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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어느 겨울날의 바닷가 - 춘장대 해수욕장

by 내오랜꿈 200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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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하면 특정 지역보다는 일단 '일몰'이 먼저 생각난다. 최근 당진 왜목마을과 함께 일출과 일몰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로 유명해진 '마량포구'를 가기 위해 부안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바꿔타고 춘장대 나들목으로 들어섰다. 서해안 고속도로 생기기 이전엔 이쪽 방면도 오지라면 오지였을 터인데, 지금은 오히려 너무 쉬워서 싱겁다 할까. 건성건성 서천 일대를 둘러보면서 30여 분 지방도로를 달리니 바다가 금방이다. 담배피기 위해 잠시 열어둔 창으로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매섭지만, 햇살 일렁이는 물결 위는 더없이 그윽하고 잔잔하다. 일몰까지 시간이 넉넉하여 서천 해양박물관에 갔다가 입장료가 다소 비싼 까닭에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다 애들도 아닌데 하며 돌아나와 간 곳이 '해 뜨는 마을', 바로 마량포구다. '해 뜨는 마을' 이라니... 낯선 여행객들을 위한 배려라쳐도 억지스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명색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인데 하다못해 어구를 손질하는 사람도, 어시장도, 강태공도 없는 아주 작은 곳이라 달리 할 일 없는 이방인에게는 더없이 심심한 곳이다. 잠시 갯가를 거닐다가 허름한 모텔에 숙소부터 정하고, 서천 화력발전소 뒷편에 위치한 동백정(동백은 아직 이른 시기)을 들렀다, 다시 춘장대 해수욕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해안 대부분의 해수욕장은 세사인지라 해수욕장 안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이곳 춘장대 해수욕장은 아예 대놓고 차가 들어오라고 유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해수욕장인지 갯벌인지 넓은 백사장에 자리를 잡은 10여 대의 차중 몇 대는 나름대로 질주를 즐기고 있고, 경비행기까지 뜰 준비로 와글거렸다. 이쪽 방면이 쭈꾸미나 전어로 유명하고 축제까지 연다니 여름이 아니더라도 철마다 사람들로 붐비겠다 싶은데, 때가 설연휴이고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하여 좋다. 우선, 차를 세우고 바닥을 디디니 굳건한 땅 위에 선 것 처럼 정말 단단하다.





시야가 확 트인 풍경에 한참 산책을 해도 좋으련만, 제법 겨울바람이 쌀쌀한 까닭에 그냥 차 안에서 시동을 건 채, 탄성을 지르며 불규칙하게 왔다갔다 하는 서너 대의 차량에 편성하여 모래 위를 달려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정도로 그치고 있는데 좀 정신나간 인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곧장 세차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우리처럼 차가 소금물에 닿아 부식될까 하는 염려로 물을 피하고 모래 위만 달리는데 반해, 대책없이(?) 물길을 가르며 낙조 속으로 신나게 질주하는 차가 그 주인공. 스피드를 내며 우리 앞을 몇번 왔다갔다 즐기는 차를 보자 미친 척 함께 달려 보고픈 충동이 일지만, 역시 뒷감당이 앞서기에 주춤거릴 수밖에. '케세라 쎄라'가 안됨이 아쉽기만 하다.



석양에 보이는 잠자리 같은 물체는 백사장에서 이륙한 경비행기 나는 모습


운전대를 바꿔가며 몇 바퀴 도는 사이, 해넘이가 무르익고, 바다는 잔잔하여 말이 없지만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안고 돌아갈까..... 서서히 내리는 어둠을 안고 멀지 않은 홍원항을 찾았다. 일박을 하기 때문에 당장 구입은 어렵고, 뭔가 살 것이 없나 하여 둘러보러만 왔는데, 손님이 거의 없는 어시장 좌판에 서면, 서로 손님을 붙들려는 목소리에 쭈뼛쭈뼛 참 난감하다. 일단 아침에도 장이 선다니 필요한 몇 가지를 사 가기로 정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횟집에 들어갔다. 거친 포구의 풍경에 어울리게 모두 고만고만한 집들이다. 우선 자연산 회 가격을 보니, 점심때 들린 변산 격포항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싼 가격이다.





위의 사진은 간재미 초무침, 자연산 잡어 뼈꼬시, 키조개 회로 주문 메뉴가 나오기 전에 기본으로 깔린 소주 안주인데, 아주 푸짐하다. 두 사람이 주메뉴까지 먹기에도 힘겨운 판에 하필 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 배탈증세까지 겹친지라 조심조심 맛만 보는 수준이다. 우리가 들어왔을 때 먼저 일어선 옆 테이블에서 회를 잔뜩 남긴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값싸고 푸짐하기까지 하니, 싼 가격에 푸짐함을 바라는 여행자에게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일출을 보기 위해 숙소에서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깨어보니 제법 굵은 비가 내리고 있다. 뭐, '맨날 뜨는 해, 별거인가...'를 위로 삼아 이불 속에서 느긋하게 아침잠을 즐기다가 다시 홍원항에서 가자미, 키조개, 쭈꾸미 등을 푸짐하게 샀는데도 만원짜리 세 장을 넘지 않는다. (가자미는 반으로 나눠 형님댁에 주고도 아직 냉동고에 있으며, 쭈꾸미는 집에서 볶음을, 키조개는 설 전날 음식 장만후 가족들과 술 한잔을 하며 동그랑땡, 회, 버터구이를 푸지게 해 먹었음.)

그리고 고속도로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간월도를 향하면서 마음 깊숙히 스며드는 풍성한 이 느낌은 어느 누구와 공유해도 좋을, 그런 포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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