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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루이 암스트롱의 [웨스트 엔드 블루스] - ‘재즈’의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다

by 내오랜꿈 200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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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6 EBS "지식프라임"



사실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먹물들 대부분이 한 번쯤은 읽었다는 <노르웨이의 숲>(왜 한국에선 이 책이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었어야 했을까?)은 책을 펴들고 질질 끌다가 몇 주만에 겨우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 뒤로 <국경의 남쪽>인가를 한 번 더 접했는데,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에 관한 두 권의 책은 나에게 재즈 뮤지션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게 해 준 책이었다. 한 뮤지션에 대해 한 페이지 남짓한 글에 삽화 한 페이지 달랑 있는 책에서 뭐 그리 대단한 지식을 얻었을까만 다른 책들을 읽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만으로도 나에겐 고마운 책들이다. 

아래에 인용하는 글은 하루키의 <재즈에세이>에 나와 있는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내용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열세 살 때 사소한 장난질 때문에 경찰에 붙잡혀, 뉴올리언즈에 있는 '소년원'에 수용되었다. 소년원 생활은 엄격하고 힘들었지만 악기와의 만남이 그의 고독을 구원해 주었다. 그 이후 루이에게 음악이란 마치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 되었다. 


루이가 소년원 밴드에 들어가 맨 처음 손에 든 악기는 탬버린이었다. 그리고 탬버린은 마침내 드럼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에는 나팔이 되었다. 기상, 식사, 소등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 소년이 사정이 있어 소년원을 나가게 된 덕분에 루이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엉겁결에 나팔부는 방법을 배우고, 대역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 신기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가 매일 아침 나팔을 불면서부터 모두들 즐거운 기분으로 눈을 뜨고, 또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째서일가? 그 까닭은 루이가 부는 나팔 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매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일화 - 스탯 터클이 《자이언츠 오브 재즈》(Giants of Jazz)란 책 속에서 소개한 - 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 하나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편안함, 자연스러움, 매끄러움 -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마는 기적적인 '매직 터치'

우리들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들으면서 늘 변함없이 '이 남자는 정말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느낌은 놀랄만큼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존경하면서도 무대에서 백인 청중을 향하여 이를 드러내고 싱긋싱긋 웃는 그의 연예인 근성을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하지만 나는 루이는 정말로 즐겁고 신이 나서 웃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자기가 이렇게 살아서 음악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귀기울인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여, 체면이니 염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싱긋싱긋 이를 드러내고 웃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즈 마칭 밴드와 함께 성장한 거의 마지막 뮤지션이었다. 그것은 장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그리고 장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의 한없는 환희를 복돋우기 위한 실용적인 음악이었다. 루이의 음악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음악이 가닿는 것이었다. 

트럼펫 주자는 자기 악기를 흔히 '챠퍼'(Chopper)라고 한다. 이는 고기를 자르는 부엌칼을 말한다. 1928년에 녹음된 <웨스트 엔드 블루스>(West End Blues)의 단호하고 굵직한 연주에 귀기울여 보라. 그가 얼마나 강인한 챠퍼를 쥐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으로 하여 그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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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다 
세상을 바꾼 노래 ④ 루이 암스트롱의 〈웨스트 엔드 블루스〉(1928년)
 

박은석/음악평론가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25 


» 루이 암스트롱의 〈웨스트 엔드 블루스〉(1928년)

1999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사진)은 20세기를 결산하며 “금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을 선정했다. 비슷한 시기 <라이프>도 새 천년을 앞두고 “밀레니엄을 만들어온 100인”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비틀스를 위시한 몇몇 대중음악가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서 언급된 인물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루이 암스트롱. 그에 대해 <타임>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파블로) 피카소, (제임스) 조이스와 나란히 언급될 수 있는 극소수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했고, <라이프>는 “그의 즉흥연주 능력과 기교적 탁월함이 재즈를 규정했다”고 평했다.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은 재즈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솔로이스트였다. 그 말은 곧, 그가 재즈를 ‘재즈답게’ 만든 최초의 혁신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즈는 악기와 악곡을 통제하는 냉철한 이성과 그것을 정서적으로 치환해내는 뜨거운 감성 사이의 균형감각을 전제로 하는 고도의 창조행위다. 그 표준을 제시한 인물이 암스트롱이었다. 그래서 <타임>은 “아폴로와 디오니소스가 뉴올리언스 출신 천재의 격렬한 내적 세계에서 만났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웨스트 엔드 블루스〉가 바로 그 전범이다. 

스승이었던 킹 올리버의 곡을 연주한, 암스트롱의 1928년 버전 〈웨스트 엔드 블루스〉는 많은 비평가들이 “본격적인 재즈 역사의 시발점”으로 꼽는 작품이다. 카덴차 스타일의 짧은 독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가 신기원이었다. 얼 하인스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이어지는 암스트롱의 마지막 리드 파트는 재즈 솔로의 형식과 구조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명연이었다. 잔잔하게 넘실대는 스윙 리듬, 치밀하게 축조된 솔로 연주, 노래하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스캣 창법에 이르기까지, 3분을 겨우 넘는 단출한 연주 시간 동안 암스트롱은 재즈의 우주에 창세기적 질서를 부여하는 거대한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웨스트 엔드 블루스〉를 통해 루이 암스트롱이 제시한 음악적 비전의 영향력은 재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악기를 통해 인간을 드러낸 방식은 이후 20세기의 대중음악 전체에 영감을 주었다.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대중문화 책임자였던 빌리 마틴은 “루이 암스트롱이 20세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을 정도다. 실제로 암스트롱은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지미 로저스의 〈블루 요들 넘버 나인〉에서, 그리고 빙 크로스비와의 협연작들을 통해 줄곧 블루스와 컨트리와 팝을 아우르는 ‘20세기 대중음악의 허브’로 기능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웨스트 엔드 블루스〉를 “로큰롤 역사를 만들어온 노래”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은 그에 대한 상징적인 헌사나 다름없다. 

대중적인 스타일에 치우쳤던 루이 암스트롱의 후기 활동은 오늘날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암스트롱이 견뎌야 했던 혹독한 차별의 세월과 그 속에서 창조해낸 음악적 유산을 외면할 수는 없다. 〈왓 어 원더풀 월드〉의 낙관적 메시지는 지난한 여정을 마친 자의 여유를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 앞에서 대중영합적이라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세상을 바꾼 거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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