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새로운 기억들을 남겨줄 것 같다. 최고기온이 35℃를 넘어가는 날이 연속되거나 최저기온이 25℃를 넘는 날이 열흘 넘게 지속되는(이른바 '열대야') 현상 같은 것들. 하지만 농사 짓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십 일 넘게 비가 사라져버린 것보다 더 오래 기억될 일이 있을까?
▲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덕분에 고추 말리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다. 일주일 정도면 아주 바짝 마른 태양초가 만들어진다.
이곳은 오늘로 23일째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한낮 기온은 연일 35℃를 오르내리는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산간지역이나 내륙지방은 가끔 소나기라도 한 번씩 내리기 마련인데 해안지방이라 그런지 그조차도 없다. 게다가 밤 기온은 물론 상대습도도 높은 편이라 이슬점이 형성되지 않아 이슬방울도 맺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작물들이 자라기겐 최악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 한 가지 좋은 점을 꼽으라면 고추 말리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불행히도 말릴 고추가 적다는 게 문제지만.
▲ 고추가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강낭콩은 잎이 노랗게 타들어가고 있다.
▲ 참외. 습한 날씨였다면 녹아내렸을 텐데 건조한 날씨 덕에 참외 줄기는 싱싱하다.
▲ 10월 수확용 가을배추 모종.
고추나 파프리카 등에 한두 번 물을 주긴 했지만 고사 직전에 마시는 한 모금 수준일 테니 열매를 많이 맺지 못 한다고 탓할 형편도 아니다. 비가 잦을 때는 탄저병이나 갖가지 병충해 걱정이고 비가 안 오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 하는 걸 아쉬워하니 노지 고추 농사는 이래저래 힘들다. 이 날씨에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 가운데 비가 안 와서 좋은 건 아마도 참외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0월 중순 수확용으로 열흘 전 포트 파종한 배추 모종은 잘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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