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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저 | EJB(이제이북스) | 2007년 09월 너무나 '유명한' 책이 제대로 번역되어 나왔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인가 뭣인가가 나와서 시끄러울 때가 벌써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나 싶을 정도로 아득한 옛날 같다. 그 즈음의 난 20대 말의 어수선함과 혼란스러움으로 인생의 방향을 놓고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기에, 후쿠야마식의 이데올로기 종언, 역사의 종언이라는 '선언'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라는 사실만으로 시선을 끌었던 책이었다. 현실에서 현재진행형이던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내겐 전혀 실천적인 철학자로 보이지 않았던 데리다가 정면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을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때 내게 데리다는 너무 어려웠다. 알뛰세, 푸코, 들뢰즈의 책들은 그 이해의 완전함은 떠나서라도 읽혀지는데 데리다 만큼은 이상하게도 읽혀지지가 않았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일차적으로는 나의 선입견, 현실의 실천에서 거리를 둔 철학이라는 나의 선입견이 원인이었을 게다. 또 하나는 데리다를 가장 처음 접했던 게 솔 출판사에서 나온 입장총서 시리즈의 하나로 데리다와의 대담을 엮은 <입장들>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의 호감으로 그후 몇몇 데리다 해설서를 읽게 되었는데, 그게 오히려 데리다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다. 김형효씨의 데리다 해설서는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고, <데리다와 푸꼬,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극단의 예언자들: 니체.하이데거.푸코.데리다> 등에서 다루는 데리다도 내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었다(그나마 <극단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데리다를 조금 이해할 수는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걸 알면서도 읽을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나중에 번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지만). 그 이후 발리바르나, 들뢰즈를 통해 데리다의 긍정적 평가를 접하게 되면서 언젠가는 다시 데리다를 읽어야지 하면서도 지금까지 미뤄져오고 있는 것. 이번엔 미뤘던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제대로 한번 데리다를 읽어봐야겠다. 번역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는 책이기에. 아래 인용하는 글은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가 쓴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서평인데 옮겨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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