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입구에서 장어구이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출발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무창포 인근에 이르자 주변은 온통 눈이 하얗게 쌓여 가지마다 눈꽃을 피우고 있고, 군산 주변은 안개와 흩날리는 눈발이 합쳐져 아주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평소보다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며 운전하고 있는데, 옆에 탄 '여자'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마구잽이로 눌러대고 있다. 하긴 이 사진들 자체가 전부 그 여자가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아마도 송창식의 노래에 기원을 둔 이미지이거나,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란 시집에서 연유된 것이라 짐작되지만 한때는 막연하게 선운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후 기회가 닿아 주로 가을에 여러 번 이곳을 찾았지만 정작 내게 인상깊게 남아 있는 것은 실재보다 더 강하게 착색되어 그토록 호들갑을 떠는 동백꽃 보다는 마애불이나 도솔암까지 이르는 산책길(등산길?)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더해 미당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밖에 없는 선운사는 나에게 그렇게 호감을 주는 곳으로만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매표소 입구 한켠에는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새겨져 있다. 자주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언급될 만큼 미당 서정주의 시세계가 크고 깊은지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두더라도 나는 친일 흔적이 너무나 역력한 그의 현실인식에 동의할 수 없는지라 그를 향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휴일 같으면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상시대기 중이고 주변 음식집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소리로 요란할텐데, 평일의 겨울 풍경은 어디나 없이 을씨년스러울만치 교요하기만 하다.
'삶의 여유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교기행 (0) | 2009.02.21 |
---|---|
변산반도 - 내소사, 격포항, 새만금 (0) | 2009.02.16 |
어느 겨울날의 바닷가 - 춘장대 해수욕장 (0) | 2009.01.20 |
여수 진남관에서 (0) | 2009.01.14 |
와온해변의 해넘이 (0) | 2009.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