녀 아멜리에다. 애정 결핍, 자신감 결핍, 사회성 결핍... 결핍투성이의 한 소녀. 꿈꾸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녀의 풀죽은 삶은, 슬프고 외로운 이웃들의 사소한 일상을 조작해 그들과 꿈을 나누면서부터 설레임과 활기에 가득찬다. 물론 그것은 어찌 보면 현실에서 환상으로, 일상에서 추억으로 도피하는 것일 테지만, 그들은 그럼으로써 비로소 행복해진다. 아뭏든 [아멜리에]는 큰 줄거리가 있다기보다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아멜리에가 만들어가는 예쁜 일화들이 담백하고 맛깔스럽게 다가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그런 영화다. written date:2004 01 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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