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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노자 & 장자

<장자>라는 텍스트에 대하여 - 1

by 내오랜꿈 201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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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道’란 무엇인가? <노자도덕경>이나 <장자>는 바로 이 ‘도’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자>를 보면 숱하게 언급된다. ‘도’란 언설로 설명되거나 문자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노자도덕경>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이러한 언어의 부정을 넘어 지식, 곧 ‘앎’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한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언어를 부정하고 앎조차 부정하는 ‘노∙장’이 무엇 때문에 후세의 인간들을 괴롭히는 난해한 글들을 이리도 많이 남겼는가, 하는 것.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장자>를 이해하는, 아니 이해는 차치하고라도 <노자도덕경>이나 <장자>를 읽어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자는 ‘진정한 도’는 말로 설명되거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말로 설명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자이며,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설명할 수 없다’(<장자> "천도“편)고 했다. 심하게 해석하면 언어의 부정이다. 왜 그럴까? ‘도’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무리 자세하게 깨달음의 내용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것은 설명일 뿐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지자. 그런데도 왜 장자는 ‘깨달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남겼을까?


2.  ‘언어를 부정하면서 언어로 설명하는 말을 남긴다.’ 이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을 장자는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왜 장자는 <장자>라는 텍스트를 남겼을까? 바로 이 지점이 장자철학의 정치사상적 측면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자는 결코 현실도피주의자는 아니었다. <장자>를 읽다 보면 백이, 숙제를 조롱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인 열혈 혁명투사 또한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장자는 세속적인 삶을 비판하면서도 세속을 떠난 적이 없었고,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면서도 그 사회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다. 다만 ‘양생(養生)’하여 세상의 잡다한 일로부터 자기 몸을 잘 보존하며 삶(=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할 뿐이다. 몸을 잘 보존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 안으로 덕이 충만하게 해야지 ‘개뿔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개혁이니 혁명이니 외치며 촐랑거리다가는 모가지 날아가기 십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장자> ‘인간세’ 편의 우화는 대부분 이런 내용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위나라로 떠나려는 안회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면서 설치다가는 모가지 날아가기 십상이니 공부나 해라’고 하며 말린다(‘인간세’ 1장). 자고가 외교 사신으로 가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니 ‘세상 흘러가는 대로 맡기면 모가지는 보존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인간세’ 2장). 안합이 주군의 포악함을 걱정하자 ‘겉으로 따르는 척 하며 내면으로 대충 맞추어주면 모가지가 잘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한다(‘인간세’ 3장). 사람의 예뿐이 아니라 제나라 곡원땅의 상수리 나무나(‘인간세’ 4장) 상나라 구땅의 쓸모없는 나무도(‘인간세’ 5장) 어떤 이유이건 간에 잘리지 않고 오래 살고 있는 게 ‘장땡‘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나온다(물론 세운 뜻은 ’쓰임 없음‘의 ’쓰임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내성(內聖)’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장자 자신은 왜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일까? <장자>에서 ‘성인’은 바로 ‘정치지도자’라고 해석하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심재원의 경우는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조차 이를 등치시키고 있다. 심지어 장관이라는 자리도 깨달은 자, 성인이 않아야 하는 자리란다.), 장자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사마천의 <사기> ‘노장신한열전’에 초나라 위왕이 장자에게 재상 자리를 약속하며 자신을 도와주기를 청하자 “나는 차라리 더러운 개울 속에 살지언정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속박을 받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장자는 동시대의 모든 지식인들과는 달리 그 무엇(그것이 비록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 해도)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거나 그 무엇(명예나 지위 등)에 구속되어 살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후대의 사람들이 장자의 삶이나 <장자> 철학을 통해 불교적 수행이나 선사상을 읽어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장자> 철학에서 ‘외왕(外王)’적 측면만 침소봉대하여 장자를 현실정치 참여주의자로만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장자>를 잘못 이해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장자> 내편 어디에도 <논어>나 <맹자>에서와 같이 직접적으로 군주를 훈육하거나 직접적인 행동지침이나 가르침을 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왕학’으로 읽힐만한 편은 존재하지 않는다(‘외편’, ‘잡편’에는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외편’, ‘잡편’의 경우 장자의 글이 아니라 후학들이 쓴 글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하니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하나의 우화로서 유가가 숭상해마지 않는 제왕이나 성인들이 숱하게 등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씹히는’ 대상으로만 등장하는 게 대부분이다.  


3.  따라서 장자가 <장자>라는 텍스트를 통해 표현하려 했던(언어의 부정을 말하면서도 언어를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했던) 것은 그 정치적, 사회적 측면의 텍스트로서의 효용성보다는 ‘깨달음’이나 ‘도’와 같은 개인의 내면 수양에 관한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기대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천도”편의 마지막에 결론격으로 목수 윤편에 관한 우화가 실려 있다. 제환공이 책을 읽고 있는데 뜰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목수 윤편이 환공에게 다가와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에 무엇이 쓰여 있습니까?”
“성인의 말씀이지.“
“성인은 살아계신 분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 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감히 수레바퀴장이가 어찌 논의를 할 수 있는가? 올바른 근거가 있다면 모를까 근거가 없다면 죽여 버릴 것이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로써 그것을 관찰한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꼭 끼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꼭 끼이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이 마음에 호응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법도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을 저의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저의 아들도 그것을 제게서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의 노인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었던 도는 함께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것입니다.”
(김학주 역, <장자> 제13편 ‘천도’, P.343~344)

그야말로 ‘언어에 대한 부정’이다. 말이나 글로써는 결코 올바른 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몸소 익힌 기술을 말로서 아무리 설명해봐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듯이 옛 성인 역시 진정으로 전해주고 싶은 ‘도’는 전해주지 못한 채 그저 찌꺼기만 남기고 갔다는 것이다.

장자는 ‘도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런데 장자도 알다시피 그 ‘깨달음’은 말로서는 표현이 안 되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내용을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설명일 뿐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윤편이 몸으로 익힌 기술을 아들에게 그대로 전수해 줄 수 없듯이 장자의 깨달음 역시 그 누구에게도 그대로 전수해 줄 수는 없다. 깨달음은 누구에게 전수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깨달음‘을 전수해 주는 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제자 스스로 깨달음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을 통해서만 전수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윤편의 아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아버지와 같은 수준의 기술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윤편이 그 기술을 정리한 글을 남겨 놓는다면 비록 그것이 기술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아들이 그 기술을 익히는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자와 같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찌꺼기일지언정 <장자>라는 텍스트 역시 ‘깨달음’ 혹은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유용한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道, 곧 유유자적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濟物’하는 것, 스스로의 생활태도, 생활방식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養生하는 단계로 나아가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쓸데없이 인간세의 잡다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몸뚱아리를 잘 보존하고 내면의 덕을 충만하게 쌓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면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좌망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곧 제왕의 경지라는 것이다. 이때 제왕은 현실정치의 제왕일 수도 있고, 이 세계와 생명의 주재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일컫는 제왕일 수도 있다.

이렇듯 <장자> 내편의 마지막 편인 ‘應帝王’은 깨달은 성인이 곧 현실정치의 제왕이라는 뜻이 아니라(감산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심재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응제왕’을 현실정치의 제왕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 각자가 ‘제왕’이 될 수 있는 태도와 방법에 관한 우화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때 ‘제왕’은 굳이 현실정치의 제왕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장자>는 그렇게 일직선적이고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장자>다.


P.S. 손교수 보시게

장자는 장자다.
맞다. 하지만,
감산은 감산이고 나는 나다.
차재업은 차재업이고 손삼호는 손삼호다.

난 학문하는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나 교수인 너는 더욱 더!

우리가 <장자>를 공부하니까 장자하고 나를 동류에 놓는다는 건 물론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장자>를 해석하는 감산은 감산이고 <장자>를 배우는 나는 나인 것이다. 감산이 <장자>에 주해를 할 수 있듯이 나 역시 <장자>에 주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오히려 심재원 번역서에 수록된 감산의 "관노장영향론"을 읽으니까 감산의 장자와 나의 장자는 분명히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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