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부였다. 내가 본 월드시리즈 최고의 명승부. 뉴욕 양키스와 애리조나 디백스가 맞붙은 2002년 월드시리즈도 기억에 남을 만한 승부였는데 오늘 경기는 그때를 뛰어넘는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명승부였다. 먼저,108년을 기다렸던 시카고 팬들에게 축하를...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2016년 월드시리즈 7차전. 1승 3패로 뒤지고 있다 극적으로 3승 3패를 만들어 최종전에 나선 시카고 컵스는 1908년 우승 이후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팀이다. 1908년? 그러니까 108년 동안 우승을 한 번도 못한, 이른바 '염소의 저주'라는 유명한 주술에 시달린 팀인 것. 그런데 마지막 7차전은 의외로 쉽게 경기를 풀어나가 5회초에 이미 5:1을 만들어 108년의 한을 쉽게 푸는 듯했다. 그러나 6:3으로 앞선 8회말에 올라온, 세상에서 가장 빠른 볼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 채프먼이 적시타와 투런 홈런을 맞아 순식간에 6:6 동점을 허용했다. 채프먼이 아무리 뛰어난 마무리 투수라고는 하지만 5, 6, 7차전을 연속해서 던지게 만든 조 매든 감독의 과욕이 빚은 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분위기는 완전히 클리블랜드로 넘어가는 듯했지만 연장전에 들어가기 전 묘하게도 경기장에 비가 내리기 시작헸다. 비 덕분이었을까, 20분 정도 중단되었다 시작된 연장 10회초. 마침내 시카고 컵스는 염소의 저주를 끊어내는 집중타를 터뜨려 8:7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야구팬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떠나 누구나 이런 경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역대 가장 재미없는 코리안시리즈를 보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 더더욱 이번 월드시리즈의 감동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 이른바 '염소의 저주'를 뚫고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기뻐하고 있다. (사진 출처:m.mlb.com)
숱한 이이깃거리 가운데는 티켓 가격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마지막 7차전은 티켓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불펜 바로 옆에 있는 내야 지정석은 3,000만 원이 넘어갔고, 일반석도 4인 한 가족이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1,500만 원의 돈이 필요했던 경기였지만, 시카고 팬들은 300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프로그래시브 필드를 마치 홈구장처럼 만드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 열정들이 위험했던 순간을 이겨내고 7차전을 잡을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108년? 우리에게는 과연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진심으로 바랬던 그 무엇이 존재했을까? 만들어 갈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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