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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Book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필요한 것은 '모든 가치의 전환' 그것뿐!

by 내오랜꿈 2007.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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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결국 인간이다. 신의 죽음도 위버멘쉬의 출현도 인간에 관한 물음으로 귀착된다. 인간이 인간을 극복할 수 있는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죽음을 욕망할 수 있는가. / 위버멘쉬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기', 혹은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변신하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2/331쪽)

 
 
 
 

가끔씩 어떤 책을 대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 좀더 일찍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참 우스운 생각이지만 스스로 모든 걸 깨우치는 천재가 아닌 이상 타인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앎의 영역을 넓혀가는, 필자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니체에 대한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니체 이해의 어려움에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던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 고병권의 니체에 관한 책이나 논문들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이다.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니체의 위험한 책  >)는 '맑스에게로 가는 길을 찾다 니체에게 걸려 넘어진' 한 철학도의 '니체 사랑하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여기서 감히 '결정판'이라고 속단하는 이유는 "객관성이나 비판적 거리란 오히려 사랑 능력을 상실한 학자들의 불임증"이라는 강경한 말까지 동원하며 니체에 대한 그 어떤 판단이나 비판도 유보한 채, '니체-되기'를 주장하던 그의 전작 <니체, 천개의 눈 천 개의 길>과 비교했을 때 필자가 느끼는 인식 때문에 그렇다.

물론 지은이가 <니체의 위험한 책>에서 니체에 대한 자신의 어떤, 확고한 판단이나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작에서는 어느 것이 니체의 생각이고 어느 것이 지은이의 생각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물론 구별하려는 것 자체가 넌센스지만!) 지은이가 니체가 되고 니체가 지은이가 되어 니체를 말하고 있었다면, <니체의 위험한 책>에서는 어느 것이 니체의 생각이고 어느 것이 지은이의 생각인지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과 전작의 구성 및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니체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며 '입문서' 내지는 '해설서'라는 형태를 취하는 전작과 달리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쓰는' 형태로 니체의 저작을 복원해낸다.

그런데, 니체를 위한 입문서 내지는 해설서라는 형태로 쓰여진 책에서는 철저하게 니체의 입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니체의 책을 '다시 쓰는' 이 책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시도하며 자신의 생각을 가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뒤바뀌어야 할 구성과 스타일일 것 같은데 말이다. 왜일까?

<니체는 언제 눈물을 흘렸는가>라는 다소 '진부한'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니체의 질병-소설에서는 '편두통'이라고 묘사하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진료와 루 살로메라는 여인과의 사랑이라는 얼개로 진행된다.

시간때우기용으로 읽은 소설이라 크게 남아 있는 것은 없는데, 다만 니체가 이렇게 심하게 편두통을 앓았었나, 하는 정도의 의문만은 지금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니체의 위험한 책>을 읽어보시면 필자가 왜 이 소설 이야기를 꺼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은이는 <차라투스트라>를, 스스로 고통과 치유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니체를 창조해가는 니체의 정점에 있는 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과정을 이 책의 제 1부 "니체와 차라투스트라"에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통의 책에서라면 저자의 전기 부분에 해당하거나 특정한 저작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다소 독특하게 묘사되고 있다.

병을 병으로만 보지 않는 니체의 독특함이랄까. '건강한 사람만이 앓을 수 있는 질병'이라는 테제로 압축되는, '생의 결핍 때문에 겪는 고통이 아니라 생의 과잉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는 니체의 말로 압축되는 <차라투스트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니체의 그 어떤 전기보다도 간결하고 함축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과정은 니체의 생애와 사상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 준다. 말하자면 <차라투스트라>라는 책을 쓰기까지의 니체 사상의 변화의 모티브를 찾아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그 어떤 니체 전기보다 니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쓰는' 제2부는 모두 15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신은 죽었다',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여자의 해결책은 임신이다',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는 음탕하다' 등등 언뜻 보아서는 "이게 뭔 소리야?"라는 의문이 저절로 나올 만한 주제들이다.

이 소주제들은 지은이가 임의로 만들어낸 분류이긴 하지만, 니체가 실제로 말했던 것을 끌어내 소제목으로 차용한 것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천하에 둘도 없는 파시스트요, 여성차별주의자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차대전 당시 나찌 병사들의 배낭에 들어 있던 책이 <차라투스트라>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니체에 대한 그간의 이런저런 오해들은 사실 니체 자신이 아니라 니체의 사상을 제멋대로 해석한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나치즘과의 연관성 문제는 오해 치고는 너무나 지독한 오해이다. 그토록 '자유정신'의 위대함을 노래하며 독일 제국주의의 문화를 비판했던 니체를 독일의 파시스트들이 자신들의 우상으로 숭배하는 아이러니. 하기사 루카치조차도 '니체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및 파시즘의 옹호자'라고 했을 정도니, 파시스트들이 니체를 이해하지 못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지은이가 니체와 구별되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는데, 2부의 본문들을 꼼꼼히 읽어나가면서 느낄 수도 있겠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2부의 15개의 소주제마다 붙은 도판들이다. 채플린 영화의 한 장면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홉스의 <리바이어든> 책표지를 인용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포스터 등을 인용하면서 각 소주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도판들과 그 주해가 주는 암시는 이제 지은이가 본격적으로 니체를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실제로 이 책 2부의 마지막 '위버멘쉬'(기존에 '초인'이라는 말로 알려진)에 대한 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은이의 해석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라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지은이는 '아직도 자신에게는 니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분명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섣부른 예단이라는 위험부담을 줄여 말한다면 '전작과 비교했을 때'라는 단서조항을 달 수도 있지만, <니체의 위험한 책>이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미 충분히 니체를 사랑한 지은이였기에 이러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 사랑에 대한 결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이것은 어쩌면 지은이가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 니체를 딛고 일어설 준비를 마쳤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어찌 됐건 지은이가 애초에 가고자 하던 길이 있었을 것이므로 그 길을 다시 가기 위해서라도 '니체로의 여정'은 동반자를 구하기 위한 잠깐의 '외도'라고 봐야 할 것 같기에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니체를 동반자로 받아들인 그 새로운 여행은, 그가 애초에 가고자 한 맑스로의 길이든지 전혀 다른 길이든지 간에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생성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지은이의 건투를 기원한다.

덧붙여 지은이에게 개인적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0여년 전, 니체 원전에 울었고 '들뢰즈의 니체'(<니체와 철학>)에 또 울었던 필자에게 다가온 지은이의 니체에 대한 책 2권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글의 서두에서 '왜 좀더 일찍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빈말이 아닐 정도로 그의 안내에 따라 니체에게로 가는 길은 명료하고 행복한 길이었다. 물론 지난 10여 년의 이런저런 '잡학'들을 통해 내공이 쌓인 탓도 있을 테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니체에게로 가는 길을 다시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게 확실하므로 그에 대한 필자의 고마움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2003/13,900원)

목차


· 책머리에 

1부 니체와 차라투스트라

1. 니체 - 질병과 치유의 체험
2. 차라투스트라 - 만인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3. 니체 이후의 니체

2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신은 죽었다
2. 너희는 너희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3. 사랑을 가르친다, 벗을 가르친다
4. 삶을 사랑하라
5. 신체야말로 큰 이성이다
6.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
7.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8. 여자의 해결책은 임신이다
9. 나는 미래 속으로 날아갔다
10.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들은 음탕하다
11. 인간만큼 큰 귀를 보았다
12. 춤추고 웃는 법을 배워라
13. 세상은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들의 탁자다
14. 사자가 못한 일을 어린아이가 한다
15.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3부 <차라투스트라>의 구성과 스타일

1. <차라투스트라> 여행 가이드북
2. 차라투스트라 - 질병과 치유의 체험
3. <차라투스트라>의 스타일

· 니체를 알고 싶을 때 도움이 되는 책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원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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